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독자적인 대북 금융제재를 추진하고 있는 가운데 우리 정부가 미국 요청에 따라 북한의 불법 거래나 돈세탁 등에 연루됐을 가능성이 있는 북한 보유 계좌 10~20여개의 정보를 미국에 통보한 것으로 9일 알려졌다.

정부 관계자는 이날 “대북 사업을 하는 일부 기업들과 민간단체들이 북한에 송금할 때 쓰는 북한 계좌 가운데 위조지폐나 마약 거래, 돈세탁 등의 불법 행위에 연루됐을 우려가 있는 일부 계좌 정보를 한·미 공조 차원에서 미측에 알려줬다”며 “이들 계좌는 주로 중국에 많고 스위스 등 제3국에도 일부 있다”고 했다.

이는 미국이 대북(對北) 금융제재를 위한 사전 준비작업에 착수했다는 것을 뜻하며, 북한과 거래가 있는 다른 국가들에도 같은 협조를 구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우리 정보 당국은 무역회사를 위장해 ‘수퍼 노트’(미화 100달러짜리 초정밀 위폐)나 마약 거래를 하는 것으로 의심되는 북한 회사의 이름 및 계좌 정보를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 소식통은 “대북 금융제재를 하려면 불법 행위에 동원된 북한 계좌를 정확하게 파악해야 하는데 (북한 계좌가 많은) 중국이 협조하지 않으면 (파악이) 쉽지 않다”며 “우리측 정보가 도움이 될 것으로 본다”고 했다.

최근 북한도 기존 해외 계좌를 차명(借名)으로 바꾸는 등 국제사회의 금융제재에 대비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 관련 소식통은 “2~3주 전부터 북한이 무역회사나 민족경제협력연합회(민경련·대남 경협창구) 등의 명의로 된 계좌들을 북한 냄새가 안 나는 현지기업 이름 등을 빌린 차명 계좌로 바꾸고 있다”며 “북한도 지난 2005년 BDA(방코델타아시아) 제재 때처럼 앉아서 당하지는 않겠다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일본 마이니치 신문이 8일 “북한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통치자금을 관리하는 노동당 내 38호실과 39호실을 통합했다”고 보도한 것에 대해서도 한 소식통은 “금융제재에 대비하려는 움직임일 수 있다”고 했다.

우리 정부도 북한 기업 3곳에 대해 사상 처음으로 금융 제재 조치를 취했다. 기획재정부는 이날 “지난 4월 북한의 장거리로켓 발사에 따른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결정에 따라 1일부터 북한 기업 3곳(조선광업무역회사·단천상업은행·조선용봉총회사)에 대한 금융 제재에 들어갔다”며 “국내 기업은 이들과 거래를 할 수 없고 이들의 국내 재산도 동결된다”고 했다.

그러나 이날 현재 이들 북한 기업과 거래하는 국내 기업은 없으며, 정부의 이번 조치는 국제 공조에 참여하는 선언적 조치의 성격이 짙다.

출처: 조선일보 안용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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