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 천 년이 저물 무렵 한국은 한차례 액땜을 하더니, 새 천 년에 접어들기 무섭게 정치를 제외한 전 분야에서 세계적 영웅을 배출하기 시작했다. 반세기 동안 축적된 자본과 경험과 지식에 힘입어 경제만이 아니라 스포츠와 예술에서도 세계 10위권은 더 이상 뉴스거리가 안 된다. 이제는 세계 1위가 아니면 별로 관심을 끌지 못한다. 여자양궁이나 쇼트트랙이나 바둑에서는 금메달이 당연하고 은메달은 이변이다. 1976년 올림픽 첫 금메달을 따던 때를 생각하면 격세지감이 든다. 1977년 수출 100억 달러와 1인당 국민소득 1000달러를 예상보다 3년 일찍 동시에 달성하고 감격에 겨워하던 걸 생각하면, 수출 5000억 달러와 1인당 국민소득 2만 달러는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다. 과연 같은 나라일까.

아프리카나 중남미나 동유럽에 이런 나라가 있다면, 국토 10만 km²에 인구 3천만에 석유 한 방울 나지 않는 세계 최빈국이 40여년 식민지의 질곡을 벗어난 지 10년도 안 되어 일방적으로 유린당한 내란으로 잿더미가 되고 그 후에도 끊임없이 붉은 무리로부터 전쟁의 위협에 시달리면서 불과 반세기 만에 창해상전(滄海桑田)으로 변신했다면, 한국인은 어떻게 평가할까. 일본이나 독일의 부흥보다 높이 평가하지 않을까. 군사쿠데타가 있었지만, 단 한 명도 죽이지 않았고 그 군인들이 산업화를 모두 마무리했다면, 걸핏하면 터지는 쿠데타로 수만 수십만이 학살되는 게 예사인 아프리카의 어느 작은 나라에서 한강의 기적이 일어났다면 어떻게 평가할까. 스웨덴이나 핀란드보다 높이 평가하지 않을까. 서구 수준에 근접하는 민주화도 군 출신 지도자가 말 한 마디로 일촉즉발의 시위를 잠재우고 평화롭게 달성했다면, 그런 일이 수천 명의 정적을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이는 것이 다반사였던 중남미의 어느 작은 나라에서 일어났다면 어떻게 평가할까. 네덜란드나 스위스보다 높이 평가하지 않을까.

영국과 프랑스, 독일과 일본을 여반장으로 물리치고 미국의 아이폰과 선두를 다투는 갤럭시 시리즈가 한때 한국의 우물 안 개구리 지성이 이상향으로 생각했던 동유럽의 어느 나라에서 떠올랐다면, 한국인은 어떻게 평가할까. 한 세기 동안 세계 최고 부국으로 군림하고 있는 미국보다 높이 평가하지 않을까.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자랑하는 포항제철급 종합제철소가 도미노 적화(赤化) 공포에 떨던 동남아 어느 나라, 이를테면 말레이시아나 태국에서 우뚝 솟아올랐다면, 한국인은 어떻게 평가할까. 드골의 프랑스보다 높이 평가하지 않을까. 정보화 시대의 쌀인 반도체 부문에서 독일과 일본을 누르고 세계 2위로 올라선 회사가 인도나 중국에서 선견지명을 가진 어느 기업총수의 고집에 의해 태어났다면, 한국인은 어떻게 평가할까. 인도식 사회주의, 중국식 공산주의의 승리라고 환호하지 않을까.

김연아가 북한에서 배출되었다면, 한국인은 어떻게 평가할까.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아니라 평양의 창광스타일이 세계의 눈과 귀를 즐겁게 했다면, 한국인은 어떻게 평가할까. 유엔 사무총장과 세계은행 총재가 북한 출신이라면, 한국인은 어떻게 평가할까. 당장 휴전선을 철거하라고 손에 손에 화염병을 들고 뛰어가지 않을까. 1인당 국민소득이 한국이 1000달러도 안 되고 북한이 2만 달러가 넘는다면, 국내외 여행이 한국은 꿈도 못 꾸고 북한은 아무나 하는 것이라면, 당장 평화적으로 적화통일하자고 광화문을 점거하지 않을까.

왜 한국에서만 이런 일이 가능할까. 왜 한국에서는 당연시되는 일들이, 세계 10위권이 당연시되는 일들이, 세계 1위 2위가 정치를 제외한 모든 분야에서 수시로 일어나는 일들이 북한에서는 불가능할까. 숫제 상상조차 안 될까. 집집마다 독재자 부자의 초상이 먼지 한 올 묻지 않은 상태로 걸려 있는 것이 북한에서는 당연한데, 불이 나면 최우선적으로 그걸 구하는 것이 북한에서는 당연한데, 한국에서는 상상도 안 될까. 해방 이후 단 하루도 그런 걸 상상할 수 없었을까.

선거에서 당선되었다는 이유만으로, 3권 분립이라는 이유만으로 스스로 도덕의 마침표요, 능력의 느낌표요, 민주의 따옴표가 되어 소수의 늑대 울음으로 능히 다수의 양떼를 벌벌 떨게 하는 데서 삶의 보람을 찾는 정치인들에 따르면, 대한민국은 지난 60년 동안, 일제에 나라를 빼앗긴 시점까지 치면 지난 100년 동안, 친일파의 바이러스에 영혼이 오염되고 독재자의 쇠사슬에 육체가 묶이고 재벌의 드라큘라 이빨에 피가 빨려 노예와 거지와 깡패가 득실거려야 마땅할 터인데, 왜 이렇게 세계적인 인물과 세계적인 기업이 많을까.

해방 당시만 해도 북한은 산업시설과 지하자원의 90%를 차지하여 먹여 살릴 인구가 두 배인 한국보다 90:10이 아니라 180:10으로 유리했다. 그러나 지금은 북한 기준으로 10: 10000 이상으로 역전되었다. 북한은 부잣집 대문 앞에서 총 들고 설치는 깡패처럼 핵무기로 위협하는 망나니짓 외에는 할 게 없다. 오늘날 한국과 북한의 차이를 되짚어가면 결국 박정희와 김일성의 차이라는 결론에 다다른다. 바로 이것이다! 친북좌파가 득세하는 정치권에서는 이걸 절대 용납할 수 없다. 박정희는 그들에게 철천지원수니까. 영원한 정적이니까. 인간의 탈을 쓴 악마니까. 친일파로, 독재자로, 정경유착의 원흉으로, 모든 갈등과 모순의 주적으로 수십 년간 확인사살하고 부관참시한 박정희가 오늘의 한국을 있게 한 불세출의 세계적 위인임을 인정하는 순간, 그들은 평생 주장하던 바를 모두 부정해야 하니까. 스스로를 부정해야 하니까. 그들이 설 자리가 없어지니까. 인사청문회에서 또는 국정감사에서 파란 독을 피우기는커녕 고개를 푹 숙이고 눈물콧물 흘리며 공직에서 모두 물러나야 하니까.

그들은 여당의 동조자 및 386운동권에 영혼을 판 문화권력과 손을 잡고 양비론으로 김일성을 비판하는 척하여 예봉을 피하는 즉시, 천인공노할 민족반역자 김일성과 김정일과 김정은이 저지른 모든 죄악에 대해서는 내재적 접근이란 철면피 방패를 쳐들어 김씨왕조에게 면죄부를 은근슬쩍 발부한 다음, 적벽대전에서 조조가 제갈량의 배에 쏘아대던 화살처럼 박정희의 치적, 한강의 기적을 향해 소나기처럼 비난의 화살을 쏘아댄다. 적벽대전의 조조 화살처럼 그들의 화살은 한 대도 박정희를 맞추지 못한다. 조조의 화살이 고스란히 제갈량의 화살이 되었듯이 그들의 화살은 산더미같이 정통우파의 섶에 꽂힌다. 여당 안에서도 오래전에 소수로 전락한 정통우파의 무기고에 차곡차곡 쌓인다. 이제 그들이 환장할 노릇이, 박정희의 딸 앞에 산더미처럼 쌓인다. 아직 정통우파는, 박정희의 딸은 쌓인 화살을 한 대도 그들을 향해 날리지 않았다. 언제 그것이 그들을 향해 날아갈까, 언제 그것이 휴전선 너머로 날아갈까. 그들은 전전긍긍한다. 북한 독재를 향해 진실의 화살을 쏘고 북한인권를 향해 프라이카우프(Freikauf)의 화살을 쏘는 날, 김씨왕조와 친북좌파와 사이비 우파는 고슴도치 신세를 면하지 못할 것이다. (2013. 3.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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