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리 세이모어 미국 백악관 대량살상무기(WMD) 정책 조정관은 1일 “북한이 (미국 등을 향해) 싸움 걸기를 원하고 있는 것은 매우 명확하다”며 “북한이 핵실험을 할 것 같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세이모어 조정관은 1990년대 클린턴 행정부에서 북핵 문제를 직접 다뤘던 인물로, 오바마 정부에선 핵·미사일 확산방지 문제를 총괄하는 ‘차르’ 역할을 맡고 있다. 그는 “북한이 9개월 이내에 6자회담에 되돌아올 것”이라며 “우리는 오로지 기다릴 뿐”이라고 했다.

북한의 핵실험 같은 도발 위협에 굴복해 북한과 서둘러 대화하자고 나서진 않을 것이며, 최악의 경우 올해 안에 6자회담이 열리지 않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도 최근 “북한이 6자회담에 복귀할 가능성이 작아 보인다”며 “북한은 스스로 더욱더 깊은 무덤을 국제사회에서 파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 고위 인사들의 일련의 발언을 통해 오바마 정부가 구상하는 대북 정책의 윤곽도 보다 분명해졌다. 북한은 최근 ‘추가 핵실험’ ‘대륙 간 탄도미사일(ICBM) 발사’ ‘우라늄 농축을 통한 핵개발’ 등 3종(種) 도발 위협 세트를 흔들어 대며 한국과 미국 등을 협박하고 있다.

그러나 오바마 정부는 북한의 도발에 직접 대응하지 않고 대신 유엔을 통한 대북 제재로 맞서면서, 북한이 대화에 다시 나오는 게 현명한 길임을 깨달을 때까지 기다리는 쪽으로 대북 정책의 방향을 잡아가고 있다. 일종의 ‘압박과 무시’ 전략이다.

미국이 대북 정책의 기조(基調)로 ‘압박과 무시’를 선택한 데는 일정 정도 수긍이 가는 대목이 있긴 하다. 그간의 미·북 대화나 6자회담은 북한의 도발에 벌을 주는 게 아니라 오히려 상(賞)을 준 것이라는 비판을 받았고, 그 사이 북한은 핵과 미사일 능력을 키워왔다. 이런 악순환을 끊을 때가 되긴 했다.

그러나 국제 사례를 보면 유엔 제재가 북한 같은 독재국가에 별 효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효과적인 대북 압박이 되기 어렵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이번에도 한미가 판을 잔뜩 키워놓았다가 결국엔 북한 입지만 유리해진 상태에서 북한과 협상하게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있다. 한미는 이런 과거의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을 방안을 내놓아야 한다.

무엇보다 정부는 미국의 대북 압박과 무시 기조에 동의하기에 앞서 북한이 추가 핵실험 같은 도발을 통해 한반도 위기 지수를 높여가는 상황을 어떻게 관리하고 헤쳐나갈 것인지에 대해 미국과 충분한 사전 협의를 해야 한다. 6자회담이 제 기능을 못한다면 다른 어떤 대안이 있는지도 한미 간 의견 조율이 필요한 사안이다.

출처: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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