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유통 중인 <천재교육> 출판 ‘고등학교 한국사(교육과학기술부 검정 2010.7.30)’에 나오는 북한 핵문제에 대한 묘사는 이렇다.
■ 북한 핵문제.
1992년 국제원자력 기구(IAEA)는 북한의 핵 개발 의혹을 제기하였다(···)이에 미국이 북한에 대해 강경대응하기로 하여 한때 미국과 북한의 관계가 전쟁 일보 전까지 치달았다. 다행히 1994년 6월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 북한을 방문하여 김일성 주석을 만나 타협의 실마리를 찾았고 전쟁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6·15남북공동선언 이후 북한과 미국 관계도 한 때 큰 변화를 보였다. 2000년 북한과 미국의 클린턴 정부는 특사를 교환하는 등 상당한 관계 진전을 보였다. 하지만 2001년 새로 출범한 미국의 부시정부는 북한을 테러 지원국가로 지목하는 등 강경태도를 보였다.(···)
이와 같은 북한 핵문제 해결을 위해 2003년부터 2007년까지 한국, 북한,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가 참가한 6자 회담이 6차례에 걸쳐 베이징에서 열렸다.(···)하지만 이의 실행 과정을 둘러싸고 북한과 미국 간에 갈등이 계속되면서 북한 핵문제 해결은 다시 난관에 부딪쳤다(398p).
북한의 핵개발 역사는 곧 북한의 역사다. 김일성은 1954년 핵무기 방위부 사령부를 만들어 핵을 개발하기 시작했고 1979년 영변 원자로를 지으면서 본격화했다. 북한이 적화통일을 위해 60년 넘게 사력을 다해 만들어 온 게 핵무기다.
그러나 교과서는 북한의 핵개발 의도나 원인에 대한 묘사가 없다. 오히려 “미국의 강경대응” “테러국가 지목” “미국의 강경태도” 등 핵위기에 미국의 책임이 있다는 식으로 써 놨다. 북한은 할 만큼 했는데 미국의 압박으로 “핵문제 해결이 계속 난관에 부딪쳤다”는 편파적 묘사다.
6·25사변 후 북한과 한국에 대한 묘사는 충격적이다.
■ 북측은 평화통일론을 내세우며 전후복구에 필요한 시간을 벌었다. 반면 남측은 미국과의 동맹을 강화하여 군사력을 보강하는 데 주력하였다.(330p)
북한은 평화통일과 전후복구에 나섰지만 남한은 미국을 통한 군사력 보강에만 주력했다는 식이다. 세계사적 성공의 사례인 한국에 대해선 돌팔매를 던지고 최악의 실패 모델인 북한은 감싼다. 교과서는 북한의 소위 사회보장제도에 대해서도 이렇게 적었다.
■ 북한은 전후복구와 경제건설에 자신감을 얻으면서 사회보장제도도 도입하였다. 1975년 11년제 의무교육을 실시하였고 1980년에는 전반적인 무료치료와 의사담당구역제를 골자로 하는 인민보건법을 제정하였다. 또한 1970년대부터 탁아소와 유치원 등 공동육아를 위한 시설들이 광범위하게 건설되었다. 이러한 사회보장제도는 이후 북한의 경제성장이 멈추면서 질적인 보장이 어렵게 되었다(392p)
“전후복구 경제건설 자신감”을 통한 “11년 의무교육·무료치료·의사담당구역·공동육아”까지 하였는데 경제성장이 멈추면서 질적인 보장이 어렵게 됐다고 적었다.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어 놨는데 경기침체로 다소 나빠진 정도란 식이다.
완벽한 왜곡이다. 북한의 소위 무상의료·무상교육·무상배급 시스템은 북한주민 절대다수를 ‘인민의 적’ 농노나 노예로 결박해 만들어 낸 구조다. 그나마 90년대 중후반 다 무너져 내렸고 지금은 평양 인근 핵심계층이나 보장해주는 게 북한의 소위 사회보장제도다.
김일성의 주체사상 도입에 대해서는 이렇게 적었다.
■ 김일성 유일사상 체제를 세우다.(···)1960년대 들어 북한은 소련의 평화공존노선을 정면으로 비판하면서 대립적인 노선을 취하였다. 또 중국의 소극적 베트남 지원과 문화 대혁명을 비판하면서 중국과도 대립하였다. 1965년 김일성은 사상에서의 주체, 정치에서의 자주, 경제에서의 자립, 국방에서의 자위라는 주체사상의 핵심적인 내용을 발표하였다(391p)
이승만·박정희 정부에 대해선 “독재정부”라며 가혹한 비난을 하면서 700만 민족을 죽이고 2400만을 노예로 만든 김일성 주체사상에 대해선 “자주·자립·자위” 등 북한의 선전 문구를 그대로 소개한다. 물론 주체사상에 대한 비판적 서술을 이후 나오지 않는다. 김정일 선군정치에 대한 묘사도 이렇다.
■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군부를 앞세운 선군정치를 통해 북한이 마주한 총체적 위기를 돌파하려 하였다.(···)2000년대 들어 북한은 보다 적극적으로 외부의 자본을 유치하려 하는 등 국제 분업 체제에 편입하려는 노력을 하였다, 하지만 이는 북한 핵문제, 일본인 납치 사건 등의 난관에 부딪쳤다.(···)북한의 사회주의 계획경제의 기본 틀은 유지하면서도 시장경제적 기능을 일부 도입, 활용한다는 실리 사회주의 경제노선을 표방하고 있다. 하지만 이와 같은 북한식 개혁 개방은 국제사회의 신뢰부족으로 많은 제약을 받고 있다(400-401)
김정일은 “적극적으로 외부 자본을 유치하고 시장경제적 기능을 일부 도입한” 적이 없다. 몇 차례 개방을 시도한 적은 있지만 정권붕괴·체제몰락 위기감 때문에 다시 과거의 통제 시스템으로 돌아갔다. 소위 “실리 사회주의 경제노선”은 정권의 선전용 문구일 뿐 끝까지 개혁·개방을 거부하는 것이 북한의 현실이다. 교과서는 이런 초보적 진실도 담지 않고 있다.
교과서는 자유가 박탈된 북한에 대한 본질적 문제제기가 없다. 대한민국 사회에 대해선 한 없이 난도질 하면서 북한체제에 대해선 한 없이 관대하다. 청소년들이 이런 책을 가지고 배우는 한 한국의 미래는 절망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