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 전면 참여를 조만간 발표키로 한 것은 북한과의 기(氣) 대결에서 계속 밀리지만은 않겠다는 신호탄이다. 정부의 고위 관계자는 21일 “남북접촉 결과와는 상관없이 정부가 PSI 참여를 공식 결정하는 데 그리 오랜 시일이 걸리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

정부는 그동안 PSI가 남북관계 이슈가 아니라는 입장을 고수하면서도 북한의 반응과 동향에 따라 계속 발표 시점을 늦춰왔다. 공식적인 발표 시기만 따져도 15일19일21일 이후로 잇따라 연기됐다. “정책 혼선이다” “북한에 기선을 빼앗겼다” 등의 비판을 받으면서도 정부가 이 같은 선택을 한 것은 ‘한반도 긴장 고조’의 책임을 뒤집어쓰지는 않겠다는 전략적 판단 때문이었다고 청와대 관계자는 전했다. 현대아산 직원 유모(44)씨가 개성공단에서 억류돼 있는 상황도 무관치 않았다.

그러나 정부가 계속 PSI 참여 여부에 대해 지지부진한 입장을 보이게 될 경우 북한에 남북관계의 주도권을 뺏기는 것은 물론 정부 스스로 자신의 말을 뒤집게 된다는 부담을 우려한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그동안 거듭 “PSI 참여 원칙은 이미 정해졌고 시기의 문제만 남았다.

러시아를 포함해 전 세계 94개국이 가입해 있는데 이미 가입돼 있었어야 하는 것이 정상”이라고 말해왔다. 이랬던 정부가 북한의 강경태세 때문에 PSI를 유야 무야 한다면 국제사회는 물론 국내에서도 체면이 서지 않는 상황이다.

미국 정부는 한국의 PSI 참여 방침에 대해 비공식적으로 “환영”논평까지 이미 내놓았다. 물론 정부 일각에서는 “남북관계의 현실을 고려할 수밖에 없지 않느냐”면서 PSI 참여에 대해 잠정유보론을 견지하는 인사들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나라당 공성진 최고위원도 “(PSI) 전면 참여 원칙을 천명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지만 시기는 전략적으로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다고 본다”고 했다. 하지만 정부 내 큰 흐름은 ‘융통성’을 보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원칙’을 지키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는 쪽인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가 PSI 전면참여를 발표하게 되면 우여곡절은 있었지만 어찌 됐든 ‘약속’을 지킨 셈이 된다. 대북관계에서도 ‘주도권’을 잃게 되지는 않았다는 평가를 들을 수도 있다.

문제는 남북관계의 긴장이 이로 인해 고조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북한군 총참모부는 18일 남한이 PSI에 전면 참여하는 것은 “(북한에 대한) 선전포고”라면서 “서울이 군사분계선으로부터 불과 50㎞ 안팎에 있다는 것을 순간도 잊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북한의 대남기구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가 지난달 30일 남한의 PSI 참여를 “선전포고”라고 규정한 데 이어 군이 다시 나선 것이다.

정부는 이 같은 북한의 협박이 ‘어거지’라는 입장이다. 정부 관계자는 “기존의 남북해운 합의서는 대량살상무기뿐 아니라 일반 무기 또는 무기 부품의 수송을 금지하고 이를 위반했을 경우 승선, 검색, 강제퇴거 조치를 허용하고 있다”면서 “PSI에서 요구되는 조치가 남북해운합의서에서 인정되는 조치보다 어떤 면에서 약하다”고 했다.

정부가 대량살상무기를 막기 위한 국제적 해상 협력 조치인 PSI에 가입한다고 해서 남북간 무력충돌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상희 국방장관이 20일 “평양도 군사분계선에서 150㎞밖에 안 떨어져 있는데 현대전에서 이런 거리 차이는 수치에 불과하다”면서 “군은 국지도발이든, 전면 도발이든 한미방위 연합태세에 따라 즉각 응징할 대비가 돼 있다”고 말한 것은 정부의 단호한 태세를 내비친 것이다.

정부 내에서는 이렇게 될 바에야 북한이 장거리 로켓을 발사한 지난 5일 직후에 PSI 참여를 발 빠르게 발표하는 것이 오히려 북한의 ‘트집’을 차단할 수 있었던 길이 아니었느냐는 자성론도 나오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출처: 조선일보 주용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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