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분들이, 왜 우파 새터민인 백요셉이 애초에 임수경과 사진을 찍고 싶어했는가 궁금해했다.

처음부터 색깔론을 겨냥한 음모였거나 혹은 기회주의적인 행동이 아니었을까 의심했던 것이다. 그러나 나는 새터민 학교의 교사로서 임수경과 사진을 찍고 싶어했던 백요셉씨가 이해된다.

임수경이 젊은 시절 평양을 방문했을 때, 북한 주민들은 '통일의 꽃'이라는 그 처녀에게 완전히 반했었다. 주어진 원고도 없이 즉석에서 자기 의견을 피력하는 용기와 순발력, 감히 얼굴을 들어 바라보기도 두려운 김일성에게 푹 안겨서 울어버리는 자유로운 감정표현, 그러면서도 김일성이 준 선물을 호텔에 깜박 잊고 두고 가는 천진한 모습, 매일같이 바뀌는 패션, 공개된 장소에서 천주교식 성호를 긋는 신기한 행동.. (어느 대북 풍선 전단에는 ‘림수경처럼 기독교인이 되고 싶지 않습니까?’라는 재미있는 문구까지 있다.)

삭막한 병영 같은 평양 한복판을 활보하는 자유로운 남조선의 여대생. 그녀는 너무나 신선한 남쪽의 바람이었다. 임수경이 가는 곳마다 북한 주민들이 한번 만져보고 이야기를 나눠보고싶어 밀려들었고, 때로는 그런 극성 팬들에 의해 안전원들의 통제선이 무너지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기까지 했었다.

"언제부터 우리 인민들이 이렇게 당의 통제를 안 따르게 되었지?"

당시 안전원들은 웃으면서 이런 말들을 주고받았다고 한다.

북한 주민들은 '자신들의 수령(남한 대통령)얼굴에 침을 뱉고 평양에 온 임수경은 당연히 처형당하고, 가족은 (남한에도 그런게 있다면)정치범 수용소에 같히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결국 그녀가 문규현 신부의 손을 잡고 판문점을 통해 귀국하던 날, 북한 전국은 울음 바다가 되었다.

"제발 이 선물을 림동무에게 전해주세요!"

"돌아가면 죽어요, 제발 여기서 같이 살아요!"

"림동무 나랑 결혼해요! 여기에 살아요!"

이것것이 당시 북한 주민들의 진심어린 마음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가 내려가서도 잘 살아있다는 소식, 감옥에서도 편지를 쓰고 사상을 굽히지 않는다는 소식이 북쪽으로 전해질 때 마다 주민들은 의아해 했다.

"당장 안 죽은것도 신기한데 편지라니, 세상에 그런 감옥이 다 있냐?"

그러면서 남한 사회가 생각보다 괜찮은 곳이라는 추론을 나누기도 했다고 한다.

십대, 이십대에 불과한, 그 당시에는 태어나지도 않았던 나의 새터민 제자들도 마치 직접 본 것처럼 이야기를 나눌 정도로, 북한 주민들에게 임수경은 전성기의 서태지를 능가하는 세대를 초월한 신화가 된 것이다.

"선생님, 선생님, 저희 엄마는 당시에 림수경이랑 사진도 같이 찍었더래요!"

한 제자가 나에게 이런 자랑을 했던게 겨우 얼마 전이다.

그렇기에 통진당이나 주사파라면 치를 떠는 새터민들조차 임수경에게만은 호의를 보이며 어디서 뭐 하고 있는지 물어보는 경우가 적지 않다. 백요셉 씨조차 그런 정서에서 자유롭지 못했을 정도로. 즉, 김일성을 찬양하러 올라갔던 임수경이지만, 한편으로는 북한 주민들에게 남한의 밝은 면을 부각시켜 준 공로도 없지 않은 것이다. 북한 정권과 종북 세력에게는 김일성의 딸로, 386 세대에게는 민주화의 꽃으로, 북한 인민과 새터민들에게는 수퍼스타로..

이토록 많은 사랑을 받았던 사람이 없었다. 만약 입만 꾹 다물고 이미지만 잘 지켰으면, 통일 한국의 대통령도 꿈꿔 볼 수 있을만한 인지도였다.

그러나 이번 사건은 새터민들이 갖고 있던 모든 애정을 무너뜨렸다.

“탈북자는 (북한 정권의)변절자다.”

이미 김씨 일족에 대한 애정이 바닥을 드러낸 북한 주민들, 중국과 러시아, 그리고 남한에 탈북자 친척 하나쯤은 두고 있는 수백만의 애타는 마음을 후벼파는 상처를 준 것이다. 지금쯤이면 핸드폰과 장마당을 통해 실시간으로 남한소문을 듣고 있는 평안북도, 함경북도, 자강도, 양강도 지역 인민들에게는 이 사실이 쫙 퍼졌을 것이다. 그녀가 준 호감이 컸던 만큼 배신감도 클 것이다. 주사파 세력에게는, 심지어 자유 통일이 된 후에도 써 먹을수 있었을만한 히든 카드의 상실이다. 그리고 대한민국에서는 ‘요즘 세상에 종북주의자가 어디 있냐’는 질문에 대한 훌륭한 답변이 되어주었다.

어찌 생각해 보면, 임수경, 그녀는 통일의 꽃이 맞다.

김일성을 높이러 올라갔지만, 도리어 남한의 자유를 전해주었고,

북한 인권법과 자유통일을 막기 위해 국회에 갔겠지만, 도리어 종북의 실체를 알려주었다.

북한해방, 자유통일의 날이 가까워 오는 것이 느껴진다.

임수경의 좌초. 부담스러운 지뢰 하나가 치워진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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