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최근 방문한 북중 국경지역의 OO시에서 처음 받은 느낌은 ‘정말 넓다’였다.

산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혹 아파트에 가려서 보이지 않았는지는 모르지만) 끝없는 대지 저 멀리 지평선까지도 건물들만 우뚝 우뚝 서 있었다.

중국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육로로 이동하는데 보름, 심지어 한 도시에서 다른 도시로 건너가는 것만 해도 시속 100km를 줄곧 밟아도 약 다섯 시간이 걸리는데 더 말해서 무엇 하랴. 마치 그 옛날 이 곳 요동(遼東) 지역을 다스렸던 기마민족의 후예들이 지금이라도 그 어디선가 나타나 힘찬 말발굽 소리를 낼 듯 보였다.

말로만 듣던 중국 대륙은 정말 넓었고, 그만큼 바람도 크게 불었다(이제 막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는 요즘에도 이 지역에는 사람의 발길을 묶어둘 만큼 바람이 거세게 불었다).

이 지역에는 많은 조선족 주민들도 있었다.

그들은 우리와 같은 말 같은 문자를 썼으며, 우리와 같은 음식을 먹고, 그들의 문화와 한국의 문화를 공유했다.

특히 음식이 우리와 별반 차이가 없었다.

보기만 해도 아삭하고 매운 김치를 먹고, 향내가 구수한 된장국을 먹으며, 불고기와 냉면도 먹었다. 다만 다른 것이 있다면 단 하나, 중국식으로 두부를 발효시킨 취두부(臭豆腐)가 그것이었다. 필자는 중국 생활에서 아직도 이 취두부 만큼은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

그들은 또 요즘 한국에서도 인기가 높은 드라마 ‘OO의 OO’도 즐겨보고 있었다. 필자에게 “한국에서 자주 봤느냐”고 묻는 사람도 있었다. 휴대전화(핸드폰)를 사용하고 중형 승용차를 운전하는 등 필자가 한국에서 느꼈던 그릇된 인식과는 달리 그들의 삶의 질은 비교적 높아 보였다.

그들의 생활도 독특했다.

그들은 중국어와 우리말을 함께 구사했으며(일부는 중국어만을 구사하긴 하지만), 한국인이나 같은 조선족을 만나면 우리말을, 한족(漢族)을 만나면 중국어를 사용했다. 심지어 그들은 한족이 우리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것을 두고 놀리기까지 했다.

필자가 간혹 한족 주민과 대면하게 된다 해도 대화에는 문제가 없었다. 대화 도중 알아듣지 못하겠으면 그저 ‘한궐런(韓國人 - 사실 발음이 애매하다)’이라고 하면 그만이었다. 그러면 그들은 알아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참고로 한족들은 집 대문 마다 붉은 색의 부적을 붙여두고 있다. 붉은 색은 중국에서 재물(財物)을 뜻한다.

중국에는 다양한 종족이 공존하는 만큼 그 속에서는 이처럼 많은 에피소드들도 발견할 수 있었다.

물가 또한 물론 한국 기준으로 보았을 때 매우 낮았다.

하루 생활에 필요한 생필품들 대개가 중국 위안화로 10원(한화로 약 2,200원) 안팎에서 구입할 수 있을 정도였다. 현재 한국에서 서민들의 삶을 힘겹게 하고 있는 집값도 이곳에서는 염려가 되지 않을 듯했다. 30평은 족히 되어 보이는 집 한 채를 구입하는 데도 우리 돈으로 불과 1천만 원 안팎만이 소요된다고 했다.

단, 한국에서 수입된 물품들은 우리 기준으로 봤을 때에도 가격이 높았다. 예를 들면 해외에서도 인기가 높은 O라면의 가격이 위안화로 4원(한화로 약 900원)이었다. 이곳에서는 한국산 물건들이 높은 가격에 유통되고 있었다. 때문에 공항에서 급히 몇 푼 환전해서 챙겨온 필자로서는 국산 사용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

겉보기에는 이렇듯 평범하고 자유로워 보이는 그들의 생활에서도 그러나 보이지 않는 통제를 엿볼 수 있었다.

실례로 교회 등 종교 건축물은 당국의 허가가 있어야만 건축할 수 있었다. 때문인지 한 길 건너 교회가 하나씩 존재하는 한국과는 달리 이곳에는 종교 건물을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었다. 중국이 자본주의 시장경제 체제로 움직이기는 하지만 집권당은 엄연히 공산당(共産黨)임을 실감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여럿이 만나더라도 좀처럼 정치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필자가 중국 정치에 대해 묻자 현지에서 만난 한 주민은 “우리는 그런 이야기 잘 하지 않는다”고 말을 잘랐다. 정부에 대한 비판은 허용되고 있지만, 그들은 구태여 입을 열어 혹을 달려고는 하지 않는 듯 보였다.

이 주민은 또 집회와 시위가 허용되기는 하지만 중국에서는 이러한 야외행사도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고 했다. 천안문(天安門) 사태와 파룬궁(法輪功) 사태에서도 볼 수 있듯 중국 정부는 집회와 시위에 대해 매우 엄격한 편이다. 때문인지 이 주민은 최근 한국에서 불법(不法)적 촛불시위가 발생하고 여야가 충돌하는 소식을 뉴스에서 접하고 놀라는 눈치였다.

이렇듯 중국은 넓었고, 접할 것은 많았으며, 들을 이야기는 무궁무진했다.

하지만 필자가 이렇듯 대한민국 여권을 앞세워 호사(豪奢)를 누리고 있는 사이 목숨을 담보로 국경을 넘은 탈북자들은 저 멀리 시골에서 갖은 고생을 다하고 있다.

탈북여성 중 약 70%는 중국 조직폭력단에 의한 인신매매 범죄의 표적이 되고 있으며, 비교적 많은 돈을 갖고 탈북해 단속이 덜한 멀리 헤이룽장성(黑龍江省) 등지로 몸을 피함에 따라 용케 인신매매를 면한 탈북여성들 역시 저(低)임금 중(重)노동이라는 고역을 면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단지 태어난 곳이 달라 같은 하늘 아래 있으면서도 이처럼 하늘과 땅 차이의 생활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미치면 비감(悲感)을 감출 수 없음을 종종 느낀다.

단순한 동정심이 아닌, 그들 탈북자들의 인생을 바로 옆에서 항시 함께하고 있는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정신적 융화(融和)랄까.

필자가 중국으로 떠나기 전 가까운 사이인 한 탈북자가 농담 반 진담 반 섞어 한 말이 귓전에 맴돈다.

“너도 한족들 많은 곳에 가서 말이 통하지 않는 고통을 한 번 느껴봐야 하는 건데 말야”

그의 말을 곱씹으며 오늘도 필자는 그들의 생생한 인생(人生)의 현장을 찾아 차 한 켠에 몸을 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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