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전에 중국 모 지역의 북한 식당에서 만났던 20대 초반의 ‘오리지널 평양 아가씨’ 이OO양과 최근 단독으로 대화할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되었다.

일전의 방문에서 해외의 북한 식당에서 근무하는 종업원들은 바깥출입이 엄격히 제한된다는 것을 그들 스스로로부터 확인한 바 있었다. 따라서 인터뷰를 위해서는 필자가 ‘호랑이굴’로 다시 들어가는 수밖에 없었다.

때문에 이번 방문에는 평범한 사업가로 위장하기 위해 중국어에 능통한 현지 조선족 주민 한 명과 함께 동행 했다. 일행이 방문하자 필자를 알아본 다른 종업원들이 알아서 이 평양 아가씨를 호출해(사실 종업원 모두가 소위 '출신성분'이 좋은 평양 출신들이다) 테이블에 붙여주었다.

대화 중간에 딸을 한국에 유학 보냈다는 넉살좋게 생긴 한 한족(漢族) 남성의 ‘마이크 붙잡고 늘어지기(?)’가 전개되어 잠시 어수선해지는 사태도 벌어지긴 했지만(이OO양은 종업원들 중 중국어에 가장 능통한 듯 보였다), 운 좋게도 이후 손님들이 대다수 빠져나가고 다른 종업원들이 뒷정리로 자리를 비웠을 때 이 여성과 단독으로 대화할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될 수 있었다.

이OO양은 이 날도 처음에는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필자가 고향의 친오빠와 닮았다느니, 어제가 오빠 생일이라 더욱 생각났다느니 하는 멘트를 던졌다(사적인 감정을 큰 소리로 얘기한다는 점에 미루어 영업용 멘트일 뿐 사실인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식당에서 종업원과 손님간의 사적인 감정 토로는 엄격히 금지되어 있다).

하지만 대화가 길어질수록 그녀도 어린 나이 탓인지 속내를 조금씩 나타내기 시작했으며, 그 중 가장 인상에 남았던 것은 필자의 거듭되는 “힘들죠? 나도 영업해봐서 그 심정 알아요”라는 미끼성 질문에 대한 일순간의 정적과 그녀의 나지막한 대답이었다.

“사실.. 마음대로 할 수도 없고.. 본래 마음과는 다르게 해야 하고..”

짧지만 솔직한 심정이 묻어난 대답이었다. 같은 질문에서 다른 종업원들에게서는 결코 들을 수 없었던 대답인 만큼 그녀의 솔직한 심정임이 틀림없어 보였다. 이는 대답 이후 늘 기계적인 미소를 짓고 있던 평소와는 달리 그녀의 얼굴에 짙게 드리워진 수심(愁心)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이 표정만큼은 훈련된 것이 아닌 진실 된 표정인 듯했다.

필자가 확인한 바로는 해외 파견 종업원들의 평균 해외 파견 기간은 3년이었다. 그리고 오전 10시부터 오후 9시 반까지(손님이 있다면 퇴근 시간은 더 길어진다) 하루도 쉼 없이 서서 서빙하고 노래 부르는 중노동에 시달리고 있었다. 북한 정권이 직접 운영하는 만큼 물론 임금은 없었다.

또 ‘키핑’이라는 외래어를 알 만큼 이미 소위 자본주의물이 든 탓에 그녀들에 대한 감시도 철저했다. 외출은 물론이고 손님과의 사적인 감정 토로는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심지어 종업원들 사이에도 서로를 감시하는 눈치였다.

‘마음대로 할 수 없다’

이OO양의 표정은 단순히 일이 힘들다는 것을 의미하는 대답이 아님을 말해주고 있었다. “나는 갇혀진 노예이다”라는 대답으로 풀이될 수 있는 듯했다. 북한의 여성들, 특히 해외에 파견된 여성들의 처지를 단적으로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물론 탈북 여성들의 삶이 한층 더 참담한 것은 분명하지만, 갇힌 채로 무임금 중노동에 시달리며 자유를 박탈당한다는 점에서는 비슷해보였다. 북한에서 태어났다는 죄아닌 죄로 그들은 그렇게 체제의 희생자가 되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더 깊게 물어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다른 종업원들이 주변에 없다고는 하지만 듣는 귀는 있을 터였고, 집요하게 물어본다고 그녀가 더 이상 대답해줄 리도 없었다. 이OO양도 북한 체제의 희생자인 만큼, 신변을 보호해 줄 의무가 있었다.

더 긴 이야기는 통일이 되어 그녀가 ‘말할 수 있는 자유’를 얻은 다음에 진행해도 늦지 않으리라.

물론 그녀가 평양으로 돌아가 중국에서 보고 들은 것들에 대해 입단속을 철저히 함으로서 가족 모두가 정치범수용소에 직행되지 않는다는 전제 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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