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인권이사회는 지난달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25차 정기총회에서 "유엔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 산하에 북한 인권 상황을 관찰하고 기록해 책임을 규명할 현장 기반 조직을 설치하라"는 북한인권결의안을 채택했다. 현장 사무실이라고 해야 통역을 포함해 5명 내외 수준이다. 독일 나치, 캄보디아 크메르루주에 비견되는 북한의 반(反)인도 범죄를 감시할 국제기구 사무소치곤 크다고 할 수 없다. 서울과 태국 방콕이 후보지로 거론돼 왔다.

외교부 대변인은 8일 사무소 유치에 관한 질문을 받고 "국제기구의 사무소 설치는 일방적으로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며 "요청이 있는 경우 이를 적극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정부가 유치에 부정적이라는 이날 본지 기사에 대한 반응이었다. 하지만 복수의 정부 관계자는 "사실상 포기했다" "고려해야 할 것이 많은 복잡한 문제"라고 말하고 있다.

정부가 걱정하는 것은 두 가지라고 한다. 하나는 현실론이다. 남북한이 고위급 접촉에서 상호 비방을 하지 않기로 한 상황에서 북한 인권을 조사하는 사무소를 우리가 유치해 북한의 턱밑에 두면 이산가족 상봉 등 인도주의 사업까지 제동이 걸린다는 것이다. 북한 인권 개선 면에서도 득(得)보다 실(失)이 많은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또 하나는 중국이다. 유엔인권이사회 이사국이자 유엔에서 영향력이 큰 중국은 서울 사무소 설치의 근거가 된 지난달 북한인권결의안에 반대표를 던졌다. 북핵 등 중국과 협력이 중요한 상황에서 마찰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논리는 북한 인권과 관련해 지난 정부들의 실수를 반복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피하기 힘들다. 한국은 2003년부터 2007년까지 북한이 1차 핵실험을 했던 2006년을 제외하고는 유엔 북한인권결의안에 불참하거나 기권했다. 그러나 그 기간 동안 북한 인권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중국 문제도 마찬가지다. 북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중국과 협력하듯이 북한 인권 문제 개선에도 중국을 설득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국제기구 사무소가 일방적으로 결정되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방향을 정해 유치했던 사례가 없었던 것도 아니다. 우리 정부는 "협의하고 있다"고 했지만 아직 이 사무실을 "유치하겠다"고 명확히 밝힌 적이 없다.

박근혜 대통령이 독일 드레스덴 공대에서 밝힌 '한반도 평화통일을 위한 구상'은 200자 원고지 38쪽 분량이었다. 박 대통령은 연설에서 경제난에 방치된 북한 어린이와 자유를 찾아 국경을 넘는 탈북자를 이야기했지만 끝내 '북한 인권'이라는 말은 넣지 않았다. 과거 서독은 동독에 대한 지원을 인권 개선과 연계했고, 우리 정부 동북아평화협력구상의 모델인 헬싱키 프로세스의 핵심도 동유럽의 인권 개선이었다. 선제적인 외교는 북핵 뿐만 아니라 북한 인권에도 적용될 필요가 있다. 유엔 현장 사무소 유치가 박근혜 정부의 북한 인권 정책을 대내외에 보여주는 바로미터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잊어선 안될 것이다.

박수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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