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미국 여기자'와 '2차 핵실험' 카드를 동시에 흔들며 대미(對美) 압박을 본격화하고 나섰다. 미국 힐러리 클린턴(Clinton) 국무장관이 사실상의 '대북 무시정책'을 시사한 다음날, 또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 타깃 리스트(제재 대상 목록) 발표가 나오기 전날인 '24일' 시점을 택해 억류 중인 미국 여기자 2명을 공식 재판에 회부한다고 발표하는 한편 추가 핵실험의 가능성을 시사한 것이다.

북한은 이날 '조선중앙통신사 보도'를 통해 "미국 기자들의 범죄자료들에 기초해 그들을 재판에 회부하기로 정식 결정했다"고 밝혔다. 북한이 언급한 미국 기자들은 '커런트TV' 소속 한국계 유나 리와 중국계 로라 링 2명으로, 이들은 지난달 17일 두만강 인근에서 탈북자 문제 등을 취재하던 도중 북한 군인들에 붙잡혀 억류돼 있다. 북한은 구체적인 조사 결과나 죄목에 대해선 밝히지 않았으나 '불법입국'과 '적대행위' 2가지 혐의를 적용할 것으로 알려졌다.

또 북한 입장을 비공식 대변하는 재일본 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 기관지 조선신보는 이날 "지난 2006년 7월 유엔 안보리가 대북 결의안을 채택하자 3개월 만인 10월 북한이 지하 핵시험(실험)을 했다. 미국과 그 추종세력이 압박하면 할수록 조선은 핵보유국으로서의 지위를 더욱 더 확고한 것으로 다져 나갈 것"이라고 했다. 이는 북한의 장거리로켓 발사를 비난하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조치에 따라 북한이 핵실험을 감행할 수 있음을 시사한 것으로 풀이된다.

북한이 이처럼 두 카드를 동시에 들고 나온 것은 "미국의 대북 무시 정책에 대한 반격, 반발의 의미"(김용현 동국대 교수)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클린턴 장관은 23일(한국시각) 미 하원 청문회 보고서에서 '북한 문제'를 아예 뺐고, 의원들 질문에도 "북한의 오락가락 행동에 굴복해선 안 된다"고 짧고 단호하게 말했다. 김 교수는 "로켓 발사 등이 기본적으로 미국에 '빨리 협상하자'는 메시지라는 것을 감안할 때 북한으로서는 '철저한 무시'로 북을 대하는 미국의 반응을 참기 힘들 것"이라고 했다.

이에 따라 북한은 미국 여기자들 문제를 미·북관계 현안과 연계해 '대미 지렛대'로 사용하겠다는 뜻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는 것이다.

정부 관계자는 "북한은 미국 여기자들의 재판 과정을 최대한 길게 끌면서 미국의 관심을 유도하려 할 것"이라며 "또 이 과정에서 핵불능화 역행 조치 등을 병행하며 2차 핵실험 위협도 허풍이 아니라는 선전을 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북한의 최종 목표는 결국 '미국과의 직접 대화'이고, 여기자 문제 등을 계기로 미국이 고위급 대북 특사를 파견하는 등 '성의'를 보여주기를 기대하고 있다. 조선신보가 이날 "미국 정부는 북한을 핵실험으로 떠밀었던 선행 정권(부시 행정부)의 실책을 답습하지 않으려면 (북한) 군대의 경계와 불신을 불식시키는 외교적 노력부터 기울여야 한다"고 덧붙인 것도 이 같은 의중을 드러낸 것이다.

하지만 미국이 북한의 의도대로 반응할지는 미지수다. 미국은 이미 여기자 문제의 장기화에 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은 최근 잇달아 개최된 북한 관련 회의에서 북한이 여기자 문제를 협상카드화 하더라도 인권을 강조하는 선에서 북한 핵, 미사일 문제 등과 별개로 처리한다는 원칙을 확인했다.

미국은 이란에 억류된 여기자와는 달리 이 문제를 가급적 조용히 해결하기 위해 공개적으로 석방을 요구하지 않아 왔다. 윤덕민 외교안보연구원 교수는 "위기를 고조시킨 뒤 협상을 모색하는 것은 북한의 단골전략이고 이번에도 결국 어느 시점에는 대화의 물꼬가 터지겠지만, 현재의 미국 분위기로 볼 때는 당분간 양측이 기싸움을 하며 평행선을 달릴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출처: 조선일보 이하원 기자, 임민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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