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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북(從北)은 뜬구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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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북세력이라는 실체없는 존재를 놓고 사람들을 마구 마녀사냥한다"는 비판이 있습니다. 이 얘기를 들으면서 한번쯤은 '개념'을 정리해 두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역사가 있는 개념은 정의할 수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니체의 〈선과 악을 넘어서〉라는 책에 나오는 말입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저는 아예 이 경구를 머리에 새겨 두었습니다. 하나의 개념에 대한 입장이 얼마나 다양한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는지 깨닫게 해주는 말입니다.
정의(定意:definition)를 하려면 '종'과 '류(유)'가 뚜렷해야 합니다. 가령 '사람'을 정의할 때 국어사전은 "생각을 하고 언어를 사용하며, 도구를 만들어 쓰고 사회를 이루어 사는 동물"이라고 합니다. 동물이라는 '유(類)' 안에서 이런 저런 속성의 차이를 찾아 사람이라는 '종'(宗)을 특정하면서 하나의 '정의'가 탄생하는 것이지요.
요즘 한국 사회에서 '종북'이라는 단어는 그야말로 대박 히트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이 단어의 '정의'를 모릅니다. 니체식으로 말해서 너무 깊은 맥락, 역사, 해석가능성을 갖고 있어서 정의가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제가 판단하기로는 너무 역사가 짧아서 정의를 못하는 듯합니다. 속성이 제대로 밝혀질 정도의 시간이 안 지났는데, 이상하게 우리 언어공동체는 마치 이 말을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다는 듯이 '순식간에' '자명하게'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개념'이 생성되고 유통되는 것은 결코 간단할 수 없는데 이상하게 이 '종북'이라는 단어는 2008년 민주노동당 분당과 진보신당 창당 과정에서 불거지고, 우리의 진중권 선생이 자세히 해설까지 해 주면서 등장했는데요. 말하자면 불과 5년도 안 돼 그야말로 '유명'해져 버렸습니다. 마치 수십 년 동안 알고 있었던 단어처럼 익숙하기조차 합니다.
급속하게 유통되었던 단어 중에 '386'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운동권 출신들이 대거 우리 사회의 권력층으로 이합집산하는 과정에서 언론을 통해 퍼진 대표적인 저널리즘적 용어입니다. 30대, 80년대 학번, 60대생이라는 뜻이지요. 공교롭게도 '30대'를 의미하는 '3'자를 집어넣음으로 해서 그들이 40대가 되고, 이제는 50대가 된 마당에 계속 사용하기에는 적당치 않아 서서히 사어화(死語化)되고 있는 상황이지요.
'386'은 대신 의미가 명징해서 실체 논쟁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종북'이라는 개념은 엄청난 속도로 퍼졌으면서도 아직도 "이게 뭔 뜻인가? 실체가 있나 없나?" 그런 논쟁이 계속됩니다. 느낌상으로는 꼭 '애늙은이'같은 단어입니다. 나온 지도 얼마 안 된 것이 온 사회를 헤집고 다니며 심판도 보고 훈수도 두는군요.
십여 년 우리 사회의 '종북문제'와 함께 해 온 저의 판단은 이렇습니다. '종북'이란 단어는 사실은 신조어가 아니라 '새로운 별명'같은 것입니다. 말하자면 '이미 있는 실체'에 대한 새로운 이름으로 등장한 것입니다. 이 단어는 시류를 타고 없어질 저널리즘적 용어도 아니고, 전혀 없던 것이 새로 나온 발명어도 아니고, 가려져 있던 어떤 실체를 명징화하면서 사람들의 머리를 신선하게 치게 된 것이지요. "앗. 바로 이거네!" 그런 느낌과 함께 말입니다.
결국 '종북' 또는 '종북세력'에 관련된 남은 쟁점은 다시 '정의'의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뭔가 희미한 것, 어렴풋한 것을 딱 짚어내 주는구만." 싶기는 한데, 정작 정의는 안 되고 있다는 것이지요. 이 정의를 어떤 수준에서 내릴 것인가, 우리 사회가 지금 본격적인 고민에 들어와 있습니다. 이건 결코 간단하지도 쉽게 해결되지도 않을 문제입니다.
현재 우리 사회가 이 정의를 제대로 내리지 못한 사이, 우리는 통합진보당과 김재연 이석기같은 국회의원까지 갖게 되었군요. 한국사회는 지금 종북문제를 겨우 윤리도덕적인 모럴 문제 정도로 소화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종북문제는 명백히 법적인 문제입니다. 형법상 대남간첩 또는 고정간첩, 국가보안법상 반국가단체(조선노동당, 조총련) 조직원, 이적단체 (범민련, 한총련) 조직원이 기본적인 종북, 그리고 이들을 돕고 지지하는 세력을 총칭하여 '종북세력'이라고 규정할 수 있지요.
쟁점이 남아있다면 어느 정도의 '지지'를 종북이라고 할 것인가?
가령 박원순 시장이 도마위에 올라있는데요. 이분은 시민운동 시절부터 음으로 양으로 이들 조직 또는 연관 조직을 많이 도운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쯤되면 종북세력에 포함되는 것 아닌가요? 저의 견해는 상당히 적극적인 종북이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입장 차이가 있지만 적어도 저는 적극적인 지지로 본다는 것입니다.
저는 가끔 널리 알려진 종북인사들의 페이스북에서 이적성 글에 '좋아요'를 누른 사람들이 누굴까 확인해 볼 때가 있습니다. 이들까지 종북세력이라고 부를 수야 있겠습니까만은 우리 나라가 '범죄성' '이적성'에 대해 너무 자신만만한 것이 아닌가 심히 걱정됩니다.
'종북'이라는 용어는 새로운 '법적 정의(legal definition)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독일이 세계 제2차 대전 이후 나치 청산을 위해 형법을 통해 엄밀하게 나치, 또는 국가사회주의를 금지시킨 것과 같이 우리 사회가 '김일성집단' 지지 및 찬양에 이르기까지 엄밀하게 금지시키기 위해서는 새로운 규범이 요구됩니다.
그 선결조건이 범 국민적인 각성입니다. "왜 김일성집단은 안 되는가?" 알고 싶지도 믿고 싶지도 않고, 간첩도 허상이고, 국가보안법도 인권 탄압법이라고 주장하는 세력에 한참 휘둘리고 있으니 어떻게 '종북'이 법적으로 정의될 수 있겠습니까? 김일성집단을 인정하고 동조한다는 것은 가치적 차원에서 국가적 자살행위라는 각성이 시급합니다.
이 위험한 국가적 방황이 대가 없이 빨리 끝나길 바랄 따름입니다.
2013년 2월15일 〈세이지코리아〉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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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영 세이지코리아 대표는
서울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 대학원에서 현대문학 석사를 받았으며, 한동대 로스쿨에서 미국법 및 국제법을 전공했다.
북한민주화네트워크 기관지 편집장, 조선일보 통한문제연구소 기자, 한동대 이공계융합교육연구센터 초빙교수, 한국전쟁납북사건자료원 연구실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 미국 노트르담대학 로스쿨에서 국제인권법을 전공하고 있으며, 통일 지도자 양성 단체 '세이지코리아'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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