高銀 시인은 그래서 중앙일보사 <월간중앙> 편집실을 적어도 한 달에 한 번은 꼬박 꼬박 방문했다. 물론 예외는 있었겠지만. 원고를 전달할 겸, 한남철 씨도 만날 겸-. 그때마다 나는 高銀 시인을 불가피하게 대면할 수밖에 없었다. 그 때 내 눈에 비친 高銀 시인은 일종의 '데카당'-그렇게 나쁜 뜻만은 아닌 '퇴폐적 로맨티스트‘였다. 나는 그런 그를 그렇게 싫어하지는 않았지만, 그렇게 높게 평가하지도 않았다. 별 큰 관심이 없었다는 이야기가 될 것이다.

 그로부터 몇 해 뒤, 그는 反維新 문학인들의 선봉으로, 그리고 다시 마치 파블로 네루다(Pablo Neruda) 같은 거물급 저항 文人인으로 거룩해지는 게 아닌가? 종교인 같은 근엄한 표정을 짓는...高銀 시인은 이미 급속도로 자신도 감당할 수 없는 엄청난 아이콘으로 객관화 되고 있었다. 나는 “어? 언제 쩍 高銀이...?” 하고 이상해 하곤 했다.

 <자유실천 문인협회>에서 <민족문학 작가회의> 지도급으로. 그리고 다시 노벨 문학상을 기다리는 사람으로서 신문 방송의 하일라이트를 받는 인물로-. 그는 그 후 김대중, 노무현 정권의 승승장구와 더불어 개인적으로 계속 해피(happy)하게 보였다.

 나는 그의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차가운 미소를 보냈다. 그러나 나는 高銀 시인의 등에 인간적으로는 칼을 꽂을 수 없었다. 그만한 이유가 있었기에. 高銀 시인이 長篇 시집 ‘萬人譜’에서 나를, 허허허, ‘나쁘지 않게’ 써주었기 때문이다. 그와 내가 김대중 노선에 대한 찬반으로 도저히 합칠 수 없는 영원한 남남으로 갈라진 이후였는데도-.

 그런 高銀 시인이 최근 북한 인권 참상에 대해 “나는 그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 나는 그 문제에 대해 아무런 힘이 없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고 한다. 그 발언으로 高銀 시인은 그의 '문학인보다는 정치인'적인 소양을 십분 드러냈다고 느꼈다. 2만 명에 육박하는 탈북자들의 증언은 그러면 모두 거짓이란 말인가?  아무리 김대중 쪽이라 할지라도 ‘노벨 문학상 수상 대망자’인 그가 정말로 북한 인권에 대해 그렇게 공공연한 ‘非문학인적'인 발언을 하다니!  

 하기야 김대중에게 ‘평화상’을 준 노벨상이니 뭐 그렇게 깊이 괘념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그래도...그는 과연  '시인 高銀' 맞는가? 북한 인권 참상에 냉담한 시인..아무래도 앞뒤 안 맞는 組合이다.

 이문열 작가의 中篇 <사로잡힌 惡靈>이 새삼 생각난다.

류근일 2009/8/30

류근일의 탐미주의 클럽(cafe.daum.net/aestheticismcl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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