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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첩 혐의로 북한에 억류된 두 명의 미국인 여기자가 피랍 79일 만에 재판을 받은 4일, 북중 국경도시인 도문(圖們)에서 바라본 두만강 건너 북한 남양시의 분위기는 의외로 평소와 다름없이 평온했다.
‘미 제국주의자’에 대한 재판뿐만 아니라 2차 핵실험이 강행된지 불과 열흘 남짓 지났을 뿐인데도 자축하는 선전간판은 고사하고 도문대교 끝을 지키는 북한군 병사들의 태도마저 마치 무관심하다는 듯 차분했다.
핵실험 등을 자축하는 군중대회가 평양을 비롯한 각 시도에서 진행되었다는 정권의 화려한 선전과는 너무도 다른 분위기였다.
민둥산으로 에워싸인 황량한 북한 땅에는 금세라도 무너질 것 같은 흰색 건물들 외벽에 내걸린 김일성의 초상화가 여전히 중국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도문대교 인근에서 쌍안경 대여업을 하고 있는 현지 주민에 따르면 핵실험 직후에도 북한 쪽에서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고 했다. 아마도 심기가 불편한 중국정부를 자극하지 않기 위함인 듯 했다.
쌍안경으로 좀 더 가깝게 바라본 북한의 분위기도 멀리서 바라본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간간히 보이는 깡마른 체격의 남녀 주민들은 산에 염소를 풀어놓고 풀을 뜯게 하거나 물건을 나르는 등 일상에만 열중하고 있었다. 핵실험 등으로 인한 자긍심이나 활기찬 분위기와는 거리가 멀었다.
도문대교를 지키는 중국 경비대에 중국 돈 20위안(한화 약 3천6백원)을 지불하고 관광용 타워 꼭대기로 올라갔다.
북한에 대한 중국인들의 악화된 여론 탓인지 핵실험 전에 방문했을 때와는 달리 관광객도 없었고 북한산 기념품을 파는 상인도 사라지고 없었다. 대신 중국 측의 삼엄해진 경비를 반영하듯 긴장된 표정의 인민해방군 경비대원만이 기자의 뒤를 줄곧 따라다닐 뿐이었다.
높은 곳에서 고(高)배율 쌍안경으로 바라보자 대교 끝에 모여 대화를 나누고 있는 사람들과 그 옆의 트럭 한 대가 보였다. 사복을 입고 있는 사람들과 트럭의 정체는 알 수 없었지만 북중 양 측의 왕래는 아직 계속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시선을 돌리자 대교에서 머지않은 곳에 뭔가 큰 공사가 진행되는 듯 중장비를 옮기는 대형 크레인 한 대가 보였다. 대교 끝의 트럭이 이 공사와 관련이 있을 것이라는 직감이 들었다. 다만 공사의 정체는 현지 주민들도 알지 못했다.
다시 시선을 돌리자 두만강변의 울창한 숲 사이에 은폐되어 있는 반지하 형태의 북한 국경수비대 초소가 보였다. 타워에 올라가기 전 까지는 결코 볼 수 없었던 초소였다. 4일 재판을 받은 미국인 여기자들도 초소의 존재는 알지 못했을 것이었다.
높은 곳에서도 역시 별다른 변화를 찾지 못한 채 타워에서 내려와 역시 관광객이 사라진 도문대교로 향했다.
대교 중간 국경선을 향해 걷는 도중에 내려다 본 두만강은 불과 한 달 만에 강폭이 한 층 더 줄어들어 있었다. 강 수위도 그만큼 낮아져 탈북자들의 도강(渡江)도 보다 쉬워졌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동행한 중국 경비대원에게 강폭이 좁아지기 시작한 시기를 묻자 말해 줄 수 없다며 입을 다물었다. 다만 그는 도문대교를 지나는 차량들 대부분이 중국 측 차량이라고만 귀띔해주었다. 중국으로 오는 북한 차량이 크게 줄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기자의 옆을 지나 북한 쪽에서부터 중국으로 건너간 일제(日製) 승용차의 운전자도 북한 주민이라고 보기에는 체격과 스타일이 남달랐다. 물론 일본산 승용차라는 점에서 평양의 고위층 자제이거나, 북한 국적의 조선족일 수도 있는 여지를 남겼지만.
북한에서는 70년대부터 일본산 제품이 큰 인기를 얻기 시작했으며, 자동차도 부유층들 사이에서 닛산(日産)과 도요타(豊田) 등이 선호되고 있다.
2차 북핵 실험과 미국인 여기자 재판 등 국제사회와 북한의 굵직한 줄다리기가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에서도 두만강을 사이에 두고 바라본 북한은 아무것도 변화한 것이 없었다.
국경선에서 되돌아서서 본 대교 끝에는 마오쩌둥(毛澤東)이 친필로 썼다는 북중 양 측의 우호를 다짐하는 대형 현판이 북한을 향해 우뚝 서 있었다. 하지만 지금처럼 양 측의 관계가 악화된다면 이 현판의 내용도 언젠가는 바뀔 것이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북한에 억류되어 있을 두 미국인 여기자와 현대아산 직원의 무사귀한을 기원하며, 또 지금 이 순간에도 강을 건너고 있을 북한 주민들의 안전을 염원하며 기자는 손에 잡힐듯한 북한 땅을 뒤로 하고 발길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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