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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러리 클린턴(Clinton) 미국 국무장관이 3개월 만에 확연히 달라진 대북(對北)정책을 선보였다.
클린턴 장관은 22일 취임 후 처음으로 미 하원 외교위원회가 주최한 청문회에 참석했다. 이날 주제는 ‘새로운 시작: 오바마 행정부의 외교정책 우선순위.’ 그는 A4용지 10장 분량의 준비된 보고서에서 아프가니스탄의 안정화 노력, 파키스탄 내 탈레반(이슬람 근본주의 테러집단) 세력의 확장, 중동 문제, 이란의 핵개발 등의 문제에 대한 오바마 행정부의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북한 문제는 준비된 원고의 어느 곳에서도, 단 한 단어도 거론되지 않았다. 6자회담에 대한 언급도 사라졌다.
오바마 행정부가 그동안 북한과 함께 당장 핵(核)무장을 막아야 할 국가로 거론해 왔던 이란은 이 보고서에서 두 차례에 걸쳐 언급됐다. 클린턴 장관은 특히 “이란의 핵무기 개발을 막기 위해 새로운 접근법을 구사하고 있다”고 말함으로써 북한과 분명한 차별을 했다.
이 같은 입장은 지난 1월 13일 미 상원의 외교위원회의 인준 청문회 때, 클린턴 장관이 밝힌 방침과는 뚜렷한 차이가 있다. 당시 클린턴 장관은 제출된 보고서에서 “북한과 이란의 핵확산을 저지하기 위해 시급성을 갖고 행동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시리아 등에 대한 북한의 핵기술 이전 의혹 등을 중단시키기 위해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밝혔다. 당시 그는 “6자회담을 통해 미국은 북한과 양자(兩者) 접촉을 할 기회도 있다”고 말함으로써 양자 대화 가능성을 강력히 시사하기도 했다.
그러나 클린턴 장관은 이날 준비된 원고에서 북한 문제를 생략했을 뿐 아니라, 의원들의 북한 관련 질문에 대해서도 짧고 단호하게만 답했다.
그는 이날 공화당의 댄 버튼(Burton) 하원의원의 질문에 답변하면서 “북한의 오락가락하고 예측할 수 없는 행동에 강력하고 끈질기며 일관되게 대처해야 하며, 굴복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북한은 3개월 전 ‘시급한 대화의 상대’에서 이젠 ‘굴복해서는 안 되는 국가’가 됐다.
그는 “북한이 6자회담 재개 의향을 보이지 않고 있다”고 지적하며, 북한의 로켓 발사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 1718호 위반이라고 밝힌 강력한 대북 의장성명이 채택된 데 대해서는 만족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클린턴 장관의 달라진 입장은 최근 열린 미 장관급 외교·안보회의(Principals Committee)의 결론을 반영한 것이다. 오바마 행정부는 북한이 지난달 스티븐 보즈워스(Bosworth) 대북정책 특별대표의 방북제의를 거부할 때만 해도 당황해하는 분위기였지만, 최근에는 당분간 양자회담에 매달리지 않는다는 입장을 확정했다.
특히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하고 4명의 불능화 모니터 요원을 쫓아내며 핵 프로그램을 재가동하려는 것에 대해서는 유엔 안보리를 동원해서 분명한 제재를 가하기로 했다. 클린턴 장관은 북한이 연락사무소 역할을 하며 평양의 호텔에 상주해 온 국무부 요원까지 쫓아낸 것에 대해서 무척 화가 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의 대북정책이 이처럼 변화된 입장에는 오바마 대통령이 취하는 새로운 ‘화해의 제스처’ 정책이 이란·시리아·쿠바·베네수엘라 등 구원(舊怨)이 쌓여 온 국가들과 일정 부분 진전을 이루고 있는 것과도 관계가 있다. 또 북한의 대량살상무기(WMD)에 대한 기술 평가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북한의 대포동 2호 미사일이 3200㎞를 날아가고 WMD 관련 기술이 진화하고 있지만, 아직 미국 본토를 공격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제작하기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분석이 퍼져 있다.
북한이 오바마 행정부의 ‘무시 정책’에 반발하며, 위기 지수를 더욱 높일 수도 있다. 워싱턴의 한 소식통은 “북한이 이명박 대통령의 6월 미국 방문에 맞춰서 모종의 도발을 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클린턴 장관은 이날 의회 보고를 통해, 오바마 행정부는 출범 후 거듭해 온 대화 노력을 거부한 북한을 갑자기 외교 우선순위에 놓을 생각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출처: 조선일보 이하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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