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북한이 외무성 성명을 통해 우라늄 농축과 미사일 발사의 재개를 선언하며 끝없는 이상 폭주(暴走)를 이어가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북한의 비정상적인 내부 분위기를 반영하기라도 하듯 김정일의 장남은 해외를 전전하며 연일 거침없는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북한의 내부 상황을 알기 위해서는 북한의 최고위층, 특히 로열패밀리를 이용하는 것만큼 효과적인 방법이 없다. 하지만 효과적인 만큼 로열패밀리를 비롯한 북한의 최고위층을 포섭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지금까지 한국이 확보한 북한 최고위층으로는 황장엽(86) 前 노동당 비서를, 로열패밀리로는 김정일의 처조카인 故 이한영 씨를 꼽을 수 있다. 그들은 망명 직후 북한의 내부 상황을 국제사회에 폭로함으로서 북한 정권 종식의 당위성을 설명하는데 상당한 기여를 했다.

다만 황 전 비서는 망명 직후 출범한 좌파 정부에 의해 10여년이라는 긴 기간을 원치 않게 허송세월로 보내야만 했으며, 故 이한영 씨는 김정일에 의해 자택에서 피살되고 말았다. 그들은 급격히 변화하고 있는 지금의 북한 내부 상황은 알 수 없다.

그런데 북한 소식에 애타게 목말라 하는 한국 정보당국에 한 마리의 월척이 포착되었다. 바로 앞서 언급한 김정일의 장남, 김정남(38)이다.

김정일의 첫 번째 정부(情婦)인 성혜림의 아들로서 유년시절 생일 선물이 100만 달러 상당에 이르렀을 뿐만 아니라 파자마 차림의 김정일이 직접 소변을 받아주었을 정도로 사랑을 독차지했던 김정남(이하 정남)은 한 때 후계구도에서 김정일의 매제인 장성택(63) 노동당 행정부장의 지원을 받았을 정도로 막강한 권력을 누린 바 있다.

김정남, “나는 후계자가 아니다”

하지만 정남은 2002년으로 추정되는 시기에 성혜림이 사망하기 앞서 96년 이모인 성혜랑이 서방(西方)으로 망명한데 이어 90년대 말 고위층 자녀들에게 “내가 지도자가 되면 개혁개방을 실시하겠다”고 말함으로서 돌이킬 수 없는 정치적 타격을 입었다. 또 80년대 스위스 유학 시절 고영희로부터 이복동생인 정철과 정운이 태어남으로서 같은 ‘만경대 혈통’의 견제까지 받게 됐다.

이후 중국 베이징(北京)과 마카오, 유럽 등지를 떠돌기 시작한 그는 2001년 위조 여권으로 일본에 입국하려다 적발돼 추방된 사건으로 인해 김정일의 노여움을 사게 됨으로서 후계 논의에서 사실상 배제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정남은 자숙하기는커녕 신년 공동사설에서 ‘새로운 혁명적 대고조의 해’로 규정되는 한편 정운의 후계자 내정설이 한 층 불거지고 있는 올 해 들어 북한의 공식적인 대외 입장 따위는 개의치 않는 독단적이고도 거침없는 행보를 걷고 있다.

그는 지난 달 30일 북한의 탄도탄 발사 직전 일본 후지TV와의 인터뷰에서 “미사일 발사는 미북 협상이나 6자회담과 직접적 관련이 있고 지금이 가장 적절한 시점”이라며 “(요격을 경고한) 일본의 입장은 자위 차원에서 당연한 것”이라고 말해 ‘평화적 목적의 위성 로켓이므로 요격은 곧 도발’이라는 북한의 공식 입장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파격을 선보였다.

그리고 지난 7일 일본 TBS와의 인터뷰 도중 후계 구도를 묻는 질문에서도 “내가 후계자라면 마카오에서 이런 옷(운동복)을 입고 여행하고 있겠느냐”며 금기시되는 후계 문제를 노골적으로 언급하는 대담함을 보였다.

적극적이고 개방적인 성격이 보수적인 軍部의 견제 불러

정남의 이러한 노골적인 발언들은 그가 후계자 자리에서 멀어졌음을 의미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실제로 정남은 올 해 1월 베이징에서 외신 기자들에게 “후계 문제는 아버지만이 결정할 일”이라며 후계자가 아직 확정되지 않았음을 시사했다가 지난 달 인터뷰에서 불과 석 달 남짓 사이에 다른 인물 혹은 국가기관이 후계자로 부상해 자신은 사실상 탈락이 굳어졌음을 드러낸 바 있다.

하지만 그의 거침없는 발언들을 단순히 장남임에도 불구하고 후계구도에서 탈락했다는 분노감과 연계시키는 것은 곤란할 것으로 보인다.

정남은 이전에도 이미 90년대 중후반 300만 명의 주민들이 아사(餓死)하는 참혹한 현실을 목격하고서 개혁개방의 필요성을 공공연히 주장한 바 있으며, 외국어 구사 능력이 취약한 일가(一家)의 다른 가족들과는 달리 영어와 불어에 매우 능통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는 그가 본시 적극적이고 개방적이며 글로벌적인 마인드를 갖고 있고 소신을 숨기지 않는 성격임을 보여주고 있다.

정남의 이러한 성격은 장성택을 비롯한 급진적인 관료들에게는 환영받았으나 보수적이면서 동시에 실질적인 권력을 행사하는 군부(軍部)에게는 위협으로 다가왔을 것이며, 따라서 군부는 노동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이었던 장성택의 숙청에 앞장서는 한편 김정일의 두 번째 정부인 고영희와 함께 정남의 권력을 약화시키는데 주력했을 것이다.

王座를 뺏긴다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 한다. 남은 선택은..

그 장성택이 최근 조명록 총정치국장, 김영춘 인민무력부장, 오극렬 노동당 작전부장 등 군부 출신의 권력 실세들이 즐비한 국방위원회 위원직에 내정되었다는 것은 그도 정남을 포기하고 실리를 챙기기 위해 대세를 따르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지원 세력을 잃고 권력구도에서 멀어진 이상 정남은 차후 김일성의 동생으로서 75년 자강도로 이주해 현재까지 칩거 중인 김영주(89)와 김정일의 이복동생으로서 폴란드 대사라는 한직에 밀려난 김평일(55)과 같은 절차를 밟게 될 것으로 보이고 있다.

특히 일찍부터 후계자 수업을 받아 체제가 안정적이던 시기에 비교적 잡음 없이 후계자로 내정된 김정일의 경우와는 달리 정남과 정철, 정운 형제는 장성택 그룹 및 군부를 각각 등에 업은 생모(生母)들 간의 치열하고도 감정적인 권력 싸움에 오래 휘말려왔다는 점을 고려할 때 그 숙청의 정도는 ‘제거’에 가까울 정도로 매우 혹독할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김정일의 최후가 가까워지는 가운데 체제가 내부에서부터 급속도로 붕괴되고 분열되어 가고 있는 현 상황 하에서는 후계자에 대한 무소불위(無所不爲)의 강력한 권력 집중을 위해서라도 자칫 권력 승계 정통성에 있어 논란의 여지를 남길 수 있는 위험인물에 대한 제거의 필요성이 한 층 더 요구될 것이다.

따라서 북한의 탄도탄 발사와 관련한 일본의 강경 입장을 옹호하는 정남의 발언은 차후 해외 망명에 필요한 포석(布石)을 깔아두기 위한, 즉흥적 발언이 아닌 사전에 치밀히 계획되고 의도된 발언으로도 해석될 수 있을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일본 언론은 한미일 3국이 자체 입수한 정보를 국제사회에 의도적으로 흘릴 필요가 있을 때 이용하는 비공식 창구로 알려지고 있어 역(逆)으로 정남이 북한 당국의 치밀한 감시를 피해 자신의 메시지를 한미일 3국에 전달할 가장 효율적인 수단이었을 것이다.

홍콩 일간지 사우스차이나 모닝포스트(South China morning post)의 2007년 보도에 따르면 정남의 가족 또한 마카오의 대형 빌라에서 생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어 그의 망명에는 아무런 장애가 없다는 점도 의혹을 뒷받침 하고 있다.

이러한 낌새를 북한 정권도 이미 알아차리고 있었던 것일까, 그들은 작년 12월 노동신문 사설을 통해 누군가에게 경고라도 하듯 “동지애의 위력으로 강성대국을 건설해야한다”며 “(그 과정에서) 배신의 길과 혁명대오의 분열의 길을 경계해야한다”고 강조했다.

스스로의 이용 가치 높여줄 南韓 선택할 가능성 높아

정남이 만약 정말로 망명을 단행하게 된다면 한미일 3국과 중국 중 하나를 선택하게 될 것으로 보이고 있다.

그 중 첫 번째로 손꼽을 수 있는 곳은 중국으로서, 가족이 모두 베이징과 마카오를 오가며 생활하고 있는데다 정남 또한 중국 정부의 지원을 등에 업고 빼앗겨 버린 왕좌를 노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최근 북한이 중국을 ‘가짜 사회주의’라 비난하고 중국이 북한 탄도탄 발사를 비판하는 유엔 의장성명 채택에 찬성하는 등 북중 양 측의 관계는 험악해질 대로 험악해진 상태라 중국이 북한의 내정에 간섭하기란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정남은 왕좌를 포기한 채 자칫 자신을 정보 확보를 위한 도구로만 사용하며 활동을 억제할 위험이 농후한 미일 양 국 보다는 자신의 이용 가치를 높여주고 활동의 기회도 폭넓게 보장할 한국을 선택할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 등이 김영삼-이명박 정부에서 받은 대우를 보더라도 정남에게는 한국이 매력적으로 다가올 것이며, 그와 한 때 마카오에서 동거했으며 아이까지 낳은 것으로 시사월간지 신동아가 신년호에서 보도한 여성이 현재 서울에 거주하고 있다는 사실도 그의 마음을 움직일 것이다.

게다가 그가 TBS와의 인터뷰에서 북한의 탄도탄 발사와 관련해 “북한과 주변국 사이의 긴장이 더욱 높아질 것 같아 매우 우려하고 있다”고 정치적인 입장을 내놓으며 야심을 감추지 않은 점도 그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정남이 비록 현재는 권력의 중심에서 멀어져 있다고는 하지만 그는 김정일을 치료할 의료진을 호출하기 위해 프랑스를 방문할 정도로 로열패밀리 중에서도 장남이라는 지위를 여전히 누리고 있다. 정남이 한 때 김정일 왕국의 태자(太子)로서 누렸던 위세는 그가 아버지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을 하인 부리듯 했다는 故 이한영 씨의 증언에서도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어디까지나 가능성이지만 정남의 망명이 정말로 감행된다면 이는 북한 내부정보 확보의 차원을 넘어 북한의 소위 만경대 혈통의 망명이라는 점에서 황 전 노동당 비서와 故 이한영 씨의 파장을 훨씬 상회하는 충격을 북한 정권에 안길 것이며, 걷잡을 수 없는 후폭풍을 몰고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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