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외고 폐지 또는 개혁이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되었다. 자세한 경위는 잘 모르나 라디오 토론을 들으면서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외국어고등학교의 문제는 외국어고등학교만 떼어서 생각하면 안 된다. 한국의 교육제도, 특히 고교 평준화와 관련해서 생각해야 한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모든 사람은 평등하고 동등한 권리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 평등권은 동등한 자유권을 전제로 한다. 즉 자유와 평등은 동전의 앞뒷면과 같은 것이다. 모든 사람이 동등한 자유권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면 평등은 사전적 평등, 즉 기회의 평등을 의미한다. 결과적 평등을 의미하지 않는다. 결과적 평등은 각 개인이 가진 능력의 차이를 무시한 것으로서 국가가 독재를 하지 않는 한 결과적 평등은 보장할 수 없다.

뿐만 아니라 사회정의의 측면에서 보아도 결과적 평등은 정당화할 수 없다. 사회정의란 각 개인이 열심히 일하고 정직하게 살면 능력에 따라 보상을 받는다는 원칙을 말한다. 열심히 일하고 경쟁에서 이긴 사람은 성공하고 경쟁에서 진 사람은 실패하는 것이다. 이것이 자유경쟁의 기본원칙이고 이것이 사회정의다.

그런데 고교평준화는 경쟁을 부정한다. 기회의 균등이라는 기본원칙을 부정한다. 오직 부모의 재산 정도에 따라 주거 지역이 정해지면 그 주거 지역의 학교에 배정될 뿐이다. 따라서 학생 개인이 가진 능력은 무시한 채 오직 부모의 재산에 따라 학교가 배정되는 이상한 제도다. 공산사회에서 부모의 성분(性分)에 따라 자식의 학교가 배정되듯이 우리나라에서는 부모의 재산정도에 따라 자식의 학교가 배정되는 것이다. 이것은 정당하지 않다.

분명 학생들 사이에서도 능력의 차이가 있고 또 노력의 차이가 있다. 그 차이로 인해 성적의 차이가 있고 따라서 진학하는 학교도 차이가 나는 것이 정상이다. 그런데 이런 학생 개인의 능력의 차이, 성과의 차이를 부정하고 오로지 부모의 재산정도, 주거지역의 차이에 따라 학생들의 학교 배정이 결정된다면 이것은 부당하다.

마치 공산사회에서 계급적 성분에 따라 학생의 학교가 배정되고 학과 및 전공이 배정되는 것과 무슨 차이가 있는가? 부모의 재산정도에 의해 학생이 다니는 학교가 결정되는 것은 공산주의보다 더 못한 제도다. 사회정의의 원칙을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독재, 권력에 의한 독재가 아니라 재산에 의한 독재다. 바로 금력(金力)독재에 해당한다.

이런 부당한 진학제도에서 학생들이 능력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학교는 현재로서는 오로지 외국어고등학교밖에 없다. 따라서 외국어고등학교에 우수한 학생들이 모여드는 것이다. 무엇이 잘못인가?

정두언 의원은 이것을 두고 외국어고등학교가 학원과 같다고 했다. 어찌 학원에 비교하는가? 근본적으로 공교육이 성공했다면 왜 학원이 극성이겠는가?

고교평준화로 인해 학생들의 능력차이를 반영하지 못하니 그 능력 차이를 드러내기 위해 학원이 필요하게 된 것이 아닌가? 각 고등학교가 자율적으로 학생들을 모집한다고 가정해보자. 그러면 우수한 학생은 우수한 학교로 진학할 것이고 따라서 우수한 학교에서는 자연 우수한 학생을 대상으로 한 수월성 교육이 진행될 것이다. 그런데 이것을 막아 놓으니 학생들이 어디서 탈출구를 찾는가? 바로 학원이다. 학생들은 능력과 상관없이 평준화라는 이름으로 아무학교나 배정하니 자신들의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학원을 찾는 것이다.

외국어고등학교는 고교평준화로 인한 숨 막히는 교육제도를 피할 수 있는 유일한 탈출구다. 법률에 외국어고등학교는 외국어전공자를 위한 학교라고 하여 그대로 운영하지 않는다는 것이 정두언 의원이 외고를 폐지하겠다는 것인가 본데, 그러면 우수한 학생들은 그 다음에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명분을 외고로 내세웠던 또는 특목고로 내세웠던 우수한 학생들이 갈 수 있는 곳이 있어야 외고타령을 할 것 아닌가?

한국적 상황에서 외고라고 하여 외국어 전공자만 교육하라고 하면 다른 우수한 학생들은 어디로 갈 것인가? 아마 고등학교 교육을 거부하고 우수한 학생들은 어쩌면 검정고시에 매달리게 될지도 모른다. 그래도 외고가 학원보다는 낫지 않은가? 어찌 외고를 하나의 학원으로 매도할 수 있는지 알 수 없다.

예를 들어 민족사관고등학교를 보자. 학생들이 세계의 우수한 대학으로 진학하지 않는가? 이들이 만약에 고교평준화로 인해 자신들이 거주하는 지역의 학교로 배정이 되었다면 그만한 성과를 거둘 수 있겠는가?

문제는 고교평준화에 있다. 보통교육은 평준화해도 좋다. 그러나 우수한 학생들이 진학할 학교는 마련해야 하지 않는가? 예를 들어 영국의 사립고등학교처럼 우수한 학생들을 모집하고 교육하는 교육기관을 존재해야 하지 않는가?

외고는 학생을 양성한 것이 아니라 단지 우수한 학생을 싹쓸이 해서 우수한 성적을 낼 뿐이라고 하는 말을 들었다. 어찌 우수한 학생을 모집하지 않고 어찌 우수한 교육을 할 수 있는가? 능력이 모자라는 사람을 모아서 어떻게 수월성 교육을 할 수 있는가? 정두언 의원의 이 말은 우수한 학생들에 대한 모욕이요 저주처럼 들린다.

그동안 외국어 고등학교는 한국의 고교평준화가 만든 숨 막히는 현실의 유일한 탈출구였다. 근본 문제는 헌법의 기본정신인 자유경쟁을 부정하는 평준화에 있다. 자유경쟁은 개인의 능력과 성공을 사회적 발전과 연결시키는 제도적 장치다. 자유경쟁을 부정하면 공산사회나 다를 것이 없다. 교육제도에 손을 댈려면 가장 기본적인 문제인 고교 평준화를 손대야지 그동안 잘 해오고 있는 외국어 고등학교를 마치 징벌하는 것처럼 윽박질러서는 안 된다. 그것은 문제의 해결이 아니다. 오직 감정풀이일 뿐이다.

현재의 잘못된 외고 논쟁을 끝내고 잘못된 고교 평준화를 폐기하고 고등학교 입시도 자율화해야 한다. 평준화를 고집할려면 우수한 학생들은 선발할 수 있는 우수한 고등학교를 설치하고 시험에 의해 또는 선발기준에 의해 우수한 학생들을 지역과 상관없이 모집하도록 하여야 한다. 지금처럼 학생들을 지역에 묶어 두어서는 안 된다. 마치 북한에서 사람들은 지역에 묶어 두고 인접 군에 여행가는 데도 여행허가를 받아야 하는 것처럼 고교 평준화는 학생들을 부모의 재산 정도에 의해 결정되는 주거지역에 묶어두는 나쁜 제도다. 이 나쁜 제도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학교가 외국어고등학교다. 무엇이 문제인가? 명분은 외국어고등학교지만 한국의 평준화 때문에 우수한 학생들이 탈출할 수 있는 유일한 탈출구가 되었었다. 무엇이 잘못인가? 이를 탓하는 정치인들의 사고가 문제다. 국회에서 법률제정권을 가지면 자신이 가진 편견을 법률활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그 발상이 바로 독재적 발상이다. 정말로 교육제도개혁을 원한다면 먼저 평준화를 폐지하고 그 다음 우수한 학생들이 갈 곳을 마련하고 그 다음에 가서야 보통의 능력을 가진 학생들의 교육에 대해 생각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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