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우리 국민들은 낯선 광경을 봤다. 북한 주장에 휘둘리지 않고 ‘세게 나가는’ 남한 정부의 모습이었다. 남측은 이날 접촉 장소, 의제 등에 관해 “우리가 하라는 대로 하라”는 북측의 요구에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현 정부 출범 후 처음으로 개성에서 이뤄진 남북 당국 접촉은 저녁까지 성사 여부조차 불확실할 정도로 큰 진통을 겪었다.

이는 남북관계에서 “원칙에 입각해 의연히 대처해 나가겠다”는 이명박 정부의 다짐이 처음으로 구체화한 사례라고 볼 수 있다. 작용이 크면 반작용도 클 수밖에 없다. 앞으로 북한이 한반도 긴장을 더 고조시키는 등 작심하고 ‘남한 길들이기’에 독을 품을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다. 남북관계에 드리워진 그늘도 당분간은 더 깊고 짙어질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날 누구보다 북측 자신이 당혹스러웠을 것이다. 지난 김대중·노무현 정권은 남북 간의 이견이 생길 때마다 늘 북측이 하자는 대로 입장을 굽혔다. 이런 남한 정권에 길든 북한은 이번에도 남한 정부에 대해 일방적인 ‘소환 통보’를 했다.

지난 16일 “중대 문제를 통지할 것이 있으니 개성공단관리위원장은 개성공단과 관련한 책임 있는 정부 당국자와 함께 21일 개성공단으로 오라”고 통지문을 보내온 것이다.

남한 당국이 이런 북측의 호출에 응했을 때만 해도 북측은 내심 지난 10년 동안 익숙해져 온 시나리오를 예상했을 것이다. 그러나 북측은 남한 당국이 대북 문제와 관련해 ‘햇볕표 융통성’을 발휘할 수 없는 입장이라는 것을 인식하지 못했을 것이다.

우선 우리 정부는 3주 넘게 북한 땅에 갇혀 있는 개성공단 현대아산 직원 유모씨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서 “자국민도 제대로 보호하지 못하는 정부”라는 비판 여론에 부닥쳐 있다.

또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 참여 문제를 둘러싼 잇단 말 바꾸기와 혼선 때문에 거센 여론의 질타를 받기도 했다. 이런 판국에 정부가 북한의 통지문 한 장에 당국자 파견을 결정하자 일부 정치권 등 보수 진영에서는 “지난 정부의 대북 저자세와 다를 게 뭐가 있느냐”는 얘기까지 나왔다.

결국 이명박 대통령은 이런 내부의 질타와 비판을 감안해 ‘개성에 가서 결코 대충 넘어가선 안 된다’는 지침을 대표단에 준 것으로 보인다. “우리측으로선 어차피 북한이 우리에게 좋은 ‘선물’을 줄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접촉 절차와 과정에서 예상 밖으로 세게 나갈 수 있었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출처: 조선일보 신효섭 기자

더 자세한 북한뉴스를 원하신다면

http://freedomfighters.co.kr/ (클릭)

트윗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