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북한의 대외부문 엘리트들은 살얼음판을 걷는 것과 같은 삶을 살아가고 있다. 대남정책의 실패로 그 책임을 지고 노동당 통일전선부의 엘리트들이 추풍낙엽처럼 사정의 칼날을 맞고 요덕수용소로, 추방지로 쫓겨났다.

올해 초 전 세계로 나가 있던 북한의 모든 기관원은 본국으로부터의 소환명령을 받고 북한에 들어가 국가보위부로부터 소위 ‘대검열’을 받았다. 소환된 기관원들 가운데 30% 정도는 아직 원상복귀하지 못했다고 한다. 보위부 검열을 받고 겨우 살아난 사람들은 얼마나 고되게 조사를 받았는지 뼈만 앙상한 채로 주재국에 나타났다고 한다.

간부들에게 최근 북한의 식량난이 어떠냐고 물어보면 식량난보다 더 심한 것이 ‘사람잡이’라고 한다. 해외 남조선 정보기관의 활동이 강화되면서 여기에 연계된 소위 간첩을 잡기 위해 보위부가 생사람 잡기에 나섰기 때문이다.

노무현 시대가 끝나면서 남한정부의 대북(對北)지원이라는 잔치가 끝나자 북한의 엘리트들은 최고지도부를 주시하기 시작했다. 개혁·개방 없어도 남측의 퍼주기로 지난 10년간 권력집단은 어려운 것 없이 지낼 수 있었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에 대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극단적으로 어려워진 경제위기에도 불구하고 김정일과 최고지도부는 금강산에서 남측 관광객을 살해하고, 개성공단을 압박하는 것도 모자라 ‘광명성 2호’를 발사하고 나섰다.

북한의 정상적인 사람들은 최근 최고지도부의 이런 망하는 행태에 비관하고 있다. 그래서 이제 엘리트들은 김정일과 운명을 함께할 경우 자신들도 도매금으로 넘어갈 수 있다는 위기감에 직면하고 있다. 최근 고위층 탈북자들이 다시 급증하고 있는 것도 이런 위기감과 무관하지 않다.

과거 엘리트들은 변화된 두 가지 모습을 목격했다. 하나는 독일식 통일과 두 번째는 중국식 개혁·개방이었다. 독일 통일은 구 공산당 간부들과 군(軍) 지휘관들을 모두 실업자로 만들었고 그 기득권을 완전히 무너뜨렸다.

그래서 김정일은 망한 구동독 공산당 간부들의 비참한 모습을 찍어와 북한의 간부들에게 보여주었다. 그래서 많은 간부는 김정일은 정말 싫지만 그 정권이 무너질 경우 기득권이 무너질 것을 우려해 울며 겨자 먹기로 김정일을 따를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수백만이 아사했던 1990년대의 대기근이 북한을 덮쳤지만 김정일 정권은 무너지지 않았다.

하지만 현재 두 번째 위기는 북한의 기득권층을 안심할 수 없게 만들고 있다. 그 위기감은 바로 인민 대중의 힘이 점차 커지고 있다는 데서부터 오고 있다. 국가가 개인에게 배급을 주지 못하면서 시장이 확대돼 개인의 힘이 주체할 수 없을 만큼 커지고 있다.

그들은 지금 인민도 살고 자신들도 살 수 있는 중국식 개혁·개방을 절실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지금 북한의 엘리트들이 대체로 공감하는 것은 지금 북한은 정상적인 사회주의 국가가 아니라는 것, 그리고 김정일 정권이 주장하는 대로 중국식 개혁이 사회주의를 배신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일단은 극단적 수령 우상숭배에서 정상적인 사회주의인 집단지도체제로의 전환과 그에 기초한 개혁개방을 이뤄내야 한다는 내부 공감대가 확산되고 있다. 최근 국방위원회가 개편되면서 노동당 작전부가 대남수호의 1선에서 체제수호의 1선으로 역할을 바꾸게 된 것도 이러한 내부변화와 무관치 않다.

체제에 반발하는 자들은 무자비하게 처리하겠다는 강력한 의지가 담겨 있는 것이다. 이제 김정일과 운명을 함께하려는 수구세력과 정상적 엘리트들의 목숨 건 필연적 권력투쟁이 임박했고 그 변화 상황을 면밀하게 주시해야 할 때가 왔다.

출처: 조선일보 강철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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