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글은 9월 1일 창간된 대학생 격주간지 ‘바이트’에 기고한 것임>

청소년기는 어떤 사람이 되느냐의 오리엔테이션 기간이다. 이 오리엔테이션의 콘텐츠에 따라 군자(君子)와 소인배, 신사됨과 막돼먹음이 갈린다. ‘군자’란 ‘근사한 사람’ 쯤으로 알면 된다. ‘아름다운 사람’이랄 수도 있다. 아름다움을 위한 보험(保險), 추한 것에 대한 항체(抗體)가 교양이다.

 아름다움은 영혼의 청아(淸雅)함, 병적으로 일그러지지 않은 감성이다. 삐뚤어지고 꼬이고 절제되지 않고 저주하고, 그러다가 “예라, 국보(國寶)에 불이나 지르자”는 막가는 질환(疾患)이 오늘의 우리 사회에 범람하고 있다. 이 병을 예방하고 치유하는 것이 교양이다.

 그렇다면 교양을 어떻게 쌓을 것인가? 지속적으로 인문, 문화, 고전의 세례를 받는 것이다. 교양은 시험공부 하듯, 영어공부 하듯 쌓을 수는 없다. 교양은 이슬비 맞듯 적시는 것이다. 문학, 철학, 역사, 예술, 수행(修行), 그리고 이런 것들이 항상 있는 환경에 노출돼야 한다. 이를 통해 제 마음을 통제하는 능력, 고상한 것에 대한 동경, 염치(廉恥), 천(賤)한 것에 대한 배척, 잔인함과 강포(强暴)한 것에 대한 면역, 언어와 처신의 고품격을 익히는 것이다.

 고등학교와 학부 초급 때 교양의 세례를 흠씬 받고 나서 전문 과정으로 들어가는 게 좋기는 하다. 그 과정을 거치지 않은 채 예컨대 정치 경제 운운을 떠들기 시작하면 나중에 우습게 되기 쉽다. 쥐꼬리만큼 들은 풍월로 정치경제가 어떻다, 열나게 소리 지르다가 멀리 혼자서 떨어져 있게 된 적이 있다. 그 때 서양 철학사 몇 권을 읽었다. 얼굴이 확확 달아올랐다. 부끄러웠던 것이다. 안다는 것의 기본도 알지 못한 채 안다고 자처했던 것이... 무지의 자각과 수치심이었다.

 수치심이야말로 문명의 발단이다. 에덴 동산의 아담 이브가 ‘지혜의 과일’을 따먹고 느낀 것은 수치심이었다. 현실의 ‘지혜의 과일은’ 교양이다. 교양의 마사지를 받고 자란 마음, 그래서 수치심을 아는 마음은 병들지 않는다. 병들지 않은 마음이 전체주의, 광신적 근본주의, 잔인함, 학살, 흉포(凶暴)함을 자행할 까닭이 없다.

 흔히 우리 사회를 정치적 잣대, 그것도 대단히 투박한 것으로 나누려 한다. 그러나 그것에 상당한 근거가 있다 하더라도 그보다 더 심각한 것은 교양과 무교양의 대치(對峙)다. ‘아지프로(agi-pro, 선전선동) + 디지탈 + 막장 대중문화’가 초등학생에서 대학생에 이르기까지의 청소년들을 무교양의 ‘좀비’로 식민화 하려 한다. 이대로라면 ‘민주주의’가 음모가들의 대중조작 기술로 악용될 판이다. 그렇다면 음모가들에 놀아나는 난폭한 군중 폭력 세태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집단주의를 거부하고 개인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근대(modernity) 문명개화 세상은 제정신 차린, 형형(熒熒)하게 깨어 있는 개인의 발견으로부터 출발했다. 우리 근현대사에는 왕조시대, 식민지 시대, 권위주의 시대, 민주 시대, 민중주의는 있었지만 투철한 의미의 ‘자유로운 개인’의 발견은 불명확 하다. 개인의 발견은 이기적 개인주의와 다르다. 패거리와 떼거리에 편승해서, 얹혀서, 숨어서, 묶여서, 제정신 놓고 남의 장단에 춤추지 말라는 뜻이다. 광신과 몽매주의가 제일 싫어하는 것이 그래서 ‘참 개인’이다. 계몽되고 근대적인 문명의 시작은 결국 교양 있는 개인의 출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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