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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의 워싱턴 DC 지국 사무실과 기자의 집에는 각각 두 개의 지도가 걸려 있다. 너비 2에 가까운 세계 지도와 미국 지도다.
2년 전 워싱턴 DC에 부임할 때는 당연히 미국 지도를 많이 볼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오히려 그 반대였다. 지난해 미국 대통령 선거 당시 각 주(州)로 출장 갈 때를 제외하고는 세계 지도를 보면서 기사를 쓸 때가 훨씬 많았다.
조지 W 부시(Bush) 전 대통령의 임기 말년에는 이라크에서의 철군(撤軍) 논의를 계기로 중동 지역을 자주 들여다봤다. 지난 1월 버락 오바마(Obama) 대통령이 취임 후 아프가니스탄 정책을 강조하면서부터는 습관처럼 서남아시아 지역을 보고 있다.
지난달에는 북한의 장거리 로켓이 어디쯤 떨어질지를 예측하기 위해 일본 열도와 하와이 사이의 태평양을 짚어가며 기사를 썼다.
워싱턴 특파원이 미국 지도보다 세계지도를 자주 보는 현상은 미국의 정치, 경제, 사회가 상당 부분 전 세계와 불가분의 관계를 갖고 있다는 방증이다. 미국의 오피니언 리더를 만나면 미국 국내문제보다는 국제적인 문제로 대화를 나눌 때가 많다.
세계 지도 앞에 서면 지금 한국에서 중요하게 다루는 문제는 사실 사소해 보일 때가 많다. 또, 한국은 여전히 세계화와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한국인이 관련된 버지니아텍 사건이나 건강과 관련된 신종 플루 같은 문제가 아니면 국제적인 사안이 관심을 끌기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정치 지도자들이 국제적이고 보편적인 의제보다는 소모적인 국내문제에 매달려 있는 바람에 한국인들의 인식은 좁은 대한민국 지도 안에만 머물러 있다.
그 결과로 나타나는 것은 세계적인 관점에서 볼 때 이해하기 어려운 현상이다. 폐쇄적이고 수구적인 좌파 세력의 선전 선동은 소멸하지 않은 채 부활을 꿈꾸고 있다. 국제수역사무국(OIE)의 세계지도에 한국은 미국과 달리 광우병 위험 통제국가 군(群)에 포함되지 못하고 있다.
그렇지만 여전히, 유독 미국산 쇠고기가 한우(韓牛)보다 위험하다는 논리가 국내에서는 판을 친다. 전 세계가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한 유엔 결의안을 찬성할 때 정부 차원에서 기권을 주장했던 세력은 여전히 이 문제에 대해서는 모른 척한다. 자국 대통령을 예사롭게 비하(卑下)하는 이들이 정작 세계가 혐오하는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에 대해서는 꿀 먹은 벙어리 수준이다.
국토면적이 아니라 군사력, GDP등의 각종 통계를 기준으로 만든 지도책 ‘아틀라스의 진짜 세계(The Atlas of the Real World)’에는 총 366개의 신개념 지도가 실려 있다.
이 책에는 면적으로는 세계지도에서 손톱크기 만한 한국이 자동차 수출, 특허출원, 과학 논문수의 증가 면에서는 미국과 맞먹을 정도의 크기로 형상화돼 있다. 컴퓨터 수출을 비롯한 일부 측면에서는 오히려 미국을 능가하는 크기로 표현된다.
이런 성취를 이룩한 한국은 이젠 좁은 대한민국 지도에 갇혀 있을 것이 아니라 세계지도에 투영(投影)되는 우리의 모습을 생각해 봐야 한다. 산업 발전과 경제력을 기준으로 한 새로운 세계지도에서 차지하는 비중만큼, 사고(思考)도 세계화될 필요가 있다.
한국에서 좌파 세력이 다시 불붙이려고 하는 ‘촛불’이 과연 세계지도를 놓고 볼 때 타당성이 있는지도 따져봐야 한다.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보편성과 국제감각이 없이는 더 이상의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을 깨달을 때가 됐다.
출처: 조선일보 이하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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