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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7년 7월 7일 밤 10시, 중국 베이징 외곽 루거우(蘆溝)교. 이 부근에서 군사연습 중이던 톈진(天津) 주둔 일본군 대대 병력에 총탄 몇발이 떨어졌다. '운명의 1발'이라고 불리는 총탄이다.
이치키 기요나오(一木淸直) 대대장(소령)은 총성 직후 대원 1명이 사라졌다는 보고를 해당 중대장(소위)에게 받았다. 허겁지겁 수색을 명령했다. 밤 11시, 새까만 어둠 속에서 모든 대원들이 수색 작업을 시작했다.
실제로 '모든 대원'이었다. 용변을 보기 위해 잠시 대열을 이탈했던 병사가 수색 직전 복귀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병사가 돌아왔다는 사실은 대대장에게 전달되지 않았다. 유령 실종자를 찾는 수색은 그대로 진행됐다.
새벽 3시30분. 수색 작업이 4시간을 넘긴 시점에 다시 총탄이 떨어졌다. 중국군이 쏘았다는 증거는 없었다. 하지만 대대장은 연대 사령부에 "중국의 적대 행위가 확실하다"고 보고했다. "주저 말고 단호히 싸워라." 무타구치 렌야(牟田口廉也) 연대장(대령)은 여단장과 참모본부 허가도 없이 항전을 명령했다. 월권행위였다.
베이징의 일본군 특무(特務)까지 개입해 정전협정을 맺어줬지만 허사였다. 무타구치는 "중국이 협정을 지킬 리 없다"며 진격을 명령했다. 사태의 출발점이던 실종자 착각은 은폐됐다. 이것이 일본 사서가 기록한 중·일전쟁의 첫 장면 '루거우차오(蘆溝橋) 사건'의 개요다. 물론 중국 사서는 "총탄이 떨어졌다는 주장 자체가 일본의 조작"이라고 기록한다.
몇년 후 중·일전쟁은 태평양전쟁으로 연결됐다. 용변 보러 간 병사를 두고 "실종자가 발생했다"고 보고한 소위의 착각, 유령을 찾다가 총탄 몇발에 '중국의 공격'이라고 판단한 소령의 독단, 첫 보고에 흥분해 독단적으로 전투를 명령한 대령의 월권. '3인 3각의 경박한 행동이 대전(大戰)의 발단'이란 기록을 믿기 어렵다면, 엊그제 일본의 모습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지난 4일 낮 12시16분, 지바(千葉)현 공군자위대 레이더에 동해를 날아가는 물체가 탐지됐다. 탐지 사실은 항공총대(總隊)사령부→방위성 중앙지휘소→총리 관저 위기관리센터를 일사천리 통과한 뒤 긴급뉴스를 통해 "북한 미사일 발사"란 내용으로 보도됐다.
하지만 착각이었다. 다른 감시망에선 나타나지도 않았다. 일본 정부가 발표를 철회한 시간까지 일본 국민은 유령의 공격에 직면한 것이다. 실책은 착각에서 끝나지 않는다. 판단 권한이 없는 방위성 중앙지휘소 직원이 "(미사일) 발사"라고 발표하는 월권행위(마이니치신문 보도), "오보는 방위성이 전달한 정보가 아니다"고 발뺌한 방위성 간부의 은폐 행위(요미우리신문 보도)도 추가됐다.
물론 최첨단 감시망 덕분에 착각은 5분 만에 시정됐지만, 그 시각 일본 정부는 북한 미사일에 대한 파괴 명령을 내려놓고 있었다. 미사일 파괴 스위치를 누르는 최종 시한은 발사 후 7분. 만약 일본이 지바현 레이더에만 정보를 의존했다면? 일본을 향한 유령이 2분 더 레이더에 떠돌았다면? 있을 수 없는 가정이지만, 훗날 사서는 이날을 전쟁의 시작으로 기록했을지 모른다.
"일본이 동북아 패권을 강화하기 위해 위기를 과장한다"는 주장엔 동의하지 않는다. 머리 위로 미사일을 날린다는 데 위기를 못 느끼는 나라가 오히려 이상한 것이다. 하지만 일본의 이번 움직임은 아슬아슬해 보일 정도로 시종일관 가벼웠다. 자신의 역사를 통해 강국(强國)의 중량감부터 몸에 익혔으면 한다.
출처: 조선일보 선우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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