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강성대국 건설을 위한 ‘150일 전투’ 돌입을 선언한 북한 정권이 14일 노동신문을 통해 “70일 전투를 계승해 새로운 대고조 진군속도를 창조해야한다”고 촉구했다.

18일 정권은 또 동(同)신문을 통해 “지금 온 나라의 전당, 전군, 전민이 150일 전투라는 당의 호소를 받들어 새로운 혁명적대고조의 열풍으로 끓어 번지고 있다”며 특히 노동계급이 큰 역할을 할 것임을 강조했다.

북한은 현재 거리 게시판에 “150일 전투가 OO일 남았다”는 문구를 선전하며 오전 9~12시 사이 거리 통행을 단속하고 장마당 개장 시간을 오후 2시에서 4시로 늦추는가 하면 보안서(경찰서)와 직맹 및 여맹 규찰대 등을 배치하는 등 규제를 강화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일부 언론보도에 따르면 150일 전투는 후계자로 내정된 김정일의 삼남 김정운이 충성심 과시와 후계업적을 위해 기획 및 지휘하고 있으며, 70일 전투의 복제판에 가까운 형태를 띠고 있다.

70일 전투는 지난 74년 2월 김일성의 후계자로 추대된 김정일이 경제 부문에서의 업적을 쌓기 위해 동년 10월부터 12월까지 추진한 속도전이다.

북한의 속도전 역사는 지난 7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71년 ‘100일 전투’로 속도전을 시작한 북한 정권은 74년 70일 전투, 78년 100일 전투, 80년 100일 전투, 88년 200일 전투를 각각 전개했다.

[71, 74, 78년 속도전 직후 군사분계선(MDL)에는 남침 땅굴이 출몰했다]

그런데 북한의 속도전 시기와 비슷한 시점에 발생한 국내 정세를 결부시켜 보면 한 가지 의혹스러운 패턴이 나타난다.

김정일의 후계자 내정 직후 시작된 74년 10월 70일 전투 시기와 맞물려 동년 11월에 경기도 연천군 고랑포 북동쪽 8km에 위치한 군사분계선(MDL) 남방 1.2km 지점에서, 이듬해 3월에 강원도 철원군 북쪽 13km에 위치한 군사분계선 남방 900m 지점에서 각각 남침용 땅굴이 발견된 것이다.

북한의 땅굴 사업은 첫 속도전 시작과 같은 해인 71년 9월 25일 김일성이 당시 대남공작 총책인 김중린과 인민군 총참모장 오진우 등에게 “속전속결 전법으로 기습전을 감행할 수 있게 하라”는 ‘9.25교시’를 하달함에 따라 시작되었다.

71년 첫 번째 속도전과 시기를 같이 하는 김일성의 9.25교시 하달과 약 3년 뒤인 74년 연천에서 발견된 첫 번째 땅굴, 그리고 74년 김정일에 의해 시작된 두 번째 속도전과 이듬해인 75년 철원에서 발견된 두 번째 땅굴.

북한의 속도전 시기와 대남 땅굴이 발견된 시기가 비슷하게 얽히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우연이라 치부하기에는 똑같은 사례가 더 있다.

김정일에 의해 세 번째 속도전이 시작된 78년 그 해 10월 17일, 판문점 남쪽 4km에 위치한 군사분계선 남방 435m 지점에서 세 번째 남침 땅굴이 발견된 것이다.

[10년 후 속도전 직후 땅굴 또 출몰.. 굴착기술 갈수록 진화]

이들 땅굴의 특징은 시간이 갈수록 길이가 짧아지고 굴착기술이 발전하고 있다는 점이다.

첫 번째 땅굴은 길이 약 3.5km에 지하 45m에 위치한 콘크리트 구조물로서 1시간에 1개 연대 및 궤도차를 이용한 중화기의 이동만이 가능했지만, 두 번째 땅굴은 길이 약 3.5km에 지하 50~160m에 위치한 암석층 굴진 아치형 구조물로서 1시간에 3만여 병력 및 궤도차 없이 중화기를 운반할 수 있다.

또 세 번째 땅굴은 길이 약 1.6km에 지하 73m에 위치한 암석층 굴진 아치형 구조물로서 1시간에 3만여 병력과 중화기를 운반할 수 있다.

보다 신속하게 침투할 수 있는 단거리 굴착지점을 찾아내 암석을 뚫고 대규모 병력을 운반할 수 있도록 나날이 기술이 진화했다는 점에서 굴착기간도 이와 비례해 단축되었을 것으로 예상되었다.

따라서 이런 점에서 세 번째 땅굴이 속도전 선언 이후 불과 1년 내라는 짧은 기간 안에 완공되었을 가능성이 이해될 수 있는 것이다. 북한은 한국에 1년 앞선 73년 9월 5일 평양 지하철 1호선을 개통했을 정도로 이미 굴착기술이 상당히 발달해 있었다.

사례는 또 있다.

서울올림픽이 개최된 88년 김정일에 의해 다섯 번째 속도전이 시작된 이후 2년 후인 90년 강원도 양구 북동쪽 26km 지점에서 길이 약 2.1km에 지하 145m에 위치한 암석층 굴진 구조물의 네 번째 땅굴이 발견된 것이다.

이 땅굴이 2년 후에야 발견된 것은 선뜻 납득할 수 없지만 한 층 진일보된 북한의 굴착 및 은폐 기술과 동년의 서울올림픽 개최, 그리고 노태우 정부 출범 및 7.7선언(민족자존과 번영을 위한 대통령특별선언) 발표와 이러한 화해무드를 악용한 북한 정권의 기만전술 등 다양한 원인이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관측되었다.

[의문의 공백, 80년 당시에는 무슨 일이..?]

그런데 80년 네 번째 속도전 당시에는 땅굴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점이 의문으로 남고 있다.

이와 관련해 인민군 특수부대 장교(대위) 출신으로 2000년 탈북한 임천용 자유북한군인연합 대표는 80년 5월 18일 발생한 광주사태 당시 현지에 북한군이 침투되었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작년 10월 한국안보포럼(회장 이종구) 조찬 강연회에 나선 임 대표는 평양 용성구 대남사적관에 위치한 자료집을 인용해 79년 박정희 전 대통령이 사망하자 김일성이 대남 공작의 형태를 납치, 테러 등에서 특수전으로 바꾸도록 조치했다고 밝혔다.

그리고 80년 5월 루마니아 방문 전 남한 급변사태 시 특수부대를 투입하도록 지시한 후 실제로 광주사태가 발발하자 긴급히 돌아왔으며, 지금은 특수8군단에 편입된 1321부대를 당시 남파시켰다고 설명했다.

그는 인민군 내 수령교시인 ‘정치상학’을 인용해 광주사태가 진압되자 김일성이 “남조선을 해방할 절호의 기회가 세 번 있었는데 광주가 제일 아깝다”고 한탄했다고 전한 뒤, 83년판 ‘광주평록’을 인용해 북한이 광주사태의 실패 원인으로 교도소 수감자들을 봉기주도자로 확보하지 못한 점을 꼽고 있다고 덧붙였다.

비록 임 대표가 주장한 내용의 사실 여부는 아직 판단할 수 없지만, 중무장한 공수부대가 광주 시내에 투입될 정도로 국내 정세가 혼란스러웠던 당시에 북한이 속도전을 펼쳤다는 점은 당시에도 역시 모종의 음모를 꾸몄을 가능성을 뒷받침하고 있다.

[대남사업 총괄자 최승철의 죽음에 이어진 신(新)속도전]

지금까지의 가능성을 전제로 할 때 88년 이후 동구권의 붕괴와 고난의 행군 등으로 인해 잠시 주춤했던 북한 정권이 이 달 들어 또 다시 속도전을 시작했다는 사실은 심각한 우려를 낳고 있다.

최근 언론보도에 따르면 북한은 노무현 정권 시절 대남사업을 사실상 총괄했던 최승철 전 노동당 통일전선부 수석부부장을 ‘사회 전반에 대한 대남 의존도를 키우고 대남 환상을 심어준 죄’로 작년에 처형했다.

이는 작년까지 햇볕-포용 시절의 환상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북한 정권이 이를 확실히 청산하고, 작년 촛불난동 당시 못 다했던 ‘속도전을 빙자한 남조선 붕괴 작업’을 올 해부터 본격적으로 재시작할 것임을 암시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특히 이번 속도전이 김정일의 첫 작품인 70일 전투와 흡사하고 후계자로 지목된 김정운이 지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북한 정권이 연일 한국 내 종북(從北) 세력들에게 5.18과 같이 봉기할 것을 촉구하고 있는 점에서 그 정도와 양상은 짐작되고 있다.

실제로 북한 정권은 지난 3월 9일 조선중앙통신 보도를 통해 한국진보연대가 앞서 4일 서울에서 총회를 열고 올 해 대대적인 반(反)정부 전선 구축을 투쟁목표로 내걸었다고 밝히기도 했다(2009년 3월 9일자 ‘北 "한국진보연대, 올해 대대적 反정부 결의"’ 보도기사 참조).

하지만 체제의 존속 여부가 달렸다 해도 과언이 아닌 2012년 강성대국 건설 시기가 임박했고 또 대륙간 탄도탄 발사 강행과 핵개발 재개 천명, 한미 양 국 민간인 납치 등 폭주에 폭주를 거듭하고 있는 점에서 한 층 무모한 형태의 ‘붕괴 작업’이 진행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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