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북경대학국제관계학원의 주봉 교수가 한국의 중앙일보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한반도에 통일정부가 선다 해도 그 나라가 중국과 적대적인 관계가 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게 할 힘이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중국의 자신감의 표현이다.

이 인터뷰는 2월 8일자 ‘중앙 Sunday’에 ‘북한 급변사태에 중국은 단독으로는 불개입’이라는 제목으로 보도되었다.

한국 기자가 “일부 학자들은 한반도에 무력충돌이 발생하면 중국이 개입할 것이라고 예측하는데…”라고 질문하자 주 교수는 “김정일의 사망이라는 돌발사태가 생겨도 중국이 개입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중국의 국익과 외교원칙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북한에 위기가 발생하는 경우 6자회담 및 UN 안보리를 통해 해결해야지 중국 단독으로 대응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답했다.

“한국에는 중국의 개입 가능성을 우려하는 사람이 많다”는 말에도 “내가 보는 바로는 한국은 중국의 대북 정책에 너무 신경을 쓰는 것 같다. 중국의 기본 입장은 “한반도문제는 당신네 문제지 중국의 문제는 아니라는 인식 위에 서 있다. 결코 한반도의 분열을 계속 유지하겠다는 생각은 없다”고 답한 다음 앞의 “통일한국이 중국을 적대시할 수는 없다”는 취지의 말로 이어졌던 것이다.

주 교수는 또 “한반도가 중국에 적의를 가졌던 것은 중국의 국력이 쇠약해졌을 때 뿐이며 중국이 강력할 때에는 두 나라 관계는 우호적이었다”고 덧붙였다.

이번 인터뷰의 일문일답은 현 시점에서 두 나라가 의식하는 바를 아주 잘 나타내고 있다. 한국인은 중국이 북한을 지배하리라 우려하고 있는데 제3자가 보기에도 좀 그 도가 심하다고 느낄 정도다.

한편 중국으로서는 한·중 관계 악화를 막기 위해서도 이런 염려를 불식 시킬 필요가 있다. 그에 더하여 “중국이 직접 지배하지 않아도 북한은 물론 한국도 그리고 ‘통일 된 한반도’까지도 이제 강대한 중국을 거스를 수는 없다”는 것을 한국사람에게 알려 주어야겠다는 의미도 있을 것이다.

이런 중국에 대한 한국인의 반발 심리는 한국 기자의 “만일, 한국과 미국이 북한 사태에 공동개입 한다면?”이라는 질문에서도 엿볼 수 있다.

주 교수는 이에 대하여 “북한에 군사적 내란이 일어나 한·미가 개입하려면 반드시 사전에 중국과 협의가 있어야 한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중국은 이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라 잘라 말했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중국의 전문가는 일본의 아시아문제 전문가를 만날 때마다 “한반도의 현상유지가 중·일 두 나라의 공동이익”임을 확인하려고 애썼다.

그때는 “한반도 통일은 한국 주도로 이루어질 것이고 통일 된 정부는 한미동맹을 유지할 확률이 높다”는 것이 대부분 전문가의 견해였고 그런 통일 한국의 탄생은 중국에게는 반가운 시나리오는 아니었다.

그런데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중국 측에서 “현상유지의 합의”를 일본 측 전문가에게 요구하지 않게 된 것은 흥미로운 일이라 할 수 있다. “새로운 강대국 중국을 이웃으로 둔 한국이 통일 후에는 한미동맹을 폐기하고 중립화한다”는 견해가 부상하기 시작한 것이다. “한미동맹을 유지한다 해도 한국이 반중적 국가가 될 수는 없다.

또 미국도 중국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북한지역에 미군을 배치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것이 다수 의견이 되었다.

실제로 2003년 출범한 노무현정부는 균형자 외교를 표방하여 통일이 이루어지기 전부터 미·중을 등거리에 두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는 외교적 입장을 취했었다.

전 정권의 외교정책과의 차이를 부각시키려는 이명박정부도 북한에 대해서는 강경으로 돌아섰으나 대중 정책에는 변화가 보이지 않는다. 미국과 일본이 개발 중인 미사일 방위망 구축에도 한국은 참가하고 있지 않다.

이런 상황을 고려할 때 중국으로서는 “시간이 지날수록, 한국은 중국 편에 다가온다”고 생각할 것이다. “미국의 국력이 약화하는 속도에 따라서는 중립화는 커녕 19세기까지처럼 완전히 중국의 세력권에 들어 올 것”으로 기대하는 중국인도 있다.

칼럼니스트 리처드 할로란 씨는 지난 2월 15일 “이명박정부를 포함하여 한국의 최근 정권들은 한미동맹을 계속 유지할 것인지, 한미 FTA를 어떻게 할 것인지 그리고 대중 관계를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 아무런 결정을 내리지 않고 있다”고 말했는데 자꾸만 미국과 멀어지면서 중국 쪽으로 끌려가는 한국을 보는 미국의 심리를 잘 나타낸 말이라 할 수 있다.

노무현 대통령과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이라면 “미국과 거리를 두어야만 미·중 사이에서 균형 외교를 하여 양측으로부터 양보를 얻어낼 수 있다”고 주장하겠지만 그것이 말처럼 그리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한국의 애매한 태도는 “전략이 아닌, 현실 도피의 결과”라고 관련 국가들이 보기 시작하고 있다.

할로란 씨는 “한국은 북한을 흡수하게 되면 발생하는 엄청난 비용 때문에 통일 열기가 식은 것 같이 보인다”라고도 했다.
주 교수도 “북한 재건 과정에서 한국은 주도적 역할을 해야 한다. 그것은 중국이 할 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또 “김정일 이후의 한반도에서 중국은 분단을 유지하려는 것이 아니냐”는 한국 기자의 질문에 대답하면서 주 교수는 “북한 난민 구조, 재건 문제에 있어서 한국은 중국의 이익에 배려해야 한다”고 거꾸로 못을 박았다.

중국으로서는 한국사람이 갖는 ‘중국의 북한 지배’라는 뿌리 깊은 의심을 우습게 생각하는 것 같다.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사태에 관해 남에게 따지고 들기 보다는 한반도 안정을 위해 한국 자체의 역할을 다할 뜻이나 제대로 표명하라고 하고 싶은 것이다.

‘김정일 이후’의 한반도에 관해 미국과 중국 사이에 확실한 합의사항은 아직 없을 것이나 “유사시 두 나라는 UN평화유지군(PKO)을 파견한다”는 정도의 합의는 한국의 양해 없이 암묵리에 이루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사태는 꽤 진전되어 있는데 당사자인 한국은 엉거주춤한 태도를 취하고 있어서 미·중 양국을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1885년 혼란 속의 조선을 둘러싸고 대립한 청국과 일본은 천진조약을 맺어 “장래 조선 유사로 병력을 파견할 때에는 사전에 서로 통지하기로 한다”는 ‘행문지조(行文知照)’를 약속했다. 기본적으로 대립관계에 있던 두 나라로서는 이런 ‘개입 절차’를 미리 정해 둘 필요가 있던 것이다.

120년 뒤인 오늘날 미·중 두 나라가 비슷한 약속을 했다고 해서 이상할 것은 없다. 한반도 정세가 흔들리기 시작한데다가 주변을 둘러 싼 해양세력과 대륙세력 간의 역학관계가 미묘한 변화를 보이고 있으며 또한 한반도 내의 각 세력이 어느 편을 들 것인가로 힘겨루기를 하는 그 옛날의 구도가 또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닛케이신문 2/23 스즈오키 편집위원
정리·김용선 객원해설위원

출처 : 미래한국신문

트윗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