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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 번 속아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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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회담에 긍정적 자세를 취하여 “한 번 만나봅시다”라고 나오는 미국을 김정일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아직은 미지수라고 하겠습니다. 북이 원하는 것은 간단명료합니다. 김정일 체제가 그의 아들·손자 세대에 이르기까지 자자손손, 적어도 300년은 연면히 이어져야 한다는 것, 그것 하나뿐입니다.
김일성이 스탈린이나 모택동에게 저자세였던 까닭은, 민족적 공산주의자로 알려졌던 (그런 주의자가 과연 있을 수 있었는지 의심스럽기는 하지만) 박헌영을 미제국주의자의 앞잡이로 몰아 숙청한 것도 대략 그런 맥락에서였다고 짐작합니다.
김정일이 핵무기를 만들어 국제사회가 “불가”를 외치는 데도 그 실험을 거듭하는 까닭도 알고 보면 단순한 동기뿐입니다. 조선왕조를 이성계가 개국했듯이 김일성이 개국한 김씨왕조를 300년 이상은 유지해야 한다는 일종의 “사명감” 때문입니다.
농사가 잘못되어 한 해에 수십만 백성이 굶어죽어도 일성왕조는 대대로 이어져야 하기 때문에 김정일로서는 어쩔 수가 없는 겁니다. 그 왕조 하나를 살리기 위하여는 어떤 희생도 감수할 수 있는데, 핵무기만은 끝까지 붙들고 늘어져야만 한다는 것이 김정일의 확고부동한 자세입니다.
이빨 빠진 미친개가 물 수 있습니까. 핵을 포기하면 김정일은 뭐가 됩니까. 그 정도는 김정일 자신도 잘 알고 있을 텐데, 6자회담의 깃발아래서 또 한 번 곱게 속아봅시다. 계속 속다보면 무슨 변수가 생기겠지요.
김동길
www.kimdonggil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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