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공단에서 26일째 억류 중인 현대아산 직원 유모(44)씨 석방 문제가 갈수록 꼬이는 양상이다. 북한이 24일 북·중 국경에서 탈북 여성을 취재하다 붙잡힌 미국 여기자 2명에 대해 "재판에 회부하겠다"고 공식 발표한 것은, 유씨도 같은 운명에 놓이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를 높이는 대목이다. 지난 21일 남북 당국은 개성공단에서 첫 접촉을 가졌지만 우리 대표단은 유씨 얼굴도 보지 못하고 돌아왔다. 정부 내에서조차 "유씨가 정말 '개성 차사'(돌아오지 못하는 사람)가 되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오지만 정작 대책을 물으면 "어쩌면 좋으냐"고 되물을 뿐이다.

통일부는 21일 남북 접촉을 앞두고 '작전 회의'를 하면서 북측이 100% 유씨 문제를 들고 나올 것으로 예상했다고 한다. 정부 소식통은 "당시 유씨를 접견하는 가상 시나리오까지 만들었다"며 "유씨에게 '고생 많다. 당신 뒤에는 국가가 있으니 안심하라'고 말할 계획이었다"고 전했다. 그러나 북측이 유씨 문제를 전혀 거론하지 않을 것이란 사실은 21일 오후 예비 접촉을 하면서야 눈치 챘다고 한다. 우리측이 먼저 유씨 접견 문제를 꺼냈더니 북측은 "그건(유씨 조사) 다른 기관에서 담당한다. 이번 의제는 개성공단 사업 관련이라고 하지 않았느냐"며 싸늘하게 잘랐다고 한다. '다른 기관'이란 체제 안전을 담당하는 보위부로 추정된다.

남측 수석대표였던 김영탁 개성공단사업지원단장은 출발에 앞서 "우리 국민의 신변 안전 문제를 최우선으로 접촉에 임하겠으며 돌아와서 접촉 결과를 국민에게 설명할 때 부끄럽지 않도록 하겠다"고 말했지만 '빈말'이 돼 버렸다.

유씨는 지난달 30일 체포된 이후 '고립무원'의 상태에서 북한 조사를 받고 있다. 북한 형사소송법상 체포 뒤 최장 10일인 '수사' 단계를 지나 범죄 혐의를 확정하는 '예심' 단계에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혐의가 무겁거나 반(反)국가 혐의를 받을 경우, 예심은 6개월까지 가능하다. 미국 여기자는 체포 39일 만에 수사→예심 절차를 끝내고 기소됐다. 미국 여기자는 '불법 입국'과 '적대 행위' 혐의를, 유씨는 '체제 비판'과 '탈북 책동' 혐의를 받고 있다.

청와대 당국자는 "북한도 마냥 유씨를 붙잡아 둘 수 없을 것"이라며 "유씨를 석방하느냐, 기소하느냐가 남북관계의 분수령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일단 정부는 개성공단 관련 '돈을 더 달라'는 북한 요구와 유씨 석방 문제는 어떤 식으로든 연계될 수밖에 없다고 판단한다. 현인택 통일부 장관은 이날 개성공단 입주기업 대표 10여명과 가진 간담회에서 "부당하게 북한에 의해 장기간 조사를 받고 있는 이(근로자 억류) 문제는 개성공단의 본질적인 문제"라며 "개성공단 모든 기업과 연관된 문제"라고 했다. 정부 핵심당국자는 "2차 접촉 때도 유씨 문제가 최우선 의제"라고 했다. 그러나 21일 접촉 때 개성공단을 관리하는 중앙특구개발지도총국이 "우리 관할이 아니다"라고 밝힌 만큼 북한이 유씨 문제를 개성공단 사업과 직접 연계할지는 미지수다.

안보부처 관계자는 "북한이 개성공단과 유씨 문제를 분리하는 '투 트랙'(Two Track) 전술을 쓸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있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북한에 선물을 주지 않으면 억류가 장기화할 것"이라고 분석한다. 이조원 중앙대 교수는 "북한이 원하는 선물 리스트에는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 참여 포기, 유씨 문제에 대한 남한의 선(先) 유감 표명, 금강산관광 무조건 재개, 개성공단 임금 인상 등이 있다"고 했다. 남주홍 경기대 교수는 "북한은 남한의 대북 정책 전환이란 명분과, 개성공단 수입 확대란 실리를 모두 노리고 유씨를 인질로 잡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어느 것 하나 우리가 쉽게 들어줄 수 없다는 게 문제라는 관측이다. "중국 등 북한 우방국들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김용현 동국대 교수)는 견해도 있지만 이들 국가는 "개입하기 부담스럽다", "북한이 싫다고 하면 어쩔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유씨 문제를 유엔 인권이사회에 제기하겠다는 뜻도 밝혔지만 결과가 나오려면 1년씩 걸린다는 점에서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국책연구소의 한 연구원은 "우리가 대북 정책의 명분까지 포기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남북 실무 차원의 비공식 접촉을 통해 일부 실리를 북한에 양보하는 방법도 검토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했다. 그러나 "북한에 한번 양보하면 계속 끌려가게 될 것"(유동렬 치안정책연구소 연구관)이란 우려도 만만치 않다.

출처: 조선일보 안용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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