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학자들이 따질 문제지만, 세종대왕께서 ‘한글’ 아닌 ‘훈민정음(訓民正音)’을 창제하셨을 때 20세기 이후에 ‘한글전용’을 희망 하셨는지는 의문이다. ‘어린 백성’을 어엿비 여기시어 훈민정음을 만드셨으면서도 한자를 폐기하지는 않으신 것을 보면 시체 말로 ‘국한문 혼용’ 론자였던 게 아닐까?
새로 중건한 경복궁 광화문을 한글로 표기하자는 주장이 있는 모양이다. 세종대왕 동상을 모신 뒷자리에 한자로 광화문이라고 써서야 되겠는냐는 이야기란다. 세종대왕께서 ‘훈민정음 전용론자’가 아니었는데도...경복궁 중건의 뜻은 무엇일가? 원형 복원일 것이다. 그렇다면 한글로 광화문이라 써붙이면 원형 복원이라 할 수 없다. 오히려 원형 훼손이다.
국수주의적인 점에선 일본이 우리보다 세다. 그런데 그런 국수주의 일본이 한문을 혼용하고 있다. 이를 두고 일본을 문화적 사대주의라 할 수 있을까? 듣자 하니 요즘 한국인 세대 일부는 대한민국을 한자로 쓸 줄 모른다고 한다. 그렇다면 그런 한국인은 민족주의자, 한자를 혼용하는 일본 청년은 반(反)민족주의자일까?
한자문화는 우리 민족도 참여해서 이룩한 동아시아 세계의 공동작품이라는 시각이 있다. 우리의 민족문화를 한자문화에서 분리시켜 바라볼 수 없다는 시각도 있다. 한자는 외국말이 아니라 우리의 오랜 언어문명이었다는 시각도 있다. 전문가는 아니지만 공감하고 싶은 시각들이다. 공감하지 않는 입장도 존중은 한다. 그러나 한자문화를 도려내 땅속에 파묻으려는 인위적인 시도가 있다면 그것은 다시 생각해 볼 일이다.
류근일 2010/8/7
류근일의 탐미주의 클럽(cafe.daum.net/aestheticismclub)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