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이따금 필자의 보도기사를 접한 중국 현지의 탈북자들로부터 인터넷 메신저를 통해 도움을 요청받곤 한다. 그 중에는 자력(自力)으로 혹은 필자의 주선으로 이미 한국에 오신 분도 있지만, 대다수는 아직 중국에서 힘든 생활을 하고 있는 형편이다.

필자가 바로 그 중국 현지에 나와 있는 오늘도 역시 누군가가 메신저를 통해 말을 걸어왔다. 그도 중국에 체류 중인 탈북자였다.

“혹시 한국분이신가요?” 자신의 이름을 서OO(女. 가명)라 소개한 그의 첫 물음은 필자가 한국인인가였다. 대화의 첫 마디부터가 한국행에 대한 갈망이 서려있는 듯 했다. 필자의 대답에 그는 국내 모 탈북자 단체 웹사이트에서 기사를 읽고 연락했노라 밝혔다.

“저는 북한 사람입니다. 전 죽어도 이번에는 (한국행을 위해) 움직이고 싶습니다. 하지만 아는 사람도 없고, 한국한국 하다가 한국이라는 나라에 가기도 전에 죽을 것 같기도 하고..”

서 씨는 소위 고난의 행군으로 말미암아 굶어죽은 시체들이 도처에 늘어나던 지난 98년도에 고향인 함경북도 OO을 떠난 탈북자라 자신을 소개했다.

그는 당시 브로커들에게 속아 중국에 인신매매를 당했다고 했다. 40대의 한족(漢族) 남자에게 팔려갔다가 곧 탈출한 뒤 식당을 전전하며 저임금 중노동에 시달렸다는 그는 2003년 한 차례 강제북송 당한 뒤 다시 탈북해 현재 중국인으로 위장하고서 OO시에 은신 중이라고 했다.

아직 서른도 채 되지 않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필자에게 토로한 서 씨의 삶은 그야말로 참담(慘憺), 그 자체였다.

“중국에 가면 아주 잘해 준다고 해서 중국어도 모른 채 한 여자를 따라 한 한족에게 팔려갔습니다. 하지만 (브로커의 말과는 달리) 그 사람은 밥도 먹기 힘들고 곤란하고 그래서 탈출해 식당일을 했지만 2003년에 북한에 잡혀갔습니다”

그는 북송되어 노동단련대에 수감되었다가 3달 만에 다시 탈북했다고 했다. 그러나 그가 재탈북을 위해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역시 인신매매뿐이었다.

북송 당시 모든 재산을 빼앗긴 탓에 국경수비대와 중국 공안에게 뇌물을 주고 도강(渡江)하기에 그의 처지는 너무도 열악했다. 그렇다고 북한에 그대로 눌러앉아 있기에 그에게는 기초적인 경제적 기반조차 없었고, 북한의 경제난은 너무나도 심각했다.

그리고 중국은 폭력적 수령독재가 지배하는 북한과는 달리 제한적이나마 자유(自由)가 존재했다.

“아는 사람도 없고 해서 다시 인신매매에 팔려오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남자 세 명이서 차를 들이대고 여자(본인을 지칭)를 때리면서 그러는 겁니다. 그래서 거기서 화장실을 가는 척 하면서 도망갔습니다”

그렇게 서 씨는 성(性)노예로서의 삶을 가까스로 면한 채 두 번째 중국 생활을 시작했다고 했다. 다행히 그가 전에 일하던 식당의 주인은 탈북자에 대해 비교적 우호적인 사람이었다. 그는 그 식당 주인에게서 얼마간 돈을 얻어 다시 생활을 시작했다고 했다. 하지만 불행은 끝나지 않았다.

“작년에 사랑하는 사람을 질병으로 잃었습니다. 어려서부터 부모 사랑도 없고, 중국에 오니 남편 사랑도 없고, 지금은 혼자 몸으로 이렇게 사는데 아파서 쓰러지면 누구 구해 줄 사람도 없고, 지금 일하는 곳의 직원들은 모두 저를 중국인으로 알고 있고, 그러다보니 제 머릿속에는 오직 스트레스밖에 없습니다”

탈북자의 신분으로 돈이 없어 사랑하는 이를 그렇게 떠나보내고 수없이 방황했다는 그는 어젯밤 우연히 한국의 탈북자 단체 홈페이지 주소를 알게 되어 찾아 들어갔다가 보도기사를 접한 것을 계기로 필자에게 연락을 하게 되었노라고 거듭 말했다.

중국에서 서 씨가 얻은 것은 언제 꺼질지 모를 바람 앞의 등불과도 같은 미미한 자유의 한 조각, 단지 북한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그 하나뿐이었다. 북한과 중국은 인간으로서, 그리고 한 여자(女子)로서 영유해야 할 삶의 모든 것을 서 씨에게서 앗아갔다.

지금 서 씨의 목표는 오직 하나, 한국행이라고 했다. 그는 언젠가 심양(瀋陽) 한국영사관에 전화를 걸어 도움을 요청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영사관까지 들어올 수 있으면 (자력으로) 들어와라. 그 다음부터는 책임지겠다”였다.

“영사관 밖은 중국 영토라 한국 정부로서도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필자는 이렇게 대답했지만 무언(無言)중에 표현할 수 없는 깊은 좌절감을 드러낸 그에게 더 이상 그 어떤 말로도 위로할 수는 없었다. 그저 탈북자들이 가장 많이 선택하는 루트를 일러주고, 가능한 도와주겠다는 약속으로 대신할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그는 여태껏 일하며 모은 돈이 있었고, 중국어에 능숙해 가능성이 있었다. 현지에서 확인한 바에 의하면 공안의 단속도 예전처럼 심하지 않아 그의 한국행은 성사될 가능성이 많았다.

그러나 서 씨는 역시 걱정이 앞서는 모양이었다.

“운남(雲南 - 미얀마, 라오스, 베트남과의 접경 지역)에 도착하면 잡는 분들(공안)이 있나요? 태국에서는 안 잡죠?”

여자의 여린 심정(心情)과 한 차례 북송되었던 끔찍한 기억이 그의 마음을 다시 얼어붙게 만든 모양이었다. “일단 중국을 벗어나면 안전합니다” 차마 공안에 체포될 수도 있다는 말을 하지 못한 채 필자는 그렇게 대답했다.

하지만 서 씨의 걱정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한국에 가면 저 같은 (10년 이상 체류한) 사람도 받아주나요?” 10년이 넘는 중국 생활에서 지난 정권 시절 한국이 10년 이상 중국에 체류한 탈북자들을 문전박대한 사실을 그는 알고 있는 듯 했다. 지난 정권에서 한국의 이미지는 중국의 탈북자들에게 이처럼 절망으로 얼룩져 있었다.

“얼마 전 국회에서 법이 개정되어 오시면 보호자로 지정되실 수 있습니다” 필자는 그렇게 가까스로 서 씨를 안심시킬 수밖에 없었다.

대화가 끝난 뒤 메신저를 닫았지만 서 씨의 지난 삶을 가슴으로 공유해서인지, 아니면 그가 한국행을 위해 앞으로 걸어가야 할 길에 대한 염려에서인지 필자의 마음은 무겁기 그지없었다.

사실 필자가 서 씨와 직접 접촉해 중국 당국에 발각된다면 서 씨는 그대로 북송되고 필자는 중국 현행법 위반 혐의로 감옥에 수감되거나 추방될 위험이 있었다. 하지만 서 씨의 처지는 이대로 중국에 있기에는 너무도 절박했다.

그는 인간으로서의 삶을, 여자로서의 삶을 죽음(死)보다도 더 간절히 원하고 있었다.

비록 기자의 신분으로, 더구나 전문가도 아니기에 그를 직접적으로 도울 수는 없지만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도 없음을 절감했다. 어떻게든 서 씨를 돕는 것도 돕는 것이지만 현재 할 수 있는 가장 큰 노력은 바로 중국으로 탈출한 북한 주민들의 참혹한 삶을 사실 그대로 보도함으로서 세상의 잘못된 것들을 변화시키는 것이리라.  이런 다짐은 어느덧 필자의 노트북을 열게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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