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중앙특구개발지도총국은 15일 남측에 보낸 통지문에서 “개성공업지구에서 우리가 그동안 6·15 공동선언의 정신에 따라 남측에 특혜적으로 적용했던 토지 임대값과 토지 사용료, 노임, 각종 세금 등 관련 법규들과 계약들의 무효를 선포한다”며 “남측 기업들과 관계자들은 우리가 통지한 이상의 사항을 무조건 받아들여야 하고 이를 집행할 의사가 없다면 개성공업지구에서 나가도 무방할 것”이라고 말했다.

남·북이 개성공단 사업을 함께하기 시작한 것은 2000년 6월의 남북정상회담 두 달 뒤인 8월 현대아산과 북한이 ‘공업지구개발에 관한 합의서’를 채택하면서부터다. 북한은 9년 가까이 사업을 같이 하다 갑자기 노임과 임대료 등 사업 조건을 다 바꾸겠다고 일방적으로 통보해 놓고, 이걸 받지 못하겠으면 개성에서 나갈 것을 요구하고 나섰다. 세계 어디에도 이런 식으로 사업하는 경우는 없다.

북한은 통지문에서 “6·15를 부정하는 자들에게 6·15의 혜택을 줄 수 없다는 것은 너무도 자명한 이치”라고 했다. 개성공단 사업을 통해 마치 남측에 대단한 특혜를 줬던 것처럼 주장한 것이다. 그러나 북한은 말을 거꾸로 하고 있다. 북한 근로자들의 상대적으로 싼 임금이 남측 기업에 도움이 됐던 것은 사실이지만, 개성공단에서 이득을 취한 것만 놓고 따지면 가장 큰 수혜자는 북한 권력이다.

개성공단에는 현재 93개 남측 기업이 입주해 있고, 북한 근로자 3만9000여명이 일하고 있다. 북한 당국은 3만9000여명의 북한 근로자가 받는 월평균 임금 73달러를 자신들이 먼저 달러로 가져간 뒤 북한 근로자에겐 나중에 현물과 북한 돈으로 지급하고 있다.

북한 당국이 이런 식으로 가져가는 돈이 한 해 3400여만달러에 이른다. 30억달러 안팎으로 추산되는 북한 대외 교역액을 감안할 때 결코 적지 않은 돈이다. 북한은 50년간 부지임대료 1600만달러도 미리 받아갔다.

북한은 지난 4월 21일 남·북 개성접촉에서 북측 근로자 임금을 중국 수준으로 인상해주고, 공단 토지의 조차(租借) 기간은 원래 50년으로 합의된 것을 25년으로 단축하며, 2014년부터 입주기업들이 내기로 돼 있는 토지 사용료도 당장 내년부터 내라고 요구했다.

우리 기업들은 “이런 조건으로는 개성공단에서 공장을 운영하기 어렵다”고 난색을 표시하고 있다. 그렇다 해도, 임금이나 토지사용료 같은 사업과 관련된 문제들은 남·북이 대화하고 협상하면서 풀어갈 일이다.

그런데 북한은 남측이 줄곧 추가적인 개성 접촉을 요구해도 응하지 않다 갑자기 통지문이란 것을 보내 “우리 조건을 못 받겠으면 나가라”고 했다. 북한은 최근 남·북 대화는 물론, “미국 오바마 정부와도 대화할 필요가 없다”고 하는 등 스스로 고립의 길로 들어서고 있다.

그래서 이번에 북한이 돈 문제를 들고 나온 것도 개성공단을 폐쇄하기로 이미 마음을 굳힌 뒤 그 책임을 남측에 떠넘기려고 무리한 요구를 늘어놓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제기되고 있다.

남측 정부는 지난 4월 1차 접촉 이후 2차 접촉을 갖고, 북측이 47일째 접견도 허용하지 않은 채 억류하고 있는 현대아산 직원 유모씨 문제를 다룰 것을 요구해 왔다. 세계 어디에도 다른 나라 민간인을 이렇게 무법(無法)적으로 무작정 억류하는 나라도 없고, 그런 나라에 투자를 계속하는 정신 나간 나라나 기업도 없다.

유씨의 안전 문제가 풀리지 않는 한 개성공단 사업이 정상적으로 진행되기 어렵다. 그러나 북한은 통지문에서 유씨 문제를 “부당한 의제 밖의 문제”라고 했다.

정부는 북한이 이처럼 말이 되지 않는 행태를 일삼는다 해도, 유씨 석방문제를 포함한 개성공단 문제 전반을 다루기 위한 남·북 접촉을 계속 요구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만 개성공단이 문을 닫게 되는 최악의 사태가 빚어질 경우, 세계가 그 책임이 전적으로 북한에 있다는 사실을 명확히 인식할 수 있다.

정부는 이제 하루 평균 600~700명에 이르는 개성공단에 상주하는 남측 관계자들의 안전 문제 전반을 재점검하고, 최악의 상황에 대비할 자세도 갖춰나가야 한다.

출처: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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