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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이 혹한(酷寒) 속 1인 시위에 나서야했던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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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총명 前 한동대 학생회장 "더 이상 좌시하기에 북한인권 문제는 너무도 심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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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5일 북한인권 개선을 위해 단신으로 입북한 로버트 박(28. 한국명 박동훈) 선교사의 숭고한 의지와 용기가 한국 사회에 잔잔한 물결이 되어 퍼지고 있다.
그 중 한 사람이 전 한동대 학생회장인 박총명(28)씨. 박 씨는 로버트 박 선교사의 입북 이후 영하의 추위가 몰아친 8일 현재 사흘째 북한인권 개선을 촉구하는 1인 시위를 진행하고 있다.
1인 시위가 진행된 서울 종로구 영풍문고 인근에서 만난 박 씨는 “우리가 더 이상 좌시하기에는 북한인권 문제는 너무도 심각하다”며 “한국 사회에서 이제까지는 여러 이유로 목소리를 내지 못했지만 이제는 아니다”고 단언했다.
다음은 현장에서 만난 박 씨와의 인터뷰 전문.
<1인 시위에 나선 박총명 전 한동대 학생회장> [인터뷰 전문]
-1인 시위의 취지가 무엇인가
박총명(이하 박) : 2004년 처음 탈북자를 만나고나서부터 북한문제가 현실인 것을 피부로 느꼈다. 그 뒤로 북한사람(탈북자)들을 계속 접하면서 왜 한국사회가 조용할까하는 의문을 가지게 되었다. 로버트 박 선교사가 쓴 글에 의하면 (북한에서는) 하루에 1천 명 꼴로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다. 이것이 아니더라도 북한에 대한 많은 정보들이 알려져 있지 않은가? 그 내용들을 볼 때 한국 사회가 너무 조용한 것이 아닌가, 당연히 일어나야 할 목소리들이 왜 없는지 안타까웠다. 이런 찰나에 주변의 좋은 친구들과 나의 생각을 공유하려 했었는데 이번에 로버트 박 선교사가 목숨 걸고 전한 메시지에서 용기를 얻고서 정말 ‘나부터 뭔가 해야 되겠다’는 생각에서 하게 됐다.
-로버트 박 선교사와 개인적 친분이 있는가
박 : 그를 멀리에서 본 적은 있다. 탈북자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는 굉장히 진실했다고 한다. 한 번 손잡고 기도하면 30분씩 할 정도로. 때문에 부담감을 갖는 사람이 있을 정도였지만 그의 진정성에 대해서만큼은 그 누구 하나 토를 다는 사람이 없었다. 내가 듣기로도 그렇고 탈북자 친구들이 (로버트 박 선교사의 입북 소식에) 굉장히 마음아파 하더라. 내가 가야 할 자리에 그가 지금 가 있다고.
박 씨의 ‘행동하는 양심’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그는 작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망 당시 한동대 내에 사사로이 분향소가 설치되자 학생회장 자격으로 이를 반대하는 성명을 발표하고 “국가적 위신을 크게 실추시킨 그의 불명예스러운 방식의 죽음을 어떤 미사여구로도 미화해서는 안 된다”고 단언했다.
독실한 기독교인인 그는 당시에도 “노 전 대통령 재임기간에 북한과 김정일에 대한 오판으로 인한 끝없는 유화정책으로 인해 김정일을 달래는 것만이 북한문제의 해결책인 것처럼 알려졌다”며 “탈북자들은 유리방랑하면서 냉대를 당했고 북한인권 문제는 부당하게 금기시되었다”고 북한인권을 언급하기도 했다.
이 사건으로 인해 한동대 내에서는 박 씨에 대한 탄핵안까지 발의되었으나 학생들은 박 씨의 손을 들어줬다. 한동대 전체학생대표자회의가 재학생 3,488명을 대상으로 투표를 실시한 결과 반대 909표(투표율 51.86%)로 부결되었다. 대학생들도 박 씨의 뜻을 따른 것이었다.
-언제까지 1인 시위를 할 계획인지
박 : 학생이다 보니 취업과 미래도 중요하다. 하지만 더 중요하고 시급한 것은 이것(북한인권 문제)이 아닌가 해서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하려고 1인 시위를 시작했다. 나 혼자 한다고 해서 뭔가 변화될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은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친구들이 많을 것이라 생각한다. 로버트 박 선교사가 많은 용기를 줬다고 생각하기에. 그래서 나 뿐만 아니라 모두가 각자 위치에서 이런 일들을 하고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되는데 까지 하려고 한다.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면 로버트 박 선교사가 석방될 때까지인가
박 : 석방보다 더 중요한 것이 북한에 의미 있는 변화를 만드는 것이라 생각한다. 정치범수용소가 있다는 사실은 누구나 다 알지 않은가? 정치범수용소가 해체되고, 북한주민들의 인권이 보장될 때까지이다. 로버트 박 선교사의 말대로 국경이 열려서 많은 인도적 지원이,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그런 인도적 지원 말고, 정말 북한사람들에게 실제로 돌아가는 지원이 진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것이 왜 안 되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피켓시위를 언제까지 할지는 모르지만 정치범수용소 해체 등이 될 때까지 어디서든 간에 할 것이다. 주변 친구들도 그렇게 할 것이라 나는 믿고 있다.
-로버트 박 선교사의 입북은 사실 큰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사회의 관심은 낮다. 우리사회에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박 : 사실 나도 로버트 박 선교사가 북한에 들어갔다는 소식을 듣고서 조금 당황했었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일이었다. 시간이 점차 지날수록 보통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제, 나도 그랬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 문제에 대해 자각할 것이라 믿는다. 한국사회가 이제까지 여러 이유로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면, 각자 이유가 있겠지만, 이제는 아닌 것 같다. 각자 위치에서 할 수 있는 무엇이든 좋으니, 이메일도 좋고 친구들에게 보내는 문자도 좋으니, 우리가 더 이상 좌시하기에는 북한인권 수준이 너무도 심각하기에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지만 누구든지 아무것이든 좋으니 어디에서든 할 수 있는 것을 했으면 좋겠다. 이제는 정말로 우리 동포들을 돌아봐야 되지 않나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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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독자의견: 1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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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사람들은 "측은지심"이 강하다. 년말의 자선남비가 온정으로 끓고, 사랑의 온도계가 목적을 훨~달성하고, 아프리카나민들에게 '새마을 운동'을 전수해주고 지구종말까지 풀한포기 돋아날 가망없던 땅에 펌프를 박고 물줄기가 솟구쳐오르게하는 가히 神의대행자들이요. 날개없는 황색천사들이다. 그외에도 셀 수 없이많다. 이름하여 '컴패션'운동은 동남아최빈국어린이들을 양자로 혈연맺기 등등.. 다시말해 근본적으로 남이 헐벗고 굶주리는것을 지나칠 수 없는 채무보상인자가 유전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북으로는 왜? 정부가, 통일부가,대한적십자사가 ,각종 종교단체가 "인도적지원"이라면서 지난 10년동안 거창하게해 대북사업이란걸 해왔다. 대한민국자유민주주의자들은 북한에넘나들며 기웃거릴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그 인도적지원은 정권과 김정일에게만 가능했다.
6.25공산군들의 남침으로 인해 벌건적신으로 잿더미위에 섰을 때! 우리는 얻어먹는 거지깡통을 든 전쟁고아사진이 세계만방에 동냥 구걸했다. 그 때 대한민국을 구제한 대표적 국제기구가 '케아'다 . 갚아야한다. 이제 잘 살게되었으니 그 사실을 부끄러운 과거라고 지워버려서야 되겠는가?
"싸가지"라고 하던가, 어쩌다 아비나 어미가 전쟁전란시절에 굶주렸던 과거지사라도 비춰볼라치면,"그건 그때얘기구" 라면서 거절하고,관심조차 없는 요즘대한민국사람들의 넘치는 풍요는 무서운 재앙의 전조일지도 모른다.
이 땅 한반도에는 6.25이후 쭈욱 변함없이 전쟁의 굶주림에던져진 대한민국사람들이있다. 그들이 김가집단에 노예로 살아온 세월이 끔직스럽게도 지금까지 존재하고 있다. 이보다 더가혹한 , 이보다 더 비도덕적인 행위가 있겠는가? 한 쪽은 살찔가봐전전긍긍 헬스장에서 다람쥐쳇바퀴를 도는데, 한쪽은 굶어죽는다.
이제 대한민국 사람들은 진실을 바라볼 차례다. 그 넘치는 측은지심으로 누구를 도울것인가! 부끄럽지만 나서야 한다. 한반도전체주민이 대한민국 국민임을 자각하고 바로살기에 죽을힘을 다해 나서야 한다. (2010년 01월09일 14시2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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