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2천 3백만 명의 ‘부품’이 있다.
이들은 북한(北韓)이라는 간판을 내건 거대한 공장의 일부분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
이들에게는 의사를 표시할 자유가 없다.
이들은 김정일이라는 공장장에 의해 쉴 새 없이 돌아가고 있다.
하지만 공장의 실적은 희한하게도 ‘0'이다.
알고 보니 공장장이 모든 이윤을 착복하고 있었다.
공장장이 허옇게 살이 오르는 사이, 부품들은 가장 기초적인 기름칠조차 받지 못했다.
그들은 좌절과 슬픔과 굶주림의 늪 속에서 허우적거렸다.
그러던 어느 날, 녹이 슬어 겨우 삐걱거리며 움직이고 있던 300만 명의 부품이 삭아 가루가 되었다.
그리고, 그나마 숨이 붙어있던 30만 명의 부품들이 강제로 창고에 가둬졌다.
오직 진실의 입을 열었다는 죄목으로.
그리고 그들은 소리 소문 없이 용광로로 던져져 폐철로 녹여졌다.
나머지 부품들은 오늘도 입을 다문 채 묵묵히, 새까맣게 타들어가는 가슴을 안고 죽음을 향해 달려갔다.
실적이 ‘0’인 공장은 어제도 내일도 여전히 강압적으로 돌아갔고, 이 공장에서 웃는 사람은 공장장뿐이었다.
이 공장 안에는 오직 공장장의 만족스러운 웃음소리와, 녹슨 부품들의 메마른 눈물만이 존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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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을 하나의 공장으로, 북녘 동포들을 2천 3백만 개의 부품으로 비유해 보았다.
비록 이 글에서 공장장으로 등장하는 김정일은 두 차례의 뇌졸중 발작으로 인해 길어봤자 수 년 내로 실각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하지만 그것이 끝은 아니다.
북한에는 김정일의 아들인 정남 정철 형제와 매제인 장성택 노동당 행정부장, 정부(情婦)인 김옥 국방위원회 과장, 그리고 숱한 정당의 간부들과 같은 제2의 제3의 ‘공장장’들이 존재한다. 이들을 뿌리 뽑지 않은 한 공장의 가동은 멈추지 않을 것이고, 부품들은 여전히 녹슬어 갈 것이다.
공장장의 혹독한 감시를 피해 공장에서 구사일생으로 탈출에 성공한 1만 5천여 명의 부품들은 지금 아직도 공장에 갇혀 있는 그들의 가족과 친지들을 안타깝게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 그 안타까움이 분노로 변해 그 간의 피동적이고 구속적이었던 활동의 틀에서 벗어나 능동적이고 열정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대북 전단지와 단파 라디오, 중국 내 대북 선교단체, 국내외 북한 인권단체 등등..
그리고 그들은 실제로 공장을 조금씩, 그리고 급격하게 무너뜨리고 있다. 북한 당국은 김정일 건강이상설이 확산되는 최근 이들 자유의 품에 안긴 탈북자들의 활동을 그들의 독재 체제에 가장 위협적인 존재로 인식하고 중단을 연일 촉구하기에 이르렀다.
필자는 이들에게서 희망을 본다.
2천 3백만 명의 부품들은 변화하고 있다.
아무런 인생의 의미도 자유도 없이 그저 공장의 일부분으로서 여기저기에 틀어 박혀져 강압에 못 이겨 힘겹게 가동되고 있을 뿐인 이들은 자유를 찾아 망명한 가족과 친지들로부터 전단지와 라디오를 통해, 휴대전화를 통해, 그리고 선교를 통해 그들이 살아온 환경이 처음부터 얼마나 잘못되었는지를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은 날이 갈수록 가속화되고 있다.
언젠가 2천 3백만 명의 부품들이 가동을 스스로 멈추는 그 날, 공장은 더 이상 단지 공장장만의 전유물로 남지 않을 것이다.
그들이 부품이 아닌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되찾는 그 날, 공장은 공장장 한 개인을 위함이 아닌 바로 그들을 위해 가동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을 혹독하게 착취하고 억압하던 독재의 공장장, 바로 김정일의 웃음은 통곡으로 변모하게 될 것이고, 부품이 아닌 인간임을 선언한 2천 3백만 북녘 주민들의 눈물은 환희와 기쁨으로 변해 드넓은 대해(大海)의 파도처럼 물결칠 것이다.
이제 오늘의 해가 저물고 내일의 해가 뜬다면 반드시, 반드시 그러하게 될 것이다.
자유(自由)는 반드시 찾아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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