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의 삼남(三男) 김정운이 지난 17일까지 중국을 방문, 후진타오(胡錦濤) 국가 주석에게 후계자 확정 소식을 전달한 것으로 외신에 의해 보도된 가운데 북한에 ‘국사봉’이라는 용어가 등장해 눈길을 끌고 있다.

18일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국사봉이여, 길이 전하라 불멸의 업적을’ 제하 보도기사에서 ‘국사봉’이라는 지명을 소개하며 “백두의 혁명전통을 대를 이어 영원히 계승 발전시켜 주체혁명 위업을 완성하려는 것이 장군님(김정일)의 의지”라고 강조했다.

백두의 혁명전통은 북한 세습체제를 의미하는 것으로서, 올 해 초 공동사설에서도 언급된 바 있다.

신문에 따르면 국사봉은 백두산과의 인접 지역으로서 북한 ‘혁명전적지’들이 즐비한 함경북도 무산군 연사지구에 소재한 봉오리의 이름이다.

그리고 1939년 6월 18일 김일성이 지하 혁명조직 책임자 및 정치공작원 회의, 즉 국사봉회의를 소집하고 ‘국내 혁명조직들 앞에 나서는 과업에 대하여’라는 연설을 한 자리이다.

신문은 이 날 보도에서 김정일이 지난 5월 연사지구 혁명전적지를 찾아 “주체의 혈통이 대를 이어 굳건히 계승되고 있기에 우리 혁명은 승승장구 하는 것”이라 강조했다고도 전했다.

국사봉을 혈통세습의 상징으로 등장시킨 것이다.

[베일에 싸인 국사봉의 정체]

그런데 특이한 점은 북한 언론매체는 물론 국내 주요 검색 포털사이트에서 국사봉에 관한 내용을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며, 탈북자들마저도 금시초문이라는 반응을 보인 것이다.

북한군에 다년간 복무하며 매일 아침 정치상학(학습)에 시달린 경력이 있는 탈북자 김OO(女)씨는 국사봉 혹은 국사봉회의의 존재를 묻는 질문에 “들어본 적이 없다”고 부인했다. 심지어 평양 출신의 또 다른 탈북자는 “그것이 무엇인가?”라고 본 기자에게 되묻기까지 했다.

김 씨는 노동신문의 국사봉 보도 내용과 관련해 “노동신문은 없는 말을 지어내는데 선수”라며 이번에도 같은 경우일 것이라고 의혹을 표시했다.

이와 관련해 국사봉은 최근에야 김일성의 39년 6월 18일 연설 장소로 둔갑 되었으며, 작년 김정일의 뇌졸중 발병 이후 북한 매체에 의한 보도의 빈도가 증가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노동신문은 지난 2007년 9월 22일 ‘위대한 수령님의 사상과 로선을 충직하게 받드시여’ 제하 보도기사에서 국사봉을 언급하면서 “41년 김정숙이 김일성의 연설을 이곳에서 대독(代讀)했다”고만 설명했다.

하지만 국사봉은 김정일이 뇌졸중 투병 중이던 작년 9월 노동신문에 등장한 이후 김정일이 두 번째 발병을 일으켜 ‘사진통치’에 전념하던 11월에 김일성이 39년 6월 18일 직접 연설한 장소로 보도되었다.

북한 주민들조차 그 존재를 알지 못하는 국사봉은 김정일이 종적을 감춘 시기 김일성의 연설 장소로 둔갑된 후 후계구도에 쇄기를 박는 김정운의 최근 방중(訪中) 직후 급기야 3대 혈통세습을 상징하는 장소로까지 발전된 것이다.

[‘백두산 세 봉우리’와 국사봉의 공통점]

북한은 김일성과 김정숙 그리고 김정일로 이어지는 이른바 만경대 혈통을 장군봉(김일성), 정일봉(김정일) 등으로 구성된 ‘백두산 세 봉우리’로 지칭하고 있다.

이 명칭에서 백두는 북한의 공산혁명(항일투쟁)을, 봉우리는 지도자를 의미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즉, 백두산 세 봉우리는 공산혁명의 지도자들을 지칭하는 것이다.

김정일은 비록 공산혁명 기간, 다시 말해 노동당 창건 준비 기간에 직접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당시에 태어난 관계로 그도 ‘공산혁명’의 범주에 속한다.

김정일은 노동당 창건 준비가 진행되던 1942년 2월 16일 러시아 연해주의 하바로프스크(Khabarovsk)에서 60여km 떨어진 북야영(北野營)에서 태어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하지만 83~84년에 태어난 것으로 추정되는 김정운은 노동당 창건에 참여한 세대가 아니다. 다만 그는 김정일의 후계자로 내정된 만큼 ‘봉우리’ 즉, 지도자의 자격에는 속한다.

‘백두의 세 봉우리’는 공산혁명의 지도자들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김일성 가계(家系)를 의미하는 ‘백두의 혈통’과는 개념이 다른 것으로 해석된다. 김정운은 백두의 혈통일지언정 백두산 세 봉우리에는 속하지 않는다.

이상의 내용들을 전제로 한다면 김정운의 방중 시기와 맞물려 등장한 ‘국사봉’은 북한의 새로운 지도자를 의미할 가능성이 있다.

절대권력을 가진 김정일이 왜 우격다짐으로 아들을 ‘백두산 네 봉우리’에 포함시키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이 여전히 남지만, 이는 오극렬 국방위 부위원장(78) 등 김일성의 공산혁명을 신성시하는 체제의 보수적인 원로(혁명 2세대)들의 반발 때문일 수 있다.

건강이 극도로 악화된 김정일 사후 어린 아들을 보필해 체제를 이끌어 나갈 인물은 사실상 국방위원회 등을 장악하고 있는 원로들뿐이라는 점에서, 김정일도 이들의 요구를 묵살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라는 점에서 가능성은 있다.

트윗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