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말리아 해적들의 한국상선 납치는 몇 가지 교훈을 남겼다. 그 중 하나는 적절한 외상치료의 필요성이다. 외상환자관리시스템은 선진국이 갖추어야 할 인프라다. 전담 전문인력, 환자후송수단, 응급수술 같은 처치시설, 그리고 이것들을 통합 운영하는 시스템이 있어야 한다. 적지 않은 재원이 소요될 것이다.

석해균 선장은 어느 외과의사의 헌신적 노력으로 목숨을 건졌다. 그 교수의사는 직접 주치의 노릇하느라 15일 만에 집에 들렀다고 한다. 흉부외과는 심폐의 수술을 전담한다. 특성상 분초를 다투는 경우가 많다. 전공의들은 만약을 대비하여 24시간 환자 옆을 지켜야 한다. 하루에 2시간 정도 자기도 하는데 간이의자 신세를 진다. 바로 옆방에서 숙식을 해결하는 경우도 많다. 몸에서 냄새가 나도 샤워하는 시간이 아까울 정도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일부 진료과목에 전공의 지원자가 없단다. 대도시 한복판에 진료공백이 우려된다. 21세기 한국형 ‘무의촌’이다. 정부/학회는 전공의들의 근무조건을 개선하고, 정부는 외과진료행위의 수가를 30% 인상한다고 한다. 별 효과가 없을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근본적 문제는 전공의를 마치고 전문의가 되어도 능력을 발휘할 곳이 없다. 나아가 가족을 부양할 자신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경우 꼭 맞는 대안은 자유시장의 원리다. 수익성이 나면 무슨 시스템이건 자본 투자할 사람 수두룩하다. 3D전공을 택할 새내기 의사들도 많을 것이다. 아담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을 거론할 필요도 없다.

시장은 만능인가? 그렇진 않을 것이다. 자원의 배분이 원활치 않아 종종 ‘시장실패(market failure)’가 일어난다. 정부는 심판자의 입장에서 잠깐 개입한다. 옐로우 카드를 준비하고 휘슬을 불면 된다. 잘못을 저지른 사람에게만 책임을 묻는다. 말을 바꾸면 시장의 기능을 막지는 않는다. 심판이 시시콜콜 경기에 간섭하면 재미가 없어 관중들은 자리를 뜬다. 지하시장이 붐빌 것이다. 시장의 조작과 왜곡은 결국 ‘정부실패(government failure)’를 불러온다.

시장의 문제점이 있음에도 강조하는 것은 정부실패의 치명적 단점 때문이다. 정부실패는 모든 책임을 고스란히 전 국민들에게 전가한다. 잘못이 없는 엉뚱한 사람들에게도 피해를 준다. 바로 시장의 복수다! 정부의 시장개입을 최소화해야 한다.

일부에선 건강관리나 의료문제에 시장의 원리를 전면적으로 부정한다. 돈 없는 사람은 시장에서 어떻게 살아남느냐는 문제 제기다. 도덕적으로도 아픈 사람을 외면하면 안 된다. 맞다! 그래서 건강보험이 있는 것이다. 보편주의를 채택하여 전 국민이 강제가입하고 보험혜택을 누린다. 재원도 사회적으로 조달한다.

한국에 과연 의료시장이 있는지 의심스럽다. 정부가 수가를 정하고 의료행위의 타당성을 판정한다. 게다가 의료소비자와 공급자들의 선택권을 제한하는 등 시장에 능동적으로 개입하기 때문이다. 의사들이 3D전공을 기피하는 사태는 전형적인 정부실패다. 정부의 개입은 전 국민을 잠재적 피해자로 만들 수 있다.

정부는 얼마든지 자원의 배분을 조작할 수 있다. 복지부의 ‘선택의원제도’는 시장을 교란하는 짓이다. 무늬만 바꾸어 주치의등록제의 첫 단추를 꿰고 보자는 것이다. 정권은 바뀌었어도 잃어버린 10년 그대로다. 국민건강보험은 ‘일정한 범위’ 안에서 자신의 역할을 찾아야 한다. 지금처럼 시장의 수요를 통째로 독점해선 안 된다. 가입자들이 낸 돈으로 인센티브 운운하며 시장을 농락해선 더더욱 안 된다.

의료분야에 건국이념인 자유주의가 보이지 않는다. 더 늦기 전 의료시장의 복수에 눈을 떠야 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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