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 년 전만 해도 영향력 있는 러시아인과 친해지는 법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보드카(Vodka)를 들이켜기만 하면 됐다. 러시아인들은 “보드카를 함께 마시지 않는 사람과는 절대 친구가 될 수 없다”며 잔을 강권했다. 외국인들도 그들의 뜻대로 따라주기만 하면 속내를 털어놓을 수 있을 정도로 가까워질 수 있었다.

그러나 요즘은 다르다. 어떤 때는 옛날 방식대로 보드카를 강요하지만, 그 말을 곧이곧대로 듣고 보드카를 들이켰다가는 “왜 막 나가냐”며 핀잔을 당하기도 한다. 어떤 게 진심인지 러시아인들의 생각을 분간하기가 힘들어진 것이다.

최근 러시아가 보여주는 외교가 딱 그 짝이다. 미국이 아프가니스탄 전쟁 수행을 위한 보급로 확보에 어려움을 겪자 러시아는 자국 영토를 개방해줬다. 반면 20억달러의 돈을 키르기스스탄에 주고 미군의 아프가니스탄 작전에 중요한 역할을 해온 마나스 공군기지 폐쇄를 유도해 미국을 곤경에 빠뜨렸다.

이란의 핵개발 저지를 외치는 서방의 노력에 동참하겠다고 선언하면서도, 정작 이란에 핵연료를 제공하고 S-300 지대공(地對空) 미사일을 판매한 국가가 바로 러시아다. 혼란스러운 메시지를 주고 있는 것이다.

북한 핵·미사일 문제도 마찬가지다. 2000년 블라디미르 푸틴(Putin) 정부가 들어서면서부터 과거 북한이 무슨 행동을 하더라도 감싸기만 하던 관행에 변화가 일었다.

2006년 10월 북한이 지하 핵실험을 했던 때의 일. 당시 푸틴 대통령은 “국제사회가 제재로 상황을 몰아가서는 안 된다”고 하면서도 “우리 국경 근처에서 실시한 북한의 핵실험을 절대 용납할 수 없다”고 했다. 조만간 실시될 것으로 보이는 북한의 로켓 발사를 둘러싸고도 엇갈린 메시지가 나온다.

이미 러시아 외무부는 북한의 로켓발사 자제를 요구했다. 세르게이 라브로프(Lavrov) 외무장관도 “(2006년 10월 북한 핵실험 이후 북한의 탄도미사일과 관련한 모든 활동의 중지를 규정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는 지켜져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대북(對北)제재에 대한 얘기만 나오면 “신중해야 한다”고 입장이 후퇴한다.

이쯤 되면 외교 전문가들 사이에서 러시아의 진의(眞意)가 무엇인지 이해하기 힘들다는 토로가 나온다. 그러나 당사자인 러시아인들은 이해의 열쇠가 의외로 단순한 데 있다고 말한다.

그들은 “이제 러시아는 공산주의 이념 한가지에만 충실했던 소련이 더 이상 아니다”고 한다. 개인의 이해관계나 국익(國益)이 최우선시되는 민주주의 국가로 탈바꿈했다는 것이다. 어찌 보면 상반된 듯 보이는 보드카에 관한 입장이나, 미국·이란·북한에 대한 외교행태도 모두 철저히 이해관계에 기초해 있다고 그들은 설명한다.

맞는 말이다. 러시아는 미국과 대립만 하는 것도, 국제사회의 제재로 이란과 북한이 궁지에 몰려 전쟁 등 ‘막가파식’ 행동에 나서는 것도 원치 않는다.

러시아의 이익에 부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란·북한이 핵탄두를 장착할 수 있는 대륙간 장거리 미사일을 보유하는 것은 더더욱 희망사항이 아니다. 지리적으로 가까운 이들 국가가 러시아의 잠재적인 적국(敵國)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러시아 외교는 자국의 이익이 보장되는 ‘한반도 정세의 안정’이라는 큰 틀에서 움직이는 것이다. 북한의 로켓발사에는 응분의 대가가 따른다는 점을 당사국과 관련국들에게 각인시키려면 우리 외교 또한 변화된 러시아를 제대로 상대하는 법을 터득해야 할 것이다.

출처: 조선일보 권경복 기자

더 자세한 북한뉴스를 원하신다면

http://freedomfighters.co.kr/ (클릭)

트윗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