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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고) 황장엽 선생 영결식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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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물급 정치인이자 이웃집 할아버지였던 故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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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때인가 자유북한방송 사무실을 방문한 故 황장엽 선생. 故人이 참석하는 행사의 취재를 늘 기자가 도맡아 온 탓에 당신이 잠드신 지금 함께 찍은 사진 한 장 없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매우 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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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대부분을 북녘에서 독재정권의 도구로서 이용당하다가 마지막 13년의 삶을 남녘에서 독재에 항거하는 투사로서 끝마친 故 황장엽 선생의 영결식이 14일 열렸다. 향년(享年) 87세. 서울 송파구 풍납동 서울아산병원에서 열린 영결식은 당초 예정되었던 오전 10시보다 조금 앞당겨 진행되었다.
기자가 ‘故 황장엽 북한민주화위원장 통일사회장 장례위원회’를 돕는 보조인원 자격으로 참석한 10시 무렵 영결식장은 넓은 공간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추모인사들로 인해 좁아 보일 정도였다.
추모인사 중에는 민간 북한 인권단체 및 탈북자단체 관계자들은 물론 정계인사도 있었다. 수잔 숄티(Suzanne Scholte) 미국 디펜스포럼 대표가 미 정계를 대신해 참석했으며 김무성 한나라당 원내대표와 이회창 자유선진당 대표가 각각 대한민국 여야를 대표해 참석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조화(弔花)로 애도의 뜻을 표했으며 현인택 통일부 장관이 영결식에 참석했다. 기자가 전 날 빈소를 지키며 조문객을 맞을 당시 들은 바로는 박지원 민주당 원내대표도 12일 빈소를 찾았다고 한다. 그러나 박 원내대표는 영결식장에는 끝내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5일장 내내 빈소를 지킨 고인(故人)의 수양딸인 김숙향(68) 황장엽민주주의건설위원회 대표도 영결식에 참석했다. 지난 기간 고인을 그림자처럼 보호했던 경호원들도 여전히 고인의 마지막 길을 지키고 있었다. 김 대표와 여러 경호원 모두 기자가 지난 3년간 고인을 매주 만나뵈면서 낯이 익은 사람들이었다. 친분이 있는 한 경호팀장은 기자에게 “이제 서로 만나기 힘들겠네요”라는 말로 고인의 사망에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5일장 과정에서 많은 일반 탈북자들도 빈소를 찾았다. 97년 망명 당시 “태생부터 지주(地主)의 아들”이라던 북한정권의 악랄한 비난선전 때문인지, 아니면 노동당 고위층에 대한 막연한 분노 때문인지 사실 탈북자 사회에서 고인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는 찾아보기 어렵다. 기자와 친분이 있는 한 탈북자 동생도 종종 고인에 대한 부정적인 입장을 나타냈다. 그러나 막상 사망 이후 추모의 발길이 잇는 것을 보면서 기자는 고인이 부정할 수 없는 탈북자 사회의 정신적 지주(支柱)였음을 새삼 깨달을 수 있었다.
오전 10시가 되자 장례위 위원인 김성민 북한인민해방전선 대표의 사회 아래 故 황장엽 선생의 영구(靈柩)가 영결식장에 입장했다. 국내외 언론 취재단의 카메라 플래시가 어지러이 빛을 발하고 곳곳에서 오열이 터져 나왔다. 입구 바로 앞에서 영구가 들어서는 모습을 지켜본 기자도 불과 한 달 전까지만 해도 형형한 눈빛으로 북한 독재정권의 모순을 비판하던 고인의 모습이 떠올라 비감(悲感)을 감추기 힘들었다.
3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고인과 기자는 특별하다면 특별한 관계였다. 특히 기자가 고인의 강좌를 녹취한 뒤 원고로 정리해 세상에 발표해온 지난 1년간은 한 층 특별했다. 고인의 입장을 세상에 공개하는 일종의 대변인 역할을 하는 과정에서 때로는 북한정권에 대한 분노를 공감하고 때로는 생각의 차이와 발언 공개여부 등을 두고 갈등을 빚기도 하면서 고인의 인간적인 고뇌도 함께 느낄 수 있었다. 고인은 사무실을 방문하는 기자 등에게 늘 간식거리를 건네며 가족으로서의 정(情)을 나타냈으며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하고 등을 다독여주기도 했다. 그 때마다 고인은 국제사회가 집중하는 거물급 정치인이 아닌 적적한 삶 속에서 손주뻘의 기자를 맞는 다정한 이웃집 할아버지였다.
때문에 작년 무렵부터 고인의 거동이 눈에 띄게 부쩍 불편해지자 기자도 불안한 마음이 찾아들기 시작했다. 고인의 연세가 적지 않은 만큼 만나 뵐 수 없는 날이 머지않아 찾아올지도 모른다는 예감이 든 것이었다. 그런데 그 날이 이렇게 빨리 찾아올 줄이야.
기자는 아직도 고인이 딱딱한 분위기의 강좌 속에서도 종종 농담을 던지던 그 모습이 눈앞에 선하다. 책을 건네며 “공부해야한다”고 늘 독려하던 그 목소리도 귀에 들리는 듯하다. 고인이 영면(永眠)에 든 10일 당일 북한민주화위원회 관계자가 전화로 고인의 사망 소식을 전하던 그 때에는 저도 모르게 말까지 더듬거렸다. 관련기사를 쓸 때에는 고인 곁으로 달려가야 한다는 급한 마음에 오타를 내기도 했다. 작별인사도 채 드리지 못하고 고인을 찾아뵙지 못했던 지난 한달 간 고인이 늘 기자의 행적을 찾곤 했다는 관계자의 말에 지금도 일말의 죄책감을 느낀다.
이 날 영결식에는 기자보다 훨씬 더 오랜 세월을 공감하고 지냈던 인사도 참석했다. 추도사를 낭독한 조OO 전 김일성종합대 교수는 고인이 김일성종합대 교수 및 총장으로 재직하던 시절 제자로서 함께한 인물이다. 고인과 특별한 친분이 있었던 일본 조선대학교 전 부총장도 추모의 뜻을 서한으로 전달했다. 평생을 함께한 동지를 잃은 그들의 슬픔이 한 글자 한 글자마다 새겨오는 듯 했다.
헌화(獻花)가 이어진 뒤 폐식선언을 끝으로 고인의 영구는 대전 국립현충원으로 향했다. 버스 좌석을 타인에게 양보한 탓에 비록 안장식까지 지켜보지는 못했지만 영결식에서나마 고인께 마음 속 사죄를 빌고 용서를 빌었다는 점에서 죄책감은 당초보다 다소나마 씻어진 듯 하다. 그러나 가족과도 같은 정을 준 고인에 대한 그리움은 뇌리에 남아 아마도 평생동안 지워지지 않을 듯 하다.
“황장엽 선생님.
남과 북으로 나뉜 한반도에서 파란만장했던 당신의 세월을 기억합니다. 그리고 북한 민주화를 염원했던 당신의 희생과 두 손 붙잡고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며 환한 미소 지으시던 당신의 정(情)을 기억합니다. 이제 다시는 직접 찾아뵙고 인사드릴 수는 없지만 남은 저희들의 노력으로 그 크신 뜻을 이어나갈 것을 약속드립니다. 당신께서 꿈에도 그리시던 저 너머 북녘 고향땅에 태극기를 휘날리는 그 날을 부디, 부디 끝까지 지켜봐주십시오“
-故 황장엽 선생(1923~2010) 약력-
1923.2.17 평안남도 강동 출생
1941 평양공립상업고등학교 졸업
일본중앙대학 야간전문부 법과 입학
1953 모스크바종합대학교 철학연구원
1954 김일성종합대학 교수 철학강좌장
1958 김일성의 이론서기
1959 노동당 선전선동부 부부장
1965 김일성종합대학 총장
1972 최고인민회의 의장
1984 당 중앙위원회 국제비서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부위원장
1987 조선사회과학자협회 위원장
1993 최고인민회의 외교위원회 위원장
1997.2.12 북경(北京) 주재 한국총영사관에 망명 신청
4.19 서울 도착
통일정책연구소 이사장
1999 탈북자동지회 고문
2003 전주대학교 석좌교수
2007 북한민주화위원회 위원장
2008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상임고문
민주주의정치철학연구소 이사장
2010 국민훈장 무궁화장 추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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