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밀착취재(?)

필자는 작년 한 선배 기자로부터 “기자는 변호사 등 소위 ‘사(士)’자가 들어가는 직업과는 달리 ‘놈 자(者)’자가 들어가는 직업이다”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비록 모든 ‘사’자 돌림 직업이 ‘선비 사(士)’를 쓰는 것은 아니지만, 그만큼 힘든 직업이라는 일종의 충고였다.

그런데 필자가 중국 현지에 나와 북한 내부를 엿보면서 항상 느끼는 것은 ‘북한 언론매체의 기자들은 그야말로 팔자가 늘어졌다’는 것이다.

서울에서 만난 탈북자들에 의하면 북한에서의 기자는 집안 배경이 좋고 학벌이 좋고 무엇보다도 ‘출신성분’이 좋아야만 할 수 있는 존경받는 직업이다. 하지만 북한의 기자들이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이유는 한국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그들은 숨겨진 특종을 발굴해 국민들에게 신속하고 정확하게 전달함으로서 신뢰받고 또한 그로 인해 존경받는 것이 아니라, 민간 계층으로서는 유일하게 김정일의 사진을 찍고 소식을 전하는 등 ‘김 씨 부자에 대한 찬양’을 직접적으로 함으로서 출세의 탄탄대로가 절대적으로 보장된다는 점에서 존경받고 있었다.

실제로 필자가 접한 북한의 언론보도는 과장 하나 안 보태고 모두가 김 씨 부자에 대한 찬양 일색이었다. 사실 대중 언론이 어느 한 개인에 대한 찬양만을 일삼는다면 그것은 언론으로서의 생명을 이미 잃은 것이라 할 수 있다.

북한의 기자들은 오로지 김정일에 대한 찬양을 밥먹듯이 일삼을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늘어진 팔자를 영유하고 있었다.

그런데 북한의 기자들이 팔자가 늘어진 이유는 또 있었다. 바로 김 부자 찬양을 위해 힘들게 근거가 되는 정보를 수집해 검증할 필요 없이 가히 소설 수준의 허위보도를 서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었다.

물론 기자도 취재 과정에서 실수를 하고 오보(誤報)를 낼 수 있다. 하지만 의도되지 않은 오보와 의도된 오보는 그 차원이 매우 다르다. 북한 기자들의 허위보도 수위는 만약 한국이었다면 당장 허위보도 혐의로 구속되어 징역형을 받고도 남을만한 수준이었다.

필자가 본 북한의 기자들은 힘겹게 현장을 누비며 정보를 수집해 독자들의 ‘알 권리’를 충족하는 대신, 앉은 자리에서 편하게 소설을 작성해 사실상 독자들의 ‘알 권리’를 빼앗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실례를 하나 들어보자.

조선중앙통신은 11일 ‘인권유린의 원흉 - 미국’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보도했다. 우선 제목부터가 파격적이다.

중통은 이 보도기사에서 미국이야말로 세계 최고의 인권 유린국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그들이 주장에 대한 근거로 제시한 정보는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는 모두가 북한 주민들을 제외한 60억 지구촌 인구에게는 전혀 금시초문(今時初聞)인 것들이었다.

그들이 제시한 근거를 하나하나 찬찬히 살펴보자.

중통은 우선 미국을 “0.2%의 부유족속(부유층)들이 국가 자산의 60%를 거머쥐고 특권을 행사하며 회사의 고위관리들과 일반근로자의 임금 차이가 400배나 되고 3,820만 명의 사람들이 굶주림에 시달리는 나라”로 규정했다.

그리고 “2008년 8월 ‘미연방질병통제예방센터’의 자료에 의하면 2007년 말의 빈궁자(빈곤층) 수는 2006년에 비해 80만 명 더 늘어난 총 3,730만 명에 달하였으며, 전체 인구의 9.8%에 해당한 약 760만 세대가 최하의 빈궁선에서 생활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서 중통은 “미 연방 수사국이 2008년 9월에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2007년에 발생한 폭력범죄는 140만 건으로서 22.2초당 한 건의 폭력범죄가 발생하고 있다”며 “그 중 30.9초당 1건의 살인사건이, 5.7분 동안에 1건의 강간사건이, 1.2분 동안에 1건의 강탈사건이, 36.6초 동안에 1건의 습격사건이 발생 한다”고 지적했다.

또 “(미국) 사법성의 통계자료에 의하면 2001년부터 2007 회계년도까지의 기간에 미국의 법집행 성원(법원과 검경찰)들이 공민들의 권리를 침범한 사건은 25% 늘어났다”며 “2003년부터 2005년까지 미국의 47개주와 콜롬비아 특별구에서 2,002명이 체포과정에 죽었는데 그중 1,095명은 현지 경찰들의 총에 맞아 죽었다”고 강조했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중통은 미국에 대해 “선거인단을 통한 간접선거제로 인해 근로인민대중이 선거권을 박탈당하고 있다”고 주장하는가 하면 “인종 차별에 따라 매 년 8만 4천 명의 흑인들이 치료를 받지 못해 목숨을 잃고 있다”라고도 지적했다.

그리고 “영국 로이터 통신은 미 연방정부의 통계를 인용해 미국에서 비법(불법)적으로 고용된 소년 노동자의 수가 29만 명에 달하고 있다는 소식을 보도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그런데 혹시나가 역시나였다.

외신에 의해 이미 보도된 미국과 관련한 극히 일부의 ‘진짜’ 소식을 제외하고는 위에서 언급된 중통의 주장들은 필자가 여러 경로로 확인해본 결과 모두가 ‘소설’인 것으로 드러났다.

미국 국민 중 3,820만 명이 굶주림에 시달리고 있고 근로자가 선거권을 박탈당한다는 주장은 말할 것도 없으려니와 미연방질병통제예방센터는 미국의 빈곤자 수가 3,730만 명이고 760만 세대가 홈리스(homeless) 생활을 하고 있다는 발표 자체를 한 적이 없었다.

미 연방 수사국(FBI) 또한 미국에서 ‘22.2초당’ 사건이 발생해 2007년에 총 140만 건의 강력범죄가 발생했고 구체적으로 ‘30.9초당’ 1건의 살인 사건 등이 발생했다는 발표를 한 적이 전혀 없었으며, 법무부와 로이터 통신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흑인 남성을 대통령으로, 흑인 여성을 레이디퍼스트로 선출할 만큼 개방되었다는 사실을 숨긴 채 미국이 인종차별이 극심한 나라라는 것을 주장하기 위해 구체적인 근거자료 없이 내보낸 흑인 8만 4천 명의 연례적인 사망 보도 또한 미국 행정부 기관이나 국내외 외신 그 어디에서도 확인되지 않은 정보였다.

북한 기자들의 허위보도 수준은 이미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22.2초당’ 같은 구체적인 거짓 자료를 꾸며내고 정정 보도도 하지 않을 만큼 높은 경지에 이르러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북한 기자들의 만성적인 행태를 바라보는 북한 주민들의 시선은 어떠할까.

물론 ‘혁명의 수도’ 평양과 일부 지역에 거주하는 소수의 열성분자들은 이 보도를 철석같이 믿고서 ‘미제와 남조선 괴뢰도당’을 증오하며 그에 맞서 싸우는 김정일을 위대한 영도자라 추켜세우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21세기 현재 중국으로부터 빠르게 유입되는 외부 문물들을 장마당(시장)을 통해 직접적으로 접하고 있는 북한 주민들의 반응은 싸늘하기 그지없었다.

필자가 서울에서 만난 탈북자들 중 많은 수는 “장마당에서 TV를 구입하면 당국에 신고하지 않거나 당국이 이미 고정시킨 채널을 풀어서, 혹은 밀수된 알판(DVD)을 구입해 북한 방송 대신 외국 방송들을 즐겨 봤다”고 밝혔다. 그들 중 한 명은 중국 연변 조선족자치구의 지역방송이 한 때 방영했던 개그 프로그램인 ‘연변소품(延邊小品)’을 즐겨봤다며 프로그램명을 구체적으로 말해주기도 했다.

하긴 찬양의 대상인 김정일조차 북한 언론매체들의 계속되는 ‘찬양’이 지긋지긋한 나머지 탤런트 이영애 씨가 주연했던 모 방송의 사극 드라마 OOO를 애청하는 등 한국 방송만을 본다는데 더 말해서 무엇하랴.

수많은 북한 주민들은 물론 찬양의 대상인 김정일조차 코웃음 치며 외면해 버렸다 해도 북한 기자들의 허위보도는 북한에 세습 독재가 존재하는 한 내일도 모레도 계속될 것임은 분명하다.

문인 작가와 화가, 음악가와 무용수 등 예술적 창작이라는 본연의 임무를 압살당하는 현실에 절망해 탈북을 감행하는 북한의 예술가들처럼 ‘북한에 대한 사실 보도’라는 본연의 임무를 압살당하는 현실에 맞서 과감히 탈북하는 북한 기자들의 모습은 언제쯤 볼 수 있을까.

*필자가 한 탈북자로부터 들은 바로는 지난 80~90년대에 어느 북한 언론매체의 한 기자가 김일성의 측면에 서서 사진을 찍었다가 목에 달린 혹까지 함께 찍는 바람에 그 일가까지 모두 쥐도새도 모르게 사라져버린 일화가 있다고 한다. 그들의 출세는 사실 알고보면 목숨을 담보로 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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