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김윤덕 기자가 탈북 여성 인텔리 최진이 씨를 인터뷰 했다. 그중 두 대목을 인용한다.
“내가 "북의 여자들이 비록 성매매를 거치더라도 중국이나 한국으로 탈출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하자,
여성학자들이 '말도 안 된다'며 아우성치더라. 그래서 내가 물었다. '야, 너희들이 기아가 뭔지 아나, 배
고픔이 뭔지 아나?' 굶주린 사람에겐 정의도, 신념도, 종교도 없다. 아무것도 없다."
"아들의 중학교 졸업식에 갔더니 교장선생님이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이야기를 하시더라. 씁쓸했다. 누
구나 그런 사람이 될 수 있는 게 아니다. 누구나 김연아가 될 수 없다. 다양한 재능과 꿈을 가진 아이들
에게 한국 사회는 끊임없이 성공 콤플렉스를 심어준다. 목사님 설교도, 스님들 법문도 몽땅 다 저 하늘
에 가 있다."
이상 두 대목을 한 마디로 줄이면 “북한 주민들에게 사치품을 가지라고 요구하는 건 무리”라는 것일 듯.
폐쇄, 공포, 병영화, 스스로 사는 법 박탈, 굶주림, 대형(大兄)의 신정정치(神政政治)란 이렇게 무서운 것
이다. 기독교의 가르침에 따르면 인간은 하느님 모상으로 창조되었다고 한다. 그 만큼 인간은 뛰어난 자
질을 부여받았다는 뜻이다. 그러나 최진이 씨가 그린 북한주민은 그런 자질을 잃어버린 모습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다. 그 만큼 인간은 조작(操作) 가능한, 그래서 별 것 아니라는 뜻도 된다.
한반도와 남한의 대치선을 흔히 좌-우로 가른다. 그러나 최진이 씨의 설명대로라면 그건 사치스러운 표
현이다. 보다 진실에 가까운 용어는 “기본적 인간조건(人間條件)이냐, 비인간화(非人間化,
dehumanization)이냐”의 대치선일 것이다. 전자(前者)를 대한민국 헌법이 대표하고, 후자(後者)를 김정
일 수령 독재가 대표하고 있다. 그리고 전자를 자유민주 세력이 주도하고, 후자를 친(親)김정일 세력이
싸고도는 형세다.
비인간화란 무엇인가? 그것을 ‘루시퍼 효과(Lucifer effect)’라는 말로 설명한 사례가 있다. 루시퍼는 하느
님의 정반대쪽에 있는 악마의 이름이다. 한 집단이 다른 집단을 열등인간, 짐승, 곤충, 파충류, 적(敵)으
로 단죄해서 그들을 악마적으로 학대하고 죽이고 린치하고 고문하고 격리 시키는 행위가 곧 비인간화
과정이다.
스탈린-히틀러와 그 아류(亞流)들의 학정(虐政), 인종차별주의, 부족 내전(部族 內戰), 종교적 성전(聖
戰)에서 흔히 있었던 일이다. 폴 포트와 김정일이 이 명단에서 빠질 수 없다.
이런 비인간화 과정을 두고 “성매매를 해서라도 도망치고 싶다”는 최진이 씨의 북한여성 스토리를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말할 경우(최진이 씨는 성매매 자체를 정당화 한 것이 아니다) 그게 과연 말 되는 소
리일까? 그보다는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분노하고 충격 받고 기절하고 “이럴 수가!” 하는 것이 참 인간
아닐까?
우리 남쪽 사람들은 가장 충격 받을 것에 충격 받을 줄 모르는 또 다른 의미의 비인간화를 겪고 있는지
도 모른다. 아니, 실제로 그렇게 보인다. 북한주민은 폭군(暴君)의 루시퍼 효과로 인해, 우리는 무감각으
로 인해 한반도가 ‘말도 안 되는’ 비인간화의 쓰나미에 휩쓸려 있다. 우리가 세워야 할 철학과 현실인식
의 체계는 바로 여기서부터 출발해야 하지 않을까?
2011/4/10
류근일의 탐미주의 클럽(cafe.daum.net/aestheticismclub)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