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8월 15일 대한민국 건국 기념일 기념행사에서 읽은 이명박 대통령의 광복적 경축사 중 '중도실용‘ 부분에 대해 논평하면서 누군가 연설문을 잘못 썼다고 지적하였었다. 오늘 아침 중앙일보(조인스)에 게재된 “MB, 8.15경축사 어떻게 준비했나?”(http://news.joins.com/article/408/3728408.html?ctg=1000&cloc=home|list|list1)라는 기사를 보고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3개월 간이나 심혈을 기울여 작성했다는 연설문이 마치 어느 백일장(白日場)에 제출한 문학소녀의 글 같아서야 되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다시 한번 그 경축사를 읽어 보았다. 역시 같은 느낌이다.

왜 이런 느낌이 드느냐 하면 하고 싶은 말을 직접화법으로 하지 않고 중요한 이슈일수록 간접화법으로 표현하려고 노력했을뿐만 아니라 마치 운율을 맞추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라도 가지고 있었는 듯 표현을 배배꼰 것이 많기 때문이다. 이미 중도실용의 의미를 우리가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뜻으로 표현하고 있지 않음을 지적하였다. 그 외에도 억지로 운율을 맞추듯 대칭적 의미를 갖는 용어들을 대칭적으로 나열하거나 간접적 표현을 사용하여 그 의미가 바래거나 죽어버리는 곳이 여러 군데 있다.

이것은 이명박 대통령이 언급한 ‘근원적 처방’에 대한 선언문으로 보기에는 너무나 나약하고 심지어는 책임을 회피하려는 의도도 엿보일 정도로 문학적 용어로 점철되어 있다. 책임있는 정치인이 자신의 국정철학이나 추진할 정책을 직설적으로 표현하지 않고 문학적 표현으로 얼버무리는 것은 힘도 느껴지지 않고 책임감도 느껴지지 않는다.

예를 들어 다음 표현을 보자. “90년 전, 나라를 잃은 우리의 지도자들은/ 낯선 땅 상해에서 피눈물을 삼키며 임시정부를 만들었습니다./ 우리나라가 결코 다른 나라의 지배를 받을 수 없는/ 독립 국가임을 만천하에 알렸습니다.// 64년 전 오늘, 삼천리 방방곡곡은/ 감격과 환희의 물결로 뒤덮였습니다./ 막혔던 혈관이 뚫리고, 감겼던 눈이 활짝 떠지는 날이었습니다./ 온 겨레가 하나 되는 날이었습니다.// 61년 전 오늘, 이곳 광화문에는/ 자랑스런 태극기가 펄럭였습니다./ 이승만 초대 대통령은 떨리는 목소리로/ 우리나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었음을 선언하였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보는 표현은 정치연설이라기 보다는 글짓기 대회에 나간 학생이 쓴 감상이라고 하는 것이 더 어울린다. “피눈물을 삼키며,” “막혔던 혈관이 뚫리고, 감겼던 눈이 활짝 떠지는,” “떨리는 목소리로,” 등 불필요한 감성을 자극하고 따라서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는 용어들로 채워져 있다. 왜 피눈물을 삼키며 임시정부를 만들었을까? 오히려 나라를 되찾겠다는 굳센 각오를 다지면서 임시정부를 세우지는 않았을까? 왜 일본이 항복하자 막혔던 혈관이 뚫리고 감겼던 눈이 활짝 떠졌을까? 오히려 답답하던 가슴이 활짝 펴지고 새로운 희망에 기운이 넘쳤던 것은 아닐까? 이승만 대통령은 왜 떨리는 목소리로 선언했을까? 오히려 감격하여 우렁찬 목소리로 선언한 것이 아닐까? 등등 각자 그 느낌을 다르게 받을 수 있다.

오히려 이런 표현을 ‘낯선 땅에서 나라를 되찾기 위해 임시정부를 수립하였습니다.’ ‘해방이 되자 우리는 만세를 외치며 거리를 행진하였습니다.’ 이승만 대통령은 대한민국 건국을 선포하였습니다.‘ 등등 보다 객관적이고 정확한 용어로 바꾸는 것이 더 좋았지 않았을까? 이런 생각을 하게된다.

특히 “1948년, 우리는 세계 사회에 대한민국을 등록시켰습니다”라는 표현에는 저절로 머리가 갸우뚱거린다. 대한민국이 무슨 신고를 해야 하는 법인체인가? 등록은 어디다 하였는가? 등록을 하지 않았다면 대한민국은 없는 것인가? 등등 별 희한한 생각을 다 하게 만든다. 왜 떳떳하게 ‘1948년에 대한민국을 건국하였고 그 해 말에 유엔 총회에서 국제적 승인을 받았습니다’ 라고 정확하게, 그리고 정직하게 표현하지 못할까? 이런 표현을 보면서 이명박 정부의 나약함을 엿보게 된다. 자신들의 심중의 의사를 정확하게 표현하지 못하면 그 만큼 의지가 약하고 이상한 언어적 표현 뒤에 몸을 숨기는 비겁함을 보게 된다.

또한 “세계 사회에서 우리는 하나의 점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 대한민국은 이미 점이 아니라 파동입니다”라는 대칭도 그냥 지나칠 수도 있지만 역시 대통령의 국정연설, 그것도 대통령의 국정철학을, 그것도 ‘근원적 처방’이라는 근본적 선언을 하는 문장으로서는 어딘가 어울리지 않는 표현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나의 점과 파동의 대칭이 과연 우리들이 모두 동일한 느낌과 인식을 가질 수 있는 표현인가?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표현이며 어법인가에 대해 생각할 때 아니라는 생각이 더 강하게 든다. 차라리 ‘건국 당시 대한민국은 국력이 보잘 것 없이 약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당당한 세계 경제 강국 중의 하나가 되었습니다’라는 표현이 더 어울리지 않을까?

하여간 이번 경축사를 만들기 위해 많은 유능한 비서관들이 힘을 합해 3개월 이상이나 노력하였고 또 대통령께서 직접 챙기셨다고 하니, 그 연설문을 비판하는 것이 어쩌면 그 분들에게 불쾌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러나 이건 아니라는 생각에 비판 아닌 비평을 해 본다. 대통령이 국민을 감동시키는 것은 이런 문학적 표현이 아니라 솔직하고 담백하게 그리고 정확하게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

정치는 문학이 아니고 다양한 성향의 국민을 통합시키자면 두리뭉실한 표현으로 될 것이 아니라 정확한 표현으로서야 가능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대통령께서 직선으로 보행을 하는데도 마치 갈지자처럼 걷는 것 같은 표현으로 묘사를 하면 국민이 헷갈려도 이만저만 헷갈리는 것이 아니다. 왜 똑바로 걷고 있다고 직설법으로 이야기 하지 못하는가? 청와대에는 문학지망생들만 모여있는가? 이럴 바에는 차라리 문인협회에 연설문 작성을 의뢰하는 것이 더 낫지 않겠는가? 근원적 처방은 논리적 사고의 결과로서 나오는 것이지 문학적 표현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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