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에 대해서 그를 지지했던 국민들이 가장 궁금해 하는 사항 중 하나가 그의 대북관이다. 이 대통령은 햇볕정책의 공식적 폐기를 선언하지는 않았지만, 취임초기에는 ⌜비핵개방 3000⌝과 ⌜그랜드바게인⌝을 통해서 북핵의 폐기를 남북협상의 조건으로 상정하여 대북압박을 가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6.15/10.4남북공동선언에 대해서는 존중한다는 식으로 언급하여 폐기에 대해서 분명한 입장을 밝히지 않으면서, 중도실용주의를 천명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명박 대통령은 월드컵축구에서 대북관의 놀라운 단면을 잘 드러내었다. 그는 16일 월드컵축구 조별리그에서 북한이 세계 최강 브라질에 1-2로 패한 것에 대해 “북한이 2-1로 이겼으면 좋았을 텐데…”라고 말했다고 참모들이 전했다. 이날 ‘2010 동아시아기후포럼’ 행사에 참석한 뒤 청와대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이 대통령이 창밖을 바라보며 이런 얘기를 했다는 것이다.

천안함 침몰로 남북 간 대립이 고조되는 상황이지만 같은 민족에 대한 동질감을 이 대통령이 표시했다는 게 참모들의 설명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 대통령이 북한의 승리를 진심으로 응원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이날 새벽 북한과 브라질의 G조 1차전 경기를 직접 시청했다고 한다.

II

그러나 2010년 3월 26일 밤 9시 22분 김정일이 지시한 매복된 잠수함의 어뢰 暗襲으로 NLL 초계임무 중 천안함이 두 동강이 나고 국군 46명이 전사 했을 때 이 대통령이 북의 만행에 “격노하고 적개심을 보였다”고 전해 준 참모는 한 명도 없었다는 점은 정말 불행한 일이다. 북한의 어뢰공격으로 46명의 국군이 전사한 천안함사건은 ‘정치’문제에 불과하고 북한 축구의 패배에 대한 안타까움을 드러낸 이 대통령의 심경을 ‘한 핏줄 민족애’로 숭고하게 포장하는 인물이 대통령을 측근에서 보좌하는 참모라는 점에 경악과 분노를 금할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은 이미 청와대의 핵심부서가 중도-좌파에 의해 장악되었음을 웅변해 주는 좋은 사례이다.

더구나 놀라운 점은 이 대통령이 새벽 5시에 일어나서 야밤 12시경에서 취침을 하는 등의 부지런함으로 인해 청와대비서관들이 ‘수면부족증상’을 외부에 호소하는 바람에 대통령의 ‘일중독증’ 증세가 있다는 소문이 자자했었다. 그런데, 이 대통령이 얼마나 한가했기래, 새벽을 설치면서 북한팀과 브라질팀의 월드컵 경기를 시청했다는 것인지 필자로서는 정녕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일국의 지도자라면 자신의 말 한마디, 행동거취가 엄청난 파장을 일으킨다는 점을 알아야한다. 천안함 피폭 이후 격앙된 국민들의 정서를 생각한다면, 홀로 조용히 시청했어야하고, 참모들에게 자신의 이런 속내를 말하지 않았어야 마땅하다. 6.2지방선거 참패이후, 당청협의체를 구성하여 안보강화, 세종시 수정안, 새만금, 4대강사업 등 현안문제를 협의해도 시간이 부족할 텐테.... 아마도 머리를 식힐 시간도 필요했을 것이지만, 새벽에 북한팀의 월드컵 중계방송의 시청은 전혀 이해가 안된다. 물론 “어뢰는 어뢰고, 축구는 축구”라고 항변하면서 따진다면 할 말은 없다. 하기야 북한축구팀이 천안함 암습을 저질렀다고 여겨지는 북한 해군정찰국과 무슨 상관이 있는가?

북한축구 경기를 애써 외면한다고 해서, 또 김정일에 대해서 비분강개한다고 해서, 사망한 46명의 해군장병들이 살아 돌아오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천안함이 피폭된 지 불과 3개월도 되지 않아서 정치와 축구가 분리되어야하고, 남과 북은 한민족이라는 우리민족끼리라는 식의 얄팍한 감상주의적 민족감정에 젖어버려서 천안함 사태를 얼버무리려고 한다고 한다면, 역사에 大罪를 짓게 될 것이다. 왜 대통령은 46명 전사자의 계급과 이름을 일일이 호명하면서, 눈물을 흘렸나를 묻고 싶다. 일종의 정치쇼였나? 정녕 전사한 유가족은 물론 국민들의 경악된 분노를 어떻게 달래려고 하는지 알 수가 없다.

III

결국 이것은 남과 북은 한민족이므로 아무리 북한의 김정일정권이 악독해도 북한의 아사사태를 방지하기 위해서라면 인도적 지원을 할 수 있다는 이 대통령의 의중을 나타낸 것이아닐까? 문제는 천안함 사태로 악화된 여론을 달래는 일인데, 이것은 여론을 선도하는 방송사, 시민단체와 종교인, 지식인들이 앞장서서 대북인도적 지원을 나서면 굳이 청와대에서 반대하지 않는다는 입장인 것이다.

결국 천안함 피폭에 대해 이명박 정부가 공언한 대북응징은 시간이 흐르면서 물타기식으로 전개될 공산이 커지면서, 유엔안보리에 대북제재를 요청한 것으로 마감이 되는 점으로 해석되는 것이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1대2로 브라질팀에 패한 북한축구팀으로 보내는 대통령의 안타까움과 동정심이 절절히 묻어있는데, 여기에 북한동포들의 대량아사사태가 언론을 통해서 청와대에 보도된다면, 또 종교지도자들이 집단행동을 보이면서 “대북인도적 지원을 再開하라”고 요청한다면, 또 청와대에 초청받은 親北牧師가 주일 예배차 기도하면서 “대통령께서, 마음의 문을 여시어서, 餓死직전의 불쌍한 북한동포를 도와주시기를 하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을 줄기차게 외친다면, 김일성과학기술대학의 설립을 위해 수백억원을 헌납한 곽선희 원로목사가 키운 소망교회의 長老出身인 이명박 대통령이 어찌 이를 무한정 방관ㆍ거절할 수 있겠는가?

이 시점에서 이 대통령에게는 성경에서 訛傳되어 誤用ㆍ濫用되어온 “원수를 사랑하라”는 숭고한 가르침(?)을 실천에 옮길 수 있는 千載一遇의 기회가 도래하는 것이다. 실제로, 금강산관광객 박왕자씨의 북한군총격사건에도 불구하고, 야밤의 북한댐 무단 방류로 인한 水攻急襲으로 영문 모르는 여러 명의 낚시꾼들이 익사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천안함 피폭사건으로 46명의 해군장병들이 暴死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통일부에서는 “인도적 대북지원의 창구는 항상 열려있다”고 反對不可를 공언해왔다.

북한팀의 월드컵경기를 바라보고 나타난 이 대통령의 ‘아리송한’ 대북관을 검토해보니, “이제 현 정부의 대북응징에 대한 큰 기대는 접어야할 것 같다”는 심경을 가지게 되었다. 이것은 필자 혼자만의 인식은 아닐 것이다. 어느덧 두 달전의 천안함 피폭을 잊어버리고 월드컵축구의 狂風으로 올인하는 한국사회!!! 대중들은 그렇게 월드컵 광란의 분위기에 빠져든다고 하더라도, 일국의 지도자만은 主觀을 가지고 中心은 잡아나가야 하는데, 현실을 그렇지 못한 것 같아 못내 안타깝다. 참으로 월드겁축구란 남북한을 맹목적으로 하나로 뭉치는 魔法의 스포츠경기인 것 같다.

2010. 6. 20

이주천

<신간> 『김정일과 한반도의 운명 II 』著者

국제현대사연구소장(www.leejucheo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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