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이 저번에 중국을 방문한 것은 권력승계와 관련된 것이 틀림없어 보인다. 그것은 김정일이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이 마련한 환영 연회에서 “복잡다단한 국제정세 속에 조중(북중) 친선의 바통을 후대들에게 잘 넘겨주는 것은 우리들의 역사적 사명”이라고 말했다고 한 것을 보면 분명하다. 그 전의 방문이 경제적 지원이나 군사적 원조를 요청하기 위한 것이었다면 이번 방문은 김정일이 자신의 아들에게 권력을 승계시키는데 대해 중국의 양해 또는 승인을 구하기 위함이 틀림없는 듯하다.

애당초 김정일은 중국의 후진타오 주석이 평양으로 방문해 줄 것을 기대하였으나 후진타오가 거절하여 마지못해 중국으로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김정일의 목적을 알고 있는 중국으로서 평양까지 들어가 후계자 승계의 들러리를 서는 것이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아무리 공산당이 일당독재를 한다고는 하나 당 내부에서는 민주적 절차를 거쳐 지도자를 선출하는만큼 김일성 일가가 독재를 하고 마치 옛 왕조처럼 혈통에 의해 최고 권력이 승계되는 것을 승낙하기가 중국으로서는 용납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김일성이나 김정일은 소위 ‘주체’니 ‘자주’를 내세워 자신들의 권력이 외세와 전혀 연관이 없는 듯이 그 동안 행세해왔다. 그런데 이번에 김정일이 그런 과거 행태를 버리고 중국으로 권력승계를 묵인해달라고 양해를 구하기 위해 들어간 것은 어떻게 보아도 이례적이다. 거기에는 필유곡절(必有曲折)이라고 판단된다.

김정일은 북한 주민의 감정이나 의사는 아랑곳하지 않고 독재를 해 왔다. 심지어 몇 백만 명이 굶어 죽어도 눈썹하나 까딱도 하지 않았다. 국제사회가 핵무기 개발을 반대하여 미사일 발사나 핵실험에 대해 강력한 제재조치를 취해도 미동도 하지 않고 강성대국을 목표로 선군정치에 매달렸다. 김정일은 북한의 경제가 나빠져도 오히려 군사적 모험주의에 더 크게 목숨을 거는 듯이 보였다.

특히 중국이 그 동안 여러차례에 걸쳐 개혁과 개방을 권유하였으니 김정일은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그런 그가 이번에 자진해서 중국에 들어가 권력승계를 다짐받아야 한다고 생각한 것은 북한 사회에 많은 변화가 있기 때문이라고 추정된다. 마치 조선시대 왕이 명나라나 청나라의 승인을 받아야 권력의 정통성이 생기는 것처럼 행세한 것 같이 김정일도 이번에 중국 정부에 권력승계를 승인받거나 최소한 묵인받기 위해 중국을 방문한 것이 틀림없어 보인다. 왜 그랬을까?

우선 김정일의 남의 수명이 얼마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병이 있으니 언제 죽을지 모른다. 그런데 김일성이나 자신의 독재를 생각하면 자신이 죽고 난 뒤 김일성 가계가 그 뒤에도 북한 주민의 존경을 받게 될지 아니면 처참하게 짓밟히게 될지 불안감이 생길 것이다. 특히 김일성을 본받았던 차우세스쿠의 최후를 생각한다면 자신의 최후도 결코 순탄치 않을 것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자신의 자식에게 권력을 넘겨야 할 절체절명의 위기의식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원래 민주사회의 권력자는 법에 정해진 임기를 넘기면 보통사람으로 돌아오는 것이 정상이다. 그러나 독재집단인 김일성/김정일 집단은 그렇게 쉽게 권력을 내놓고 내려올 수가 없다. 자신들이 저지를 무수한 독재행각을 생각하면 권력을 내놓는 순간 누군가의 보복을 받게 될 것이 두려울 수밖에 없다.

그런데 북한식 개인독재체제도 북한 주민이 먹고 사는데만 지장이 없다면 그렇게 불안하게 생각할 이유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북한의 경제가 파괴되어 굶어죽는 사람들이 무수히 발생하고 있다. 공산사회에서 굶어 죽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배급사회에서 주민에게 식량마저 제공할 수 없다면 그것은 실패해도 단단히 실패한 정권으로서 권력을 지탱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래도 김정일은 지독한 독재로 인해 권력을 유지하는 것이 가능했다. 그러나 북한도 많이 변했다.

배급이 중단되자 시장이 생기기 시작했고, 일부 권력층을 제외하고는 시장을 통해 생계를 유지하는 법을 배우게 되었다. 이로 인해 주민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하게 되자 김정일은 시장을 통해 저축한 민간 자원을 빼앗기 위해 화폐교환을 단행했다. 권력집단이 날강도짓을 한 것이다. 이에 대한 주민의 반발이 워낙 강하자 김정일은 화폐교환 책임자를 공개총살하였다.

이 총살은 김정일의 권력이 약해지기 시작했다는 신호다. 김정일의 권력이 예전처럼 강했다면 그냥 그대로 밀고 나갔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자신의 권력 기반이 약해졌기 때문에 위기를 느껴 마치 그것이 자신의 부하의 책임인양 책임을 전가하고 그를 총살하였다. 자신의 권력을 지키기 위해 책임회피 행동을 취한 것이다. 북한 주민이 새삼 두렵게 생각된 것이 틀림 없다.

마찬가지로 만약에 김정일이 자신이 있다면 자신의 아들에게 권력을 넘겨주는 것을 불안해 하지 않을 것이다. 중국이 동조하든 말든 그대로 진행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제 김정일의 권력 기반이 많이 약해졌음이 틀림 없다. 중국의 승인을 받지 않고서는 불안하게 생각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북한 주민의 약해진 충성심을 중국의 승인으로 보완해야 할 처지에 놓인 것이다.

그러나 김정일의 이러한 선택은 어쩌면 오히려 역효과를 가져오게 될지도 모른다. 한번 사양길에 접어든 권력을 유지하기란 아무리 군대를 앞세워 독재를 하여도 막지 못할 것이다. 군대가 주민과 분리되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주민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보면, 김정일이 믿고 있는 군대가 언제 돌아설지 모른다. 김정일 자신이 그러했듯이 그 아들 김정은이도 조직부장을 맡고 군사분야에도 인사책임을 맡아 자신에게 충성하는 사람들로 핵심자리에 사람들을 앉히겠지만, 한번 떠난 민심을 수습하기가 그리 쉽지는 않을 것이다.

이번 중국 방문 후 북한 노동신문이 갑자기 중국의 개혁개방을 찬양하고 나섰다. 김정일 자신이 이제 더 이상 고립정책을 추진해서 권력을 유지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을 것이다. 모든 것은 장단점이 있다. 지금까지는 독재로서 개혁개방을 막을 수 있었겠지만 이제 더 이상 개혁개방을 막을 독재력도 없게 되었지 않겠는가. 그 약해진 독재력을 중국에 대한 사대(事大)로서 보완해보려고 하겠지만, 자신이 뿌린 악의 씨가 선의 열매를 맺을 수 있겠는가? 김정일의 이번 중국 방문은 자신의 권력이 붕괴되는 신호가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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