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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다이하드3’은 겉으로는 폭탄테러 위협을 가하며 뒤로는 어마어마한 규모의 돈을 훔친 테러리스트를 주인공이 응징하는 내용이다.
실직 군인인 테러리스트 ‘사이먼’은 백화점 폭탄테러를 일으킨 후 뉴욕 경찰청으로 전화를 걸어 2차 폭탄테러를 경고하며 강력계 형사 ‘맥클레인’에게 자신의 지시대로 행동할 것을 요구한다.
맥클레인은 테러범의 요구대로 흑인 갱단들의 소굴인 뉴욕 할렘(Harlem)에서 ‘나는 흑인을 증오한다’는 간판을 메고 서 있는가 하면, 수 시간이 소요되는 거리를 단 수십 분 만에 주파하는 등 2차 폭탄테러를 막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하지만 테러범의 속셈은 따로 있었으니, 경찰의 주의력을 온통 폭탄테러 쪽으로 쏠리게 해놓고 그 틈을 타 달러를 발권하는 은행인 연방준비은행(Federal reserve bank)을 습격해 막대한 현금을 탈취하는 것이었다.
처음부터 철저하게 속고 있었던 주인공은 하지만 곧 이 사건의 뒤에 엄청난 음모가 숨겨져 있음을 알아채고 끝까지 추적해 결국 캐나다 국경에서 범인을 응징하고 국가재산을 되찾는데 성공한다.
단순한 은행 강도가 뉴욕 경찰청을 이처럼 혼란에 빠트린 비결은 무엇이었을까.
바로 성동격서(聲東擊西), 동쪽에서 소리를 질러 적을 유인하고 그 틈을 타 서쪽을 치는 전술이었다.
[사이버테러 발발.. 국정원 “북한이 배후로 유력”]
최근 한국을 겨냥한 사이버테러(cyber terror)가 발생했다.
지난 7일 오후 6시 44분, 한국정보보호진흥원(KISA) 인터넷침해사고 대응지원센터 상황실에 유해 트래픽(traffic)을 수반하는 비교적 초보적인 해킹 기법인 ‘분산서비스거부(DDoS) 공격’이 감행되고 있는 정황이 포착되었다.
곧이어 청와대 등 국내 주요 웹사이트들에 대한 접속이 지연되거나 거부되었으며, 특히 청와대와 국방부 등 공공기관 웹사이트는 이튿날까지도 접속이 중단되었다.
KISA 직원들의 필사적인 대응에도 불구하고 디도스는 형태를 바꿔가며 공격을 지속했으며, 결국 7만8천여 대의 PC를 감염시키고 하드디스크를 파괴하고 내부 정보를 빼낸 끝에 약 1주일 만에야 자취를 감추었다.
국정원은 북한 해커조직의 IP가 동원된 정황을 바탕으로 이번 공격의 배후를 북한으로 지목했으며, 구체적으로 북한군 총참모부 정찰국 산하 ‘110호연구소’의 사이버부대가 중국 단둥(丹東) 혹은 선양(瀋陽)에서 감행했을 것으로 추정했다.
국정원은 또 이번 공격을 본대 공격이 아닌 ‘선봉(先鋒)의 공격’일 것으로 추측했다.
국정원 국가사이버안전센터를 방문한 한나라당 미래위기대응특위 위원들에 따르면 국정원이 금융시장 등 국가 시스템이 대부분 문을 닫는 오후 6시에 시작되었다는 점 등을 근거로 이번 공격이 일종의 ‘연습 공격’이라는 판단을 내렸다.
[또 다른 목적을 위한 위장공격(camouflage attack)일지도]
그런데 단 한 번으로 결판을 짓는 전쟁에서 연습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이번 공격을 연습이라기보다는 선봉의 공격으로 표현하는 것이 올바를 것이다.
국정원의 발표대로 범인이 전열을 가다듬어 2차 공격을 감행할 가능성이 상존하고 있지만 여기에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주요 공격대상이 청와대 및 국정원, 조선일보와 같이 그동안 북한의 표적이 되어 온 기관들이라는 점 등에서 북한일 가능성이 가장 유력한 범인은 그야말로 한국 정부의 혼(魂)을 빼놓는데 성공했다.
게다가 추적이 불가능하도록 사전에 조치를 취하는 치밀한 모습도 보였다. 국내외 보안업계는 다양한 분석 결과를 토대로 공격의 근원지를 추적할 수 있는 단서인 ‘마스터IP’가 여러 개일 가능성을 제기했다.
즉, 공격이 감행된 진짜 지역을 알기 힘들도록 영국과 미국 등 전 세계 곳곳에서 공격이 감행된 것처럼 위장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공을 들이고도 이번 공격으로 범인이 얻은 전리품은 감염 PC에서 빼낸 개인정보와 파괴된 PC들 이외에는 전무하다시피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선봉(先鋒)의 역할이 적의 능력을 탐색하고 기세를 꺾어놓는데 있다는 점에서 이번 공격은 빈약해도 너무 빈약했고 짧아도 너무 짧았다. 아니, 애초부터 디도스를 제외한 다른 해킹 기술을 총동원해 공격할 의지가 없었다는 표현이 맞을 정도이다.
결국에는 도리어 ‘잠자는 사자의 코털’을 건드린 격으로 IT기술력 세계최고 수준의 한국이 민관(民官) 합동으로 굳건한 방어태세를 갖추게 만듦으로서 본대의 공격마저 어렵게 만든 꼴이 된 것이다.
한국 전체를 순식간에 혼란에 빠트릴 정도의 실력을 갖춘 범인의 성의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공격은 자신감에서 기인했다고 보기에는 어려우며, 혹시 이번 공격이 영화 ‘다이하드3’과 같은 성동격서(聲東擊西)를 위한 포석이 아닌가 하는 의문을 낳고 있다.
[사건을 계기로 동시에 李정부를 향하고 있는 야당과 국민의 화살]
범인이 노린 것은 무엇일까.
신한은행과 외환은행이 이번 공격 목표에 포함되었다는 점에서 영화 속의 테러리스트처럼 돈을 노렸을 수도 있지만, 아직 피해상황이 보고되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가능성은 희박하다.
돈이 아니라면 남는 목적은 ‘정치’ 혹은 ‘장난’이다.
국가를 상대로 하는 유사한 실례가 많았다는 점에서 어느 실력 있는 해커에 의한 단순한 장난일 수도 있지만, 북한이 배후로 유력시되는 현 상황 속에서 정치적인 목적일 가능성이 한층 더 높다.
실제로 정계에서는 마치 기다렸다는듯이 이명박 정부에 대한 공격 수단으로 삼고 나서고 있다.
민주당 등 야당은 공격 근원지가 북한이 아니라는 해외 민간 보안업체들의 발표가 나오기 무섭게 이번 테러에 대한 이명박 정부의 태도를 ‘사이버북풍’으로 간주하며 국정원장의 사퇴와 여당의 사과 등을 요구하며 정부를 맹렬히 공격하고 있다.
지난 2007년 당시 여당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방북을 통한 평화구축이라는 ‘북풍’을 통해 이명박 후보의 당선 저지를 기도한 사례가 있으며, 북한이 현재 이 대통령의 퇴진을 촉구하고 있다는 점에서 북풍이 목적일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즉, 확실한 물증이 없는 상황 속에서 북한을 배후로 지목한 이명박 정부를 야당들이 ‘반(反)통일, 반(反)평화세력’으로 몰아붙이게 함으로서 곤경에 빠트리려 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개인상 또는 사업상 중요한 정보가 담긴 하드디스크를 잃어버린 국민들의 정부를 향한 불만 또한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번 사이버테러 사건에서 범인이 얻은 가장 큰 전리품은 바로 작년에 이어 또 다시 야당과 국민의 화살이 동시에 이명박 정부를 겨누게 된 것이다.
어디까지나 하나의 가능성이지만 정말로 이번 사이버테러 사건 속에 정략적 의도가 숨어있다면 정부로서도 곤경에 처할 수밖에 없다. 정부의 신중한 대처가 요구되고 있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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