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이 대기업 대표들과 가진 조찬 간담회에서 한 말을 청와대가 뒤늦게 정정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애당초 “지금 우리 사회가 잘 되는데, 잘사는 사람과 서민들의 생활이 개선이 안 되고 대기업, 중소기업 격차 벌어지는 게 잘사는 사람 때문에 못 사는 사람 안 되는 게 있다. 대기업 때문에 중소기업 안 되는 건 사실이다”라고 소개된 발언이 녹음 테이프를 잘 들어 보면 “잘 사는 사람 때문에 못사는 사람이 안 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대기업 때문에 중소기업이 안 되는 것도 아닌 게 사실이다”라는 취지로 말하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전체적인 발언 맥락은 보면 반드시 그런 것 같지도 않다. 애초 보도된 발언 내용이 맞는 것 같다. 그러나 이 발언 자체는 그리 큰 의미가 없다. 전체적인 맥락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눈을 크게 떠야 한다. 그리고 멀리 보아야 한다. 그 말은 대통령이 어떤 국정철학을 가지고 있는지 살펴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시각에서 본다면 갑자기 대통령이 공정사회란 잣대를 가지고 대기업 대표들을 청와대로 불러 모으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것이다. 마치 공정사회를 실현할 책임이 대기업 대표들에게 있는 듯 착각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다른 말로 하면 공정사회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그 책임이 마치 대기업 대표들에게 있다고 책임을 전가하는 듯한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대기업이 불공정 거래를 했다든가 세법을 어겼다든가 또는 중소기업에 대금지불을 거부했다든가 하는 사항이 있다면 해당 기관에서 시정하면 된다. 그러나 공정사회란 훈시를 듣기 위해 대기업 대표들을 청와대로 모으는 것은 전체주의 사회에서나 있을 수 있는 독재적 발상이다.
공정사회 실현은 국가의 기본목표이며 정부의 기본임무다. 기업가든 개인이든 열심히 일해서 이윤이나 소득을 창출하여 국가에서 정한 일정한 세율에 따라 세금을 납부하면 일단 책임을 다 한 것이다. 공정사회를 실현할 책임까지는 없다. 자유경쟁의 원칙에 따라 성공한 기업이나 개인은 그 자유경쟁의 원칙만 정당하다면 사회적 책임을 질 이유가 없다. 성공한 기업이나 개인이 낸 세금을 가지고 정부가 공정사회를 실현할 책임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공정한 사회를 실현하기 위한 수단도 대기업이나 개인을 가지고 있지 않다. 오직 정부만 가지고 있다.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정책은 어디까지나 정부, 즉 국가의 책임이다. 만약에 지금 공정한 사회가 실현되어 있지 않다면 그것은 정부의 책임이지 성공한 대기업이나 개인의 책임이 아니다. 그런데 대통령은 대기업 대표들을 모아놓고 공정사회란 훈시를 함으로써 마치 대기업이 공정사회를 실현하지 못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메시지를 국민에게 던지고 있다. 이는 기본적으로 잘못된 발상이다.
대통령의 발언 중에는 시장에 들러 노점상 하는 할머니 이야기도 있다. 노점상 하는 할머니도 자신보다 처지가 더 나쁜 사람에 대해 걱정하는데 대기업은 뭐하느냐는 식인 것 같다. 그리고 한 노점상 아주머니는 자신보다 더 사정이 나쁜 사람을 걱정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일개 노점상 할머니도 이와 같이 남 걱정을 하는데 대기업 대표들은 뭐하느냐는 이야기일 것이다. 그러나 과연 그런 이야기가 던져주는 메시지는 무엇인가? 대통령은 지금 대기업 대표들에게 정신을 혼미하게 하는 각성제를 주사하고 있는 것과 같다. 왜 기업체를 운영하고 있는 사람들이, 그것도 세계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사람들이, 전통시장의 노점상의 생활형편까지 기업운영 변수로 고려해야 하며, 또 그렇게 하도록 대통령이 요구해야 하는가?
대한민국의 경제가 이만하게 된 것은 모두 국제경쟁력에서 우위를 차지한 대기업 덕분이다. 일자리가 창출되지 않는 것은 대기업 문제가 아니라 대통령 말대로 중소기업 문제일 수 있다. 그러나 대기업과 협력하는 협력업체의 문제가 아니다. 대기업과 무관한 수 많은 중소기업체가 무너졌기 때문이다. 왜 무너졌는가? 모두 지나친 노조운동 때문에 해외로 공장을 다 옮겼기 때문이 아닌가? 과격한 노조운동 때문에 돈 있는 사람들이 투자를 하지 않기 때문이 아닌가? 이 문제는 대기업과 무관하다. 대기업의 하청업체로 일하는 중소기업은 그래도 형편이 낫지 않은가?
대통령은 어느 중소기업 대표의 하소연을 예로 들었다. 자신도 예전에 대기업에 있을 때는 몰랐는데 자신이 중소기업을 해 보니 일본 기업에 납품하는 것보다 한국 대기업에 납품하는 것이 더 어렵다고 했다고 한다. 언젠가 신문에 보도된 내용이다. 그러나 그 친구도 문제가 있다. 한국의 대기업이 자신만 기다리고 있는가? 기존의 납품업체도 있고 예산 주기도 있고 또 다른 변수도 많을 것이다. 그리고 동종의 다른 중소기업체와도 경쟁해야 하는 처지가 아닌가? 경쟁이 어디 기술력 하나만으로 결정되는가? 대통령이 이런 중소기업체 사장 한 사람을 대변하려고 해서야 어찌 나라를 이끌 수 있겠는가?
물론 모든 측면에서 대기업이 책임져야 할 부분이 전혀 없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기업이 해야 할 일과 정부가 해야 할 일을 구분하지 못해서는 안 된다. 정부가 할 일은 그야말로 공정한 규칙을 만드는 것이다. 대기업 대표들에게 문화를 바꾸어라 중소기업을 배려해야 또는 일자리를 만들어라 하고 명령할 것이 아니다. 어디 대통령이 특정 기업이나 개인에게 명령하는 자리인가? 공정한 규칙을 만들어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그 규칙을 적용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한국 기업 풍토에서 사라져야 할 나쁜 관행 중의 하나는 어음 제도다. 어음은 기업 리스크를 대기업이 중소기업에게 떠넘기는 나쁜 제도다. 이런 제도를 정비하는 것이 정부가 할 일이다. 뿐만 아니라 한국에서 공장하나 새로 짓고자 하면 허가를 수 백 곳에서 받아야 한다고 한다. 이런 제도적 정비가 시급하다. 또한 정치투쟁에 몰두하고 친북반미운동에 노동자들을 이용하는 정치투쟁 노조가 있어 자본가들이 투자를 꺼린다. 이런 기업환경을 정비하는 것이 정부가 할 일이다. 대통령이 성공한 기업체 대표들을 불러 모아 놓고 너희들 때문에 중소기업이 힘들어 하고 노점상들이 어렵게 산다고 질책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대통령의 국정철학이 잘못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누가 이런 혼미한 사상을 대통령에게 주입하는가?
성공한 사람은 칭찬해야 한다. 치열한 국제경쟁에서 성공하여 국부(國富)를 증가시킨 성공한 대기업 대표들을 마치 죄인 다루듯 해서는 안 된다. 왜 상을 주지는 못할망정 그들을 책망하는가? 이게 무슨 논리인가? 바로 친북좌파들의 공산주의에 입각한 계급투쟁론이 아닌가? 왜 성공한 기업인들이 매도되어야 하는가? 어느 나라에도 노점상이 있고 가난한 사람이 있고 중소기업이 있다. 대통령이 노점상 이야기나 전달하면서 대기업 대표들을 매도하는 나라가 어디 있는가? 노점상 이야기는 서민의 사는 이야기일 뿐 그 일에 대기업이 책임져야 할 것은 없다. 경쟁은 치열한 것이다. 서민이 사는 방법과 대기업이 기업하는 방법은 다르다. 아예 무대가 다르다. 마치 동네 구멍가게 운영 방식을 국제적 대기업에게 강요하는 것이나 다름 없다. 그러나 오직 계급투쟁적 사회관에 찌든 공산혁명분자들만이 대기업을 공공의 적으로 간주하고 대기업을 해체하려고 한다. 이들의 목적은 모두가 잘 사는 나라가 아니라 자본가나 기업가를 타도하고 노동자 농민이 지배하는 계급독재사회다. 이런 관점을 가진 사람들은 사회의 적이다. 이들을 사회로부터 분리시킬 생각은 하지 않고 그들의 대변인이 되어 성공한 기업인들을 마치 국민의 적인야 다루는 것은 대통령의 할 일이 아니다. 대통령이 먼저 깨어야 한다. 대통령이 무슨 노점상이나 대표하고 중소기업이나 대표하는 것으로 착각해서는 국가 경제가 바로 발전할 수 없다. 대통령에게 계급투쟁설을 주입하는 주변 세력이 존재하는 것 같다. 암적인 존재다. 어느 날 갑자기 대통령이 공정한 사회를 외치면서 그 잣대로 사회문제를 재단하기 시작했다. 청와대 인사가 바뀌면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 그 인물이 누구인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그는 대통령의 정신을 혼미케 하는 나쁜 보좌관이다. 대통령은 주변사람을 잘 써야 할 것이다. 지금 대통령은 서민경제니 공정한 사회니 하는 좌파이념에 올바른 판단력을 잃어버린 것 같다. 우려되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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