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려가 현실로 
 
필자는 김정일이 뇌졸중으로 자취를 감춘 작년 8월 이전부터 이미 북한 내부의 각종 정황을 종합한 분석 기사 등을 통해 정철 혹은 정운 형제를 앞세운 북한 군부(軍部)의 권력 장악 가능성을 꾸준히 제시해왔다.
 
혹자는 필자의 이런 주장을 두고 “북한은 노동당이 핵심이기 때문에 군부는 힘이 없다”고 반박하는가 하면 심지어는 “허무맹랑한 소리”라며 일축하기도 했다.
 
그런데 김정일이 뇌졸중으로 쓰러진 이후 북측에서는 필자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사건들이 잇달아 발생했다.
 
북한 군부가 금강산 관광객을 이유 없이 살해한 만행(蠻行)을 저지른데 이어 국제사회의 시선이 집중되었던 북한정권 창건 60주년 기념식에 정규군을 참가시키지 않는 것도 모자라 김정일의 작품이라면 작품이라 할 수 있는 개성공단의 철수를 종용하고 급기야 대남 전면대결을 선언하는 등 심상치 않은 징후를 보인 것이다.
 
필자는 북한 군부가 개성공단에 김영철 국방위원회 정책실장(인민군 중장)을 두 차례 파견할 때부터 스스로의 주장을 확신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대남 전면대결을 선언했을 때 이러한 확신을 한 층 더 굳혔다. 
 
이처럼 군부가 권력을 장악하게 될 것으로 추정한데에는 선군정치(先軍政治)와 김정일의 뇌졸중 발병이 큰 근거로 작용했다.
 
군부는 북측이 60년대 병영국가를 선언하고 또 김정일이 선군정치를 표방하면서부터 내각과 당을 능가할 정도로 막강한 권력의 기반을 다져온 바 있다. 황장엽 前 노동당 비서의 다양한 증언들은 이를 뒷받침했다.
 
그리고 김정일의 뇌졸중 발병 소식은 군부의 권력 장악 가능성을 한 층 가시화시켰다.
 
강경 성향인 군부는 오래전부터 비교적 온건파인 내각 및 당과 잦은 충돌을 벌여왔다. 특히 이들은 친중(親中)파로서 김정일의 장남인 김정남을 지원하고 있는 장성택 그룹과 치열한 권력 암투를 전개해왔다. 
 
그런데 돌연 발생한 김정일의 발병에 이어진 ‘권력의 누수(lame duck)’ 현상은 군부가 단독으로 치고 올라올 계기를 마련했다. 쇄약해진 김정일은 모든 대내 업무를 장성택에게 대행할 정도로 약 반 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집권력을 상실했으며, 간신히 죽음의 고비를 넘긴 지금은 두 차례의 발병으로 인해 ‘지적능력 퇴행’이라는 후유증을 겪고 있을 것으로 예상되었다.
 
이런 와중에 대포동 2호 대륙간 탄도 미사일의 개량형으로 추측되는 사거리 약 10,000km의 미사일 발사 준비에 이어 최근에 또 북한 군부의 권력 장악 가능성을 뒷받침할 이상 징후가 포착되었다.
 
국내외 언론매체는 12일 일제히 북측이 전 날인 11일 강경 성향의 김영춘(73)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을 우리의 국방부 장관에 해당하는 인민무력부장에 임명했다고 보도했다.
 
1936년 함경북도 회령 출신으로 만경대혁명학원과 김일성종합대학 출신인 김영춘 신임 인민무력부장은 군수동원총국장, 작전국장과 6군단장, 그리고 우리의 합참의장에 해당하는 총참모장 등 야전(野戰)의 요직을 두루 거쳐 지난 2007년 4월부터 연형묵의 사망으로 공석이 되어 있던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에 취임한 인물이다.
 
그는 특히 김정일의 두 번째 정부(情婦)인 고영희(2004년 사망)의 생존 당시 ‘고영희 라인’으로 분류될 정도로 그녀의 측근이었으며, 북한 권력실세 4인방 중 군부 쪽 인사인 리제강, 리용철 노동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과 함께 고영희의 두 아들인 정철과 정운 형제를 후계구도에서 지원해왔다.

게다가 황장엽 前 노동당 비서에 따르면 김영춘은 개성공단 등 대남 관계를 주도한 당(黨) 인사들과는 상종도 하지 않았을 정도로 독종(毒種) 중의 독종이다.
 
군부의 인사이동은 김영춘 뿐만이 아니다.
 
북측은 인민무력부장 및 총정치국 1부총국장과 함께 군부의 3대 축인 총참모부장에 리영호 방어사령관을 내정하는 한편 우리의 육군 참모총장 격인 작전국장(육군사령관)에 김명국을, 공군사령관에 리병철을, 해군사령관에 정명도를 임명하는 등 일선에서도 대대적인 교체를 단행했다.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오는 3월 8일 개최될 예정인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와 연계시켜 북측의 세대교체라는 주장을 펼치고 있지만, 김영춘이 일흔을 넘긴 고령이고 2년 동안 김정일을 측근에서 보좌했던 구세대라는 점에서 설득력을 잃고 있다. 
 
야전 사령관 출신의 강경파를 중심으로 하는 군부의 인사 이동은 곧 북측이 기존의 대남 정책을 대대적으로 수정했음을 시사하는 것으로 볼 수 있으며, 국방부도 현재 북측이 인민무력부장과 총참모장을 동시에 교체한 것을 이례적인 일로 받아들이고 교체배경 등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바야흐로 필자가 전망한 대로 군부의 권력 장악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점차 대두되고 있는 것이다. 
 
또 다른 숙제에 직면하게 되다
 
필자 또한 스스로의 주장이 점차 가시화되고 있는 것에 대해 환영의 뜻을 나타낼 수 없는 입장이다. 군부의 등장과 함께 북측은 지금 ‘불장난’을 준비하는 것처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 군부는 우리의 합동참모본부에 해당하며 유사 시 실질적으로 북한군을 지휘하게 될 총참모부를 통해 전면대결을 선언한데 이어 미사일 발사 준비를 단행하고 있다. 또한 대남 선전기구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가 서해북방한계선(NLL) 원천 무효를 선언한데 이어 경비정을 남하시키는 등 이상 징후를 보이고 있다.
 
물론 이전에도 북측은 제1차 북핵위기 당시 ‘서울 불바다’를 운운하며 여러 차례 도발 의도를 드러내온 바 있지만 이번은 경우가 크게 다를 것으로 보인다.
 
우선 김정일의 공백을 틈타 상당량의 권력을 장악한 군부가 체제 내부를 주도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 그리고 직접 조선중앙통신 등 주요 언론매체에 모습을 드러내 전면대결을 선언했다는 점 등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기 때문이다.
 
호전성(好戰性)에 있어서 김정일과 군부의 차이를 논한다는 것은 강도가 더 나쁘냐 도둑이 더 나쁘냐를 논하는 것처럼 무의미한 것이지만, 문제는 김정일의 폭정으로 인해 무력(武力)에 길들여지고 또 그 무력을 최고의 가치로 쳐 온 북한 군부가 국제적인 감각에 있어서 김정일보다 다소 뒤처질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무능력과 잔인함의 대명사로 일컬어질 정도인 김정일은 그래도 장성택 등 측근과 내각에 의해 조언을 받으며 나름대로 끈기를 갖고 핵 개발과 통미봉남(通美封南), 개성공단 사업 등의 ‘물리적 외교’를 체제 유지의 수단으로 삼아 왔지만, 장성택 그룹과 극단적인 대립 관계인 군부는 인내심을 잃고 외교를 배제한 채 오로지 ‘물리력’만을 통해 체제 유지의 실마리를 풀어나가려 할 것으로 예상된다.
 
결국 남북관계의 당사자인 한국과 북한의 대량살상무기(WMD) 문제와 관련된 미국 양 국은 또 다른 숙제에 부딪히게 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물론 분명한 것은 국제사회와 북한 주민들 모두에게 고통을 안겨다 준 김정일 정권은 반드시 그리고 조속히 막을 내려야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김정일의 실각에 따른 군부의 집권은 그 고통을 연장시킬 뿐이다. 결코 방안이 될 수 없다.
 
그렇다면 우리의 선택은 무엇이 되어야 할까. 
 
오직 武力만을 미덕으로 여기는 폭력배에게는 더 큰 武力만이 처방
 
북측이 한 때 미북 수교에 큰 기대를 걸었던 미국 버락 오바마(Barack H. Obama) 신임 행정부는 이미 결단을 내린 것 같다.
 
앞서 취임 이후 북핵과 관련해 북측 기업소에 첫 대북 제재를 가했던 오바마 행정부는 오는 19일 방한을 앞둔 힐러리 국무장관과 국무부 대변인을 통해 “미사일 실험 발사 등 북한의 도발적인 행위는 즉각 중단되어야한다”고 북측에 강력한 경고를 던졌다.
 
정찰위성을 통해 북측의 미사일 발사 실험 준비를 확신한 오바마 행정부는 말뿐만이 아니라 실제 행동으로도 옮기고 있다.
 
이미 미 태평양사령부는 지난 9일 함대를 ‘북한을 감시할 수 있는 위치’로 이동시킬 것을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유사시 알래스카의 미사일방어(MD) 기지를 가동시킬 예정인 것으로 CNN에 의해 전해졌다. 미국은 구체적으로 북한의 미사일이 발사된다면 해군의 SM-3 및 패트리어트 요격 미사일 등을 동원해 격추시키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하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파견이 검토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항공모함은 방어(Defense)가 아닌 공격(Assault)의 성격을 띤 절대적 위력의 병기라는 것을 고려할 때 대북 정책에 있어서 이미 전임 행정부들의 전례를 검토했던 오바마 행정부는 ‘단호한 대응’만이 북측을 굴복시킬 수 있는 방안이라는 것을 이미 깨달은 듯하다.
 
반면 우리 정부는 ‘대북 감시태세를 강화하고 있다’고만 언급할 뿐 아직 뚜렷한 대책이 없어 보이는 것이 실정이다.
 
필자는 이제 우리 정부도 지금까지의 미적지근한 태도에서 벗어나 ‘늘 한결같은 태도’를 유지하는 북측의 실체를 파악하고 공세적 노선으로 들어서야 한다고 생각한다.
 
폭력을 최고의 미덕으로 생각하며 ‘내 명령에 따르지 않으면 죽여버리겠다’는 협박을 일삼는 폭력배는 오직 자신보다 더 큰 폭력에만 굴복할 뿐이다. 이는 지난 10년간의 대북 포용정책의 결과가 더 이상의 입증이 불가능할 정도로 적나라하게 입증하고 있다.
 
정부는 북측이 아직까지는 체제의 붕괴로 직결될 전면전(全面戰)을 선택하지 못할 것이라는 점을 고려해 ‘도발 시 그에 상응하는 응징이 반드시 뒤따를 것’이라는 확고한 입장을 선포하는 한편 실질적으로도 최첨단 군사력을 동원해 대규모 국지전(局地戰)에 대비함으로서 북측에 이를 관철시켜야 한다.

이러한 조치는 언제 발생할지도 모를(또 있어서도 안 될) 전면전에 대비하기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필자의 전망이 물론 틀릴 수도 있다. 하지만..

정부는 또 한미동맹을 통해 북측을 전방위적으로 압박해야 한다.
 
유사시 북한군을 초토화시키고도 남을 한미 군사동맹을 과시해 북측은 물론 중국까지 설득하고 압박함으로서 역으로 중국 정부가 북측에 압력을 가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한미 동맹과 일본에 이어 중국까지 가담해 대북 포위망을 완성한다면 북한 체제는 자동적으로 붕괴의 길을 걷게 될 것이다. 붕괴 이후에는 역시 한미 동맹의 파워를 통해 중국의 한반도 개입을 저지할 수 있을 것이다.
 
설사 중국이 가담하지 않는다 해도 한미 양 국의 군사력과 국제적 영향력은 우리의 피해를 최소화하고 가장 확실하게 북측의 도발을 분쇄할 열쇠(Key)이자 통일로 가는 가장 빠른 길(Expressway)임이 분명하다.
 
“한반도 주변국들 중 남북 통일을 원하는 나라는 오직 미국이 유일하다”는 구소련 출신의 대북 전문가 안드레이 란코프(Andrei Lankov) 호주 국립대 교수의 시각은 이를 뒷받침한다.

군부의 집권 가능성이라는 필자의 전망이 물론 틀릴 수도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인류 역사상 유례가 없을 정도로 외부로부터 폐쇄되어 있는 북한의 특성상 그 내부에서 발생하는 사건들은 그 누구도 정확히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북한 정권의 변함없는 호전성을 잊지 말고 군부의 집권 가능성을 포함한 다양한 가능성들을 염두에 두고서 자유민주 통일을 위한 방안들을 구체적으로 마련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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