자그마한 병실은 순식간에 눈물바다가 되었다.

병상에 누워 있던 어머니는 수년 만에 기적적으로 다시 만난 딸을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렸고, 딸은 어머니의 수척해진 얼굴을 어루만지며 말을 잇지 못했다.

“미안해 엄마.. 나 때문에..”

위암말기 상태에서 중국으로 탈북해 죽음을 앞두고 있던 어머니와 앞서 먼저 탈북해 한국으로 갔으나 최근 중국 입국이 거부되었던 딸의 안타까운 사연이 보도된 이후(2009년 3월 22일자 ‘두시간 거리.. 그렇게 모녀의 生死는 엇갈리고 있다’ 보도기사 참조) 두 모녀의 마지막 만남은 그렇게 극적으로 이루어졌다.

2007년 5월 이후 하나원을 수료했던 딸 김OO씨는 본래 중국 정부로부터 비자 발급이 거부되어 어머니의 마지막을 지켜볼 수 없는 절박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보도 이후 다행히 선상(船上)비자가 발급되어 대련(大連)항을 통해 중국에 입국할 수 있었다.

꼬박 반나절이 걸려 항해한 끝에 대련항에 내린 뒤 다시 기차에 올라 총 이틀이라는 시간을 소요한 끝에 병원에 도착한 딸은 하지만 힘든 것도 잊은 듯 했다. 다시 만난 모녀는 두 손을 꼭 붙잡은 채 놓을 줄을 몰랐다. 연일 고통스럽기만 하던 어머니 고OO씨의 얼굴에도 비로소 평안과 안도감이 흘렀다.

딸 김 씨의 탈북 과정은 그야말로 파란만장했다.

노무현 정권 시절 태국 루트를 선택하는 여느 탈북자들과는 달리 심양(瀋陽) 한국영사관에 진입한 그는 영사관 측의 늦장 처리 탓에 약 1년이라는 긴 시간을 그 곳에 갇혀 지내야만 했다.

“이해는 했어요. 영사관에서도 중국 측과 교섭을 해야 하니까..” 김 씨는 그렇게 담담히 이야기했지만 영사관 측이 조금만 더 신경을 기울였어도 그의 한국행은 보다 빨라질 수 있었다.

이러한 늦장 처리 탓에 당시 그와 함께 있었던 다른 탈북자 중 일부는 담장을 넘어 바로 옆의 미국 영사관으로 진입하기도 했지만, 그는 가지 않았다고 했다. 만약 그가 그 때 도미(渡美)했더라면 자유로운 출입국이 보장되는 시민권을 곧바로 주지 않는 미국 정부의 정책 상 어머니를 두 번 다시는 만날 수 없을 뻔 했을 터였다.

그렇게 한국에 정착한 뒤 최근 어머니의 소식을 접하고 중국으로 가려 했던 사연도 안타까움의 연속이었다.

주변의 시선 탓에 당초 조용히 중국으로 가려 했던 그는 비자 발급이 거부되었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접하자 그만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고 했다.

서울의 중국 대사관을 찾아가 담당자를 애타게 찾기도 하고, 이명박 대통령에게 편지를 써서 보낼 생각도 가졌다고 했다. 또 한국 입국 직후 자신을 도와주었던 국정원 및 경찰 관계자에게도 전화를 걸어 도움을 요청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는 못했다.

그러나 다행히 선상 비자가 발급되어 그는 이 날 극적으로 가족들과 재회할 수 있었다. 그는 그 누구도 원망하지 않는다고 했다. 가족을 다시 만났다는 기쁨이 지난 시간의 모든 아픔과 고통의 기억들을 잊게 한 듯 했다.

그렇게 네 가족은 비로소 눈물을 거두고 지난 못 다한 웃음꽃을 피우며 서로의 꼭 잡은 손을 놓지 않았다. 딸 김 씨는 또 북한 정권의 선전과는 완전히 다른 남한 사회의 체험담을 설명하며 한국행에 대한 가족들의 근심을 가라앉히기도 했다.

하지만 사실 이들 가족의 역경은 이제부터가 시작이었다.

혹 어떻게든 기적이 이루어져 어머니 고 씨의 병세가 완쾌되도록 노력하는 것도 그것이지만, 병원이라는 공공장소에서 버젓이 노출되어 있는 가족들을 하루빨리 은밀한 장소로 옮겨 보위부의 추적을 피하는 것이 일차적인 급선무였다.

아버지 김 씨에 따르면 이들 가족은 가족 모두가 탈북한 상황이기 때문에 북송 시 단련대 차원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전원 공개 처형될 상황이었다. 김 씨는 “현재 가족을 뒤쫓는 보위부 요원들이 있다”고 밝힌 뒤 얼마 전에는 그들의 탈북을 도와줬던 인물이 병원을 찾아와 신변 안전에 주의할 것을 경고하고 돌아갔다고 말했다.

실제로도 이들 가족의 상황은 위태로웠다.

이미 병원 관계자들은 한족 조선족 가릴 것 없이 거의 모두가 이들 가족의 정체를 알고 있었으며, 병원에 등록할 당시에도 가명이 아닌 실명으로 등록한 탓에 장부만 뒤지면 정체가 고스란히 드러날 상황이었다.

그 때문인지 한 조선족 의사는 아버지 김 씨를 찾아와 담배를 건네며 빨리 다른 장소로 옮길 것을 넌지시 암시해주고 가기도 했다고 한다. 특히 이들 가족은 얼마 전 한 기독교 목사를 만나 예배를 보기도 했기 때문에 체포된다면 기독교를 적(敵)으로 여기는 북한 체제상 죄가 가중될 처지였다.

때문에 아버지 김 씨의 마음도 적잖이 조급한 듯했다. 그는 지금 중국 위안화로 뭉칫돈을 갖고 있다고 했다. 만약 보위부에 적발되어 중국 공안에 넘겨져 북송 직전 도문(圖們) 변방대에 수감된다면 이 돈으로 빠져나올 생각이라고 했다.

선상 비자는 체류 기간이 한 달 남짓에 불과하기 때문에 딸 김 씨가 있는 동안 이들 가족은 어떻게든 어머니 고 씨의 병세를 완화시켜 은신처로 피하고 한국으로 가는 길을 모색해야만 하는 긴박한 상황이었다.

만남의 기쁨도 잠시, 이들 가족에게는 이제 더 길고 험난한 여정이 남아 있었다.

어머니 고 씨도 그것을 아는 것일까, 이미 수족조차 움직일 수 없는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며 딸에게 한국에서의 생활을 물어보고 있었다. 어머니의 손을 꼭 붙든 딸의 얼굴에도 기쁨과 걱정과 근심이 미미하게 얽혀가고 있었다.

다만 다행인 것은 현재 입원 중인 병원 측의 진료 태도가 애매한 탓에 어머니 고 씨가 평양의 한 병원에 입원했을 당시 진단받았던 위암 말기라는 병명의 사실 여부가 아직 불투명하고, 혼수상태에 빠질 정도로 아직 고 씨의 병세가 위중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이들 가족은 조만간 은신처를 마련해 거처를 옮길 계획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 곳에서 고 씨의 병세를 돌보며 향후 계획을 마련할 것이라고 했다. 딸 김 씨가 한국에서 일하며 모아둔 돈이 있기 때문에 고 씨의 상태가 호전된다면 한국으로의 여정에 다 같이 오를 수 있을 듯 했다.

이들 가족의 여정이 비로소 마침표를 찍기 위해서는 아직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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