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약 1천여년 전.

중국의 한 무명 고승(高僧)이 한반도를 거쳐 아직 대륙의 문명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한 미지의 땅, 왜(矮)로 향했다.

거친 바다를 건너 육지에 발을 디딘 고승은 그 곳에서 한 일족을 만났으며, 고승은 그 일족에 그때까지 그 누구도 전혀 보지 못했던 격투술을 전수했다.

일족을 이끌던 자는 고승으로부터 전수받은 격투술을 그의 아들과 또 그의 아들들이 대대로 전승하도록 했으며, 이 격투술은 수백 년에 걸쳐 다듬어지고 또 다음어지며 후손과 그 다음의 후손에게로 계승되어 종래에 섬나라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그러던 어느 날.

오랫동안 왜국을 지배한 야마토(大和) 정권이 붕괴하고 전국시대(戰國時代)가 도래하자 평화롭던 섬나라는 핏빛으로 물들었다.

무사들은 날카로운 일본도(日本刀)를 들고 전장으로 향했으며, 일족의 남자들을 모두 전장터로 떠나보낸 여자들은 눈물을 삼키며 구슬픈 엔카(演歌)를 연주했다.

전장에 나선 무사들은 끝도 없이 밀려드는 적들을 칼로 베고 창으로 찌르고 방패로 막았다. 또 무기를 손에서 놓친 자들은 수백 년 전 중국 고승의 가르침 대로 적과 함께 땅으로 몸을 던져 팔을 꺾고 목을 졸라 숨통을 끊었다.

그리고 수백 년의 세월이 흘러 20세기 초.

유술(柔術)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던 그 격투술의 전승자인 마에다 미츠요(前田光世)는 산업이 발전하고 서양식 군대가 육성되면서 언젠가부터 형식화되어버린 일본 무도계를 뒤로한 채 남미의 브라질로 가는 여객선에 몸을 실었다.

그 곳에서 마에다는 그레이시(Gracie)라는 한 가문을 만났으며, 1천년 전 중국의 고승이 그러했던 것처럼 그 가문에 자신이 지닌 모든 비기를 전수했다.

마약과 총격전 등 혼돈 속의 브라질에서 그레이시 가문은 숱한 스트리트 파이팅(Street Fighting)을 통해 유술을 보다 발전시켰으며, 가문의 장손(長孫) 힉슨 그레이시(Rickson Gracie)는 시합과 길거리싸움 모두를 통틀어 400전 무패라는 기록을 남겼다.

그리고 유술이 브라질에 상륙한지 약 1백년 뒤, 가문의 후손인 호이스 그레이시(Royce Gracie)는 UFC라는 미국에서 개최된 세계 최대규모의 종합격투기 대회에서 승리함으로서 마침내 전 세계에 유술의 존재를 알렸다.

수백년 전 일본 무사들이 목숨을 걸고 싸우기 위해 갈고 닦았던 유술은 20세기 말부터 전 세계 특수부대는 물론 미 연방수사국(FBI)과 중앙정보부(CIA)에서도 필수 교육과정으로 채택되었으며, 2009년 오늘날 브라질리안 주짓수(Brazilian Jiu-Jitsu)라는 이름으로 전 세계에 확산되고 있다.

[마따 레웅(Mata Leao). 인간이 맨손으로 짐승을 제압하다]

동영상은 그레이시 가문의 후손인 힉슨 그레이시의 경기 하이라이트와 브라질리안 주짓수(이하 BJJ) 시범 장면을 담고 있다.

BJJ는 처음부터 무기를 쥐지 못한 자가 무기를 쥔 자, 다시 말해 약자가 강자를 신체적 차이가 사라지는 공간인 바닥(Ground)으로 끌어들여 제압하도록 발전되어 왔다. 게다가 브라질에 상륙한 뒤로는 오늘날 도심에서 벌어지는 각종 형태의 스트리트 파이팅에 맞게 변형되었다.

유술은 강한 근력보다는 그 어떤 형태로도 변화할 수 있는 유연함을 우선시한다. 연약한 물이 오만가지의 형상으로 변모하며 흐르는 동안 바위를 깎고 꿰뚫어 결국 산산이 부스러뜨리듯, 부드러움이 강함을 꺾는 원리이다.

BJJ의 기술 중 상대의 팔을 불능화 시키는 암바(Arm-bar) 등은 BJJ를 필수 수련코스로 하고 있는 종합격투기 선수들을 통해 우리에게도 이미 친숙해져 있다. BJJ는 상대를 직접 타격하지 않고도 형용할 수 없는 고통을 안겨준다.

특히 경기 하이라이트 영상에서 힉슨이 자주 구사하는 ‘리어 네이키드 초크(Rear Naked Chock)’ 기술은 브라질 현지에서 마따 레웅(Mata Leao), 미국에서 라이언 킬(Lion Kill)이라 일컬어질 정도로 강력한 위력을 지니고 있다.

상대의 등 뒤에서 상대의 몸통을 자신의 두 다리로 휘감아 고정시킨 채 두 팔로 상대의 목을 졸라 경동맥을 압박해 의식불명에 빠트리는 이 기술은 인간이 맨손으로 포유동물을 제압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기술로 평가되고 있다.

실제로 올해 1월 9일 조선일보 보도에 따르면 당시 미국 캘리포니아 베이커즈필드에서는 9세 소년이 인근 주민을 공격하는 체중 약 30kg의 핏불(Pit bull)종 맹견을 이 기술로 제압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 소년은 동물 포획 전문가가 출동할 때까지 약 20분 동안 맹견의 목을 조르고 있었다고 한다.

일각에서는 BJJ의 최대 약점이 일대다(一對多)의 싸움에서 자신을 보호하기에 적합지 않다고 지적하지만 그것은 옳지 않은 말이다.

한번 쯤 치한이나 폭력배들과 싸움이 붙어보거나 싸움을 구경한 독자는 알겠지만 여러 명이 한 명과 싸운다고 해도 여려 명이 한 번에 달려드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리고 여러 명이 있다 하더라도 그 중 누군가가 참혹하게 당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면 인간의 심리상 나머지는 싸울 의지를 잃게 된다.

또 혹 여려 명이 작심하고 한꺼번에 달려든다 해도 지형을 적절히 이용해 메치기 등의 기술로 대응할 수 있으며, BJJ는 이소룡(李振藩)의 절권도(截拳道)와 같이 형식과 틀에서 벗어난 격투술이기에 필요에 따라 언제든 타격을 사용할 수 있다. 실제로 많은 수의 BJJ 짐(Gym)은 종합격투기의 추세에 맞춰 타격 트레이닝을 병행하고 있다.

*64년 도쿄올림픽에서 올림픽 정식종목으로 채택된 바 있는 유도(柔道)는 1882년 창시자인 가노 지고로(嘉納治五郞)에 의해 유술의 모든 위험한 기술들이 제거되어 개발된 스포츠 무도이다.

*고대 유술의 정확한 기원은 정확하지 않다. 중국의 고승이 일본에 전파했다는 설이 있지만 전국시대의 전장터에서 자연스럽게 생겨났다는 설이 더 유력하다. 본 기사에서는 이 두 가지 설을 적절히 접목해 유술의 형성 과정을 그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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