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말씀으로 기도하는 이들이 남아 있는 한 ‘소망’은 현재 진행 중입니다. 하나님 북한의 구원과 해방, 복음 통일된 선교한국을 허락해 주옵소서. 제단의 불이 꺼지지 않는 한 주님은 주님의 시간에 이루실 것입니다. 우리를 둘러싼 상황과 한경에 상관없이 말입니다. 구약의 선지자 엘리야는 “큰 비의 소리가 있다”고 선포한 뒤 “갈멜산 꼭대기로 올라가 땅에 꿇어 엎드려 그 얼굴을 무릎 사이에 넣고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사환을 일곱 번이나 다시 보냈죠.
그리곤 “사람의 손만한 작은 구름”이 일어난 것을 보았고 “조금 후에 구름과 바람이 일어나 하늘이 캄캄하여지며 큰 비가 내렸습니다(왕상 18:41~45).” 우리는 캄캄한 세상에 짓눌려 무시해 버릴 때가 많지만, 지금도 엘리야 때처럼 흑암 속에서도 큰 비의 소리를 느끼게 할 ‘사람 손만한 작은 구름’은 여기 저기 목도됩니다. 최근 국내 한 초대형 기도회 기도문을 보게 됐습니다.
북한 선교를 위한 기도문을 보니 “주체사상으로 무장한 북한의 독재 정권이 무너지게 해 달라”는 내용이 나옵니다. 에스더기도운동 같은 곳에서는 예전부터 기도해 온 너무나 당연한 기도제목입니다만, 제가 지금 언급한 이 초대형 기도회는 한국 교회 주류를 따라 “종전선언, 평화협정, 인도적 지원” 등을 위해 기도했었습니다. 그런데 공식 기도문에 북한정권과의 공존이 아닌 붕괴를 위해 기도하는 내용이 들어간 것입니다. 깨어나는 이들이 있다는 방증이기도 합니다.
또 여기 저기 작은 교회, 미미한 기도의 음성이 손만한 작은 구름처럼 남아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이제 필요한 것은 영적인 가뭄 속의 엘리야의 기도입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 지는 사람들, 주님의 마음에 합하여 외치는 엘리야의 기도소리가 나온다면, 그런 예수의 제자가 군대가 돼 나오면, 조금 후 구름과 바람이 일어나 휴전선은 무너지고 동족들은 해방될 것입니다.
성경의 역사로 돌아가 봅니다. BC 6세기. 무너진 성전을 재건키 위해 고향에 돌아온 유대 백성을 향하여 선지자 학게(Haggai)는 이렇게 외쳤습니다. “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내가 너희와 언약(言約)한 말과 나의 신(神)이 오히려 너희 중에 머물러 있나니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지어다.(학2:5)” 좋은 집(paneled house)에 살며 황폐한 성전은 버려둔 백성들(학 1:4), ‘지금은 힘도 없고 능도 없고 적절한 시기도 아니라’며 사명을 피하는 사람들, 상황에 눌리고 환경에 짓눌려 꿈을 버린 자들.
하늘이 주시는 선하고 의롭고 온전한 뜻 대신 조잡한 현실과 천박한 이익에 매여 하루하루 살아가는 이들을 향해 말했습니다. 주님의 언약과 신이 여전히 머물러 있으니 사명을 향해 나가야 한다고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의 언약과 주님의 신은 숱한 순교자의 기도 속에 이 땅에 머물고 있습니다. 동성애가 몰려오고 낙태법이 통과되고 적화와 전쟁의 위협이 있다고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주님은 북한이 열리고 대륙의 사망에 강이, 초원의 광야에 길이 열리길 바라십니다.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명하노니 평양의 우상은 무너질지어다.
우리의 역사로 돌아가 봅니다. 대한민국은 순교자의 핏 값 위에 세워진 나라입니다. 1866년 평양 제너럴셔먼호 사건 당시 토마스(R. J. Thomas) 선교사는 27세 나이로 순교합니다. 1907년 9월 인천 송도에 도착한 루비 켄드릭(Ruby Kendrick) 선교사는 “만일 나에게 1,000개의 생명이 있다면 그 모두를 한국에 바치겠다.”며 세상을 떠납니다. 1902년 군산 앞 바다에서 44세의 나이로 순교한 아펜젤러(H. G. Appenzeller)의 추모비문 내용은 이렇습니다.
“우리는 부활절 아침에 이곳에 왔습니다. 그 날 사망의 권세를 이기신 주께서 이 백성을 얽어맨 결박을 끊으시어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자유와 빛을 주옵소서.” 그 아펜젤러는 전라도 바다에 해난 사고, 배가 침몰하자 조선의 이름 없는 한 학생을 살리고 본인은 이 땅을 떠납니다. 그는 수영선수 출신이었죠. 본인만 살려고 했다면 얼마든지 살 수 있었죠. 그러나 겨자씨처럼 생명을 던집니다.
숱한 외국의 선교사들은 이름 모를 조선의 영혼을 구하려 자신의 생명을 던졌고, 그렇게 견고한 5천년 인습과 죄악의 사슬이 끊어져 갑니다. 자신을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는 예수의 제자들은 서재필·이승만·이상재·남궁억 등 수많은 예수의 제자를 다시 또 길러냅니다. 평양 대부흥 운동의 밀알이 된 길선주 목사는 죽는 날까지 년 425회의 설교를 했다고 합니다. 건강해서가 아닙니다. 돈을 많이 벌어, 또 지식이 많아서도 아닙니다. 목회적 성공을 위함도 아니죠.
자신을 부인해 버리니 하나님이 더 큰 십자가를 지게 하신 것입니다. 그렇게 대한민국은 기도 속에 태어났고 기도 속에 부흥을 거치며 부흥을 이루어 갑니다. 그것이 75년 한강의 기적입니다. 지금도 이 민족 가운데 예수의 제자들이 남아 있습니다. 뽑아도, 뽑아도, 뽑히지 않고 오히려 남한의 타락한 교회를 위해 기도하는 북한 지하교인들. 172개국에 파송된 27,205명(2016년 12월 현재 파송 선교사)의 선교사들.
도서산간 곳곳에서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주를 위해 살다 가는 이들. 전쟁의 먹구름 짙은 이스라엘의 한 선교사는 ‘위험하니 돌아가라’는 유대인 친구의 말에 이렇게 답합니다. “나는 당신들과 함께 죽겠습니다. 하루라도 당신들의 구원을 위해 살다 가겠습니다.” 구한말 미국 장로회 보고서 제목에 나오듯 ‘야산의 들불(wild-fire)’처럼 번졌던 한반도 복음의 불길은 사막에 강을 내고 광야에 길을 내며 천박한 지상에 놀라운 하나님 나라를 아직도 세워갑니다.
전쟁과 적화(赤化)의 공포가 있지만 두려워해서는 안 됩니다. 대한민국은 망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언약과 신이 여전히 이 땅에 머물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언약, 북한의 구원과 해방을 넘어 복음통일로! 이 민족의 부르심을 기억하고 기도하며 선포하는 자들이 일어날 때 대한민국은 다시 일어설 것입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는 예수의 제자가 남아 있는 한 망할 것 같은 위기 속에 다시 또 일어설 것입니다.
제가 언급한 기도문을 읽고 기도하며 마무리 하려고 합니다. 이런 기도문이 나간 뒤 유물론 성향의 진보·좌파 성향은 물론 기득권 보수에 머물고 있는 목사·신도의 공격이 뒤따를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기도문이 한국 교회에 온전히 공유돼 함께 부르짖게 된다면 미국 대통령이 누가 되든, 한국 대통령이 누가 되든, 하나님은 한국 교회를 다시 살리실 겁니다. 북한의 정권을 기묘한 방식으로 무너뜨리시며 북한의 주민은 구원의 길을, 이 민족에게는 선교의 길을 열어주실 것입니다.
“하나님. 지금 이 시간에도 목숨을 걸고 탈북하는 북한의 형제자매들을 생명싸개로 보호하여 주시고, 대한민국에 거주하는 수많은 탈북민들이 주님을 영접하여 통일된 남북의 교회를 이끌어갈 축복의 통로가 되게 하소서.
하나님. 주체사상으로 무장한 북한의 독재 정권이 무너지게 하시고, 고레스와 같은 새로운 지도자를 세우시어 북한이 개혁과 개방의 길로 나아가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했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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