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에 무의미한 일이란 없다. 천안함 격침 사건으로 희생된 46명 해군 병사들과 이들을 구조하던 작업에서 희생된 한주호 준위, 금양호 선원들의 고귀한 희생은 모두 대한민국 현대사의 흐름을 바꾸어 놓을 소중한 역사적 계기가 될 것이다.
이들의 고귀한 희생은 그동안 실재(實在)하지 않던, 가상현실(假想現實)속에서 헤매고 있었던 대한민국으로 하여금 국가안보를 다시 확실히 챙기고 대북관계를 정상화 시킬 수 있는 결정적 계기를 제공했다.
공산권의 몰락으로 인해 냉전이 종식 된 후, 세계는 ‘전쟁의 지대’(zone of conflict) 와 ‘평화의 지대’(zone of peace) 로 확실하게 구분되었다. 평화를 맞이한 지역도 있었지만 냉전 종식이후 오히려 더 많은 긴장과 전쟁이 발발한 지역도 있었다.
전문가들 대부분이 냉전 이후의 한반도를 분쟁의 지대에 포함되는 곳 이라고 판단했지만 대한민국의 일부 국민들과 정책 결정자들은 한반도가 당연히 평화의 지대에 속할 줄 알고 있었다.
특히 지난 10년 두 차례의 좌파 정부 집권 기간 동안, 우리나라의 공식적인 대북 정책은 착각에서 도출된 극도로 비현실적인 가상현실에 근거한 신기루를 좇는 정책이었다.
북한의 신정주의(神政主義)적 독재 정권의 괴수에게 ‘효자’니 ‘통 큰 지도자’ 니 ‘위원장님’ 이니 하며 머리 조아렸다. 평양 정권이 벌이는 대규모 집단 체조 ‘아리랑’을 본 대한민국 의 평양 방문객들은 비인간성의 극치를 보며 감탄사를 발했다. 기저귀를 찬 채 너 댓 시간 씩 숨 막히는 매스게임을 벌어야 하는, 수 만 명 북녘 청소년들의 카드섹션 아래 가리워진 일그러진 얼굴을 상상해 본 대한민국 평양 방문객은 몇이나 될까?
북한이 원하는 대로 다 들어주어야 평화가 유지 된다고 믿었다. 평화를 돈을 주고 살 수 있는 것이라고 주장한 개념 없는 어용학자들도 적지 않았다. 대북정책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사람들은 ‘전쟁광’으로 낙인 찍혔다. 절대로 전쟁은 안 되고, 북한을 통일의 대상으로 삼는 정책을 상상해도 안 되고, 급변 사태에 대비하는 계획이라도 만들어 두자던 동맹국의 제안도 불경스런 일이라 뿌리쳤다.
북한에게 항복하자는 말과 뭐가 다른가? 평화를 아주 넓게 정의하면 노예의 평화도 평화이기는 하다. 주인한테 덤비다 얻어터지는 것보다 그대로 꿇고 사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한다면 말이다.
소수이기는 하지만 적지 않은 수의 대한민국 국민들이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 때문에 천안함 피격 사건이 일어났다고 말한다. 그럼으로써 그들은 천안함 침몰이 북한의 공격에 의한 것임을 고백하고 말았다. 이들이 말하는 평화가 바로 노예적인 평화가 아니라면 무엇이란 말인가?
이 들은 현 정부의 대북 정책 때문에 천안함 사건이 발발 했다고 말 하고 있지만 북한의 무력 도발은 북한 정권이 수립된 이래 단 한 번도 중단된 적이 없었다. 1999년 6월 15일 제 1 차 서해 교전, 2002년 제 2 차 서해교전, 시도 때도 없는 미사일 발사, 그리고 사실상 최대의 도발인 2006년10월 9월 핵 실험에 이르기까지 그들이 최선의 대북 정책이라고 주장하는 햇볕정책의 시대 동안에도 북한의 대남 무력 도발은 중단된 바 없었다.
북한이 불법적인 무력 도발을 제멋대로 감행해도 이를 응징하기는커녕 계속 머리를 조아리며, (북한의) 행동을 이해 할 수 있다고 말하는 대한민국의 지도자들을 저들(북한)은 어떻게 인식하고 있었을까? 그러니 북한은 자기는 오로지 미국하고만 상대한다며 우쭐 댈수 있었던 것 아닌가?
천안함 격침 사건은 대한민국 국민들이 가상현실의 몽롱한 상태에서 깨어 날수 있게 해 주었다. 우리 정부의 강력한 대응 방침에 대해 “앞으로 지속적으로 긴장 상태 속에서 살아야만 하는 것이냐?” 는 질문을 하는 한국 국민들이 많다. 질문 자체가 틀린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동안 긴장 상태 속에서 살지 않은 적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다만 긴장 상태가 아닌 줄 착각했을 뿐이다. 이번 천안함 격침 사건을 계기로 우리는 한반도가 만성적인 긴장 지대에 속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보다 정확하게 알게 되었다. 이제나마 현실을 알게 되었으니 대한민국은 문제를 치유할 수 있는 중요한 계기를 잡을 수 있게 되었다.
헌법보다 상위인 북한의 노동당 규약은 한반도 전체를 주체사상이 지배하는 곳으로 만든다는 원대한 목표를 명시하고 있으며 저들은 2012년 4월 15일, 즉 김일성 100살 생일을 강성대국이 완성되는 날이라고 선포하였다. 대한민국을 흡수통일 하겠다는 선언이다.
이목표를 위해 북한은 핵폭탄과 대량파괴 무기를 개발 보유하고 있는 것이다. 더 나아가 북한은 120만 명이 넘는 대 병력을 유지하고 있으며, 공세적인 군사교리를 채택하고, 모든 것보다 군이 앞선다는 황당한 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10여 년 동안 북한은 아주 편안한 마음으로 자신의 목표를 향해 일로 매진할 수 있었다. 북한에게 대한민국 정부 따위는 전략적 고려 대상에 포함될 필요도 없었다.
그러나 천안함 격침 사건은 모든 것을 분명하게 해 주었다. 이제부터 우리의 대북 정책은 북한을 자유, 민주, 풍요의 지대로 바꾸어 나가는데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대한민국이 주도하는 통일을 앞당긴다는 목표를 다시 설정해야 한다. 그 길 만이 한반도의 안전 보장 문제를 궁극적으로 해결하는 길이며, 일 민족 일 국가의 이상을 달성하는 길이며, 북한 주민을 구원하는 길이며, 강대국 틈바구니 속의 열악한 지정학적 상황에서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는 전제조건이기 때문이다.
이춘근
이글은 민생경제정책연구소가 매월 간행하는 이슈와 정책 2010년 6월호에
게재 될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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