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1874호 결의안에 따른 국제사회의 대북(對北) 제재 흐름에 중국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총력전에 나섰다. 특히 이를 위해 헨리 키신저(Kissinger) 전 국무장관을 특사로 중국에 보내는 등 ‘특단의 조치’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북한의 무역 총액 70%를 차지하는 등 대북 영향력에 있어 가장 비중이 큰 중국의 협조가 ‘채찍’이든 ‘당근’이든 성패의 최대 변수가 될 것이라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정부 당국자는 21일 “미국은 나중에 대화로 가기 위해서라도 지금은 국제공조를 통한 강력한 대북 제재가 실행된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한다”며 “1874호가 (북한의 1차 핵실험 후 나온) 1718호처럼 ‘으름장’으로 그치지 않기 위해서는 중국을 설득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라는 인식이 확고하다”고 했다.

◆“키신저 등 고위인사 중국에 파견”

서울의 고위 외교소식통에 따르면 미국은 지난주 정상회담 기간에 이뤄진 한·미 고위급·실무급 개별 면담에서 ’중국 변수‘의 중요성에 대한 의견을 나누며 중국에 고위급 외교 인사를 파견할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이 과정에서 ‘키신저 카드’가 유력하게 언급됐다는 것이다. 키신저 전 장관은 70년대 극비리에 중국을 오가며 미·중 국교수립의 산파 역할을 했고, 올 초 지미 카터(Carter) 전 미 대통령과 함께 베이징(北京)을 방문해 오바마(Obama) 당시 대통령 당선인의 메시지를 전달하기도 했을 만큼 중국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에 중국 설득에 최고의 적임자라는 평가다.

정부 관계자는 “키신저 전 장관이 중국을 방문한다면 후진타오(胡錦濤) 주석을 직접 면담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오바마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직후인 17일 워싱턴 블레어하우스에서 가진 한반도 전문가들과의 면담자리에도 키신저 전 장관이 참석했고 “중국 등이 북한의 핵 포기 결심을 이끄는 데 적극적으로 협력하도록 만드는 것이 긴요하다”는 대화가 오간 것도 이 같은 맥락에서 나왔다는 것이 이 관계자의 설명이다.

미국은 또 국방부 차원에서도 미셸 플러노이(Flournoy) 정책담당 차관이 이끄는 대표단을 금주중 별도로 한국과 중국·일본에 파견해 유엔 안보리 결의 이행을 위한 제반 현안을 논의하기로 했다. 형식은 한·중·일 3국 방문이지만 핵심은 ‘중국 설득’에 맞춰져 있다.

미 국방부 고위 관계자는 기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베이징에서 23~24일 열리는 제10차 미·중 국방자문회담(DCT)에서 1874호 결의 이행 등 대북정책이 핵심적인 사안으로 등장할 것”이라며 “양국이 공통의 이해와 협력을 할 수 있는 영역에서 확대된 논의를 기대한다. 중국은 유엔 안보리 결의를 지지했다”고 했다. 다시 말해 중국도 1874호 취지를 철저하게 이행해 북한에 대한 압박에 가세하라는 메시지를 던진 것으로 풀이된다.

◆“중국도 변화 움직임”

북한의 핵실험에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던 중국은 무기금수와 화물검색, 금융제재를 골자로 한 1874호 결의에 동의하긴 했지만 얼마나 적극적으로 참여할지는 아직 불투명한 상황이다. 중국은 앞서 북한의 1차 핵실험 직후 채택된 1718호 결의안에도 찬성표를 던졌지만, 사치품의 대북 수출 조항 등을 이행하지 않으면서 결국 대북 제재가 유명무실해진 전례가 있다.

또 중국은 전통적으로 북한에 강력한 압력을 행사해 한반도에서 군사 충돌이 발생하는 상황보다는 적당한 선에서 북한을 타이르는 방식을 선호해왔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다.

하지만 최근에는 중국의 입장에 미묘한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는 것이 한·미 당국의 인식이다. 정부 관계자는 “아무리 혈맹이라고 하더라도 중국 입장에서 바로 옆나라가 핵무장을 하는 것을 그냥 두고 볼 수는 없을 것”이라며 “미국이 독자제재보다 다자(多者)제재 쪽에 초점을 맞추는 것도 중국의 참여를 유도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라고 했다.

다른 관계자도 “중국은 자기가 의장을 맡고 있는 6자회담의 재개를 위해서라도 일정수준 이상의 대북 제재에는 동참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실제로 중국은 북한의 핵실험 이후 대북 송유량을 줄였고 대북 수출검사도 강화했다는 보도가 외신 등을 통해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 13일 김영춘 북한 인민무력부장이 중국을 방문한 것도 이 같은 중국의 변화 움직임에 대처하기 위한 것이라는 관측이다. 한 외교소식통은 “북한은 중국에 ‘안보리 제재가 이행되면 우리도 군사적으로 맞설 수밖에 없다. 이렇게 되면 중국도 이로울 것이 없으니 적극적으로 나서 이를 막아달라’는 식의 요구를 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또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20일 “제재가 강화될수록 핵무기 등의 군비를 계속 확대할 것”이라고 경고한 것도 동아시아의 군비 경쟁을 우려하는 중국을 향해 “대북제재에 동참하지 말라”는 신호를 보낸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정부 소식통은 “위기에 몰리면 더 허장성세를 늘어놓는 북한의 특징을 볼 때 이러한 반응은 실제 국제사회와 중국의 움직임에 대해 상당한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다는 사실을 방증하는 것”이라고 했다.

출처: 조선일보 임민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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