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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마이니치신문(每日新聞)의 한국특파원 호리야마 아키코(堀山明子)씨가 5년간의 근무를 마치고 일본으로 돌아간다. 곧 서울을 떠난다는 걸 알면서도 바쁘다는 핑계로 못 만나다가 며칠 전에야 송별회를 대신한 점심식사를 했다.
그의 한국 근무 소감이 궁금했다. 대학 시절부터 한국어를 공부했고 한국특파원을 목표로 기자생활을 했을 만큼 한국에 특별한 애정과 관심을 가진 기자이기 때문이다.
그는 무엇을 보았을까. 우리는 무감각하게 지나치는 한국의 다른 모습을 지적할 줄 알았는데 의외의 답이 돌아왔다. 호리야마씨의 서울 생활은 한국보다 북한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고 했다.
그는 "요즘 일본 언론의 주요 관심사가 북핵 아니면 탈북자이기 때문에 한국이나 한·일관계보다 북한을 더 열심히 관찰했다"고 했다. 북핵 6자회담을 보도하느라 베이징에 출장을 가 있던 날도 많았다.
북핵은 세계적인 안보문제이자 일본의 안위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는 문제다. 탈북자는 일본과 직접 관련이 없었지만 북한이 일본인 납치를 인정한 후엔 상황이 달라졌다.
북한 내부에 대한 일본 사회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탈북자를 통해 북한 사정을 소상히 듣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본국 독자들의 관심사에 따라 움직이다보니 서울에 있는 일본 특파원들의 임무는 북한 관련 문제가 될 수밖에 없었다.
일본만 유독 다른 것은 아니다. 전 세계 뉴스 소비자들은 한국보다는 북한에 대해 알고 싶어한다. '핵무기'와 '인권'이라는 전 지구적인 고민거리를 제기하는 데다 폐쇄적인 국가인 까닭에 북한에 대해 아는 것은 더더욱 중요하다.
미국특파원 시절 경험을 돌이켜봐도 북한 관련 문제가 미국 신문의 톱뉴스에 오르고 잡지의 커버 스토리가 되는 일은 흔해도 한국이 그런 경우는 거의 없었다. 사람들이 신문과 방송에 수없이 등장하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금방 알아보지만 한국 대통령을 알아보는 경우는 드물다. 국제사회에서 알아보는 사람이 제일 많은 한반도의 최고 유명 인사는 김 위원장이다.
전 세계 한반도 전문가들도 말로는 한국 전문가지만 실상은 북한 전문가인 경우가 많다. 경제학자라 해도 북한 변수에 대해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의 이미지나 브랜드 파워는 늘 북한의 영향을 받는다.
사실은 그래서 한국의 국가 브랜드 가치가 세계 33위밖에 안 된다는 '비보(悲報)'에도 전혀 실망하지 않았다.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 국제협약 파기로 세계를 깜짝깜짝 놀라게 하는 '국제적인 사고뭉치'와 바로 이웃해 사는 데다 이름이 비슷한데도 그만한 위치를 유지했다는 게 오히려 자랑스러울 지경이었다.
실망스러운 건 "존경받고 사랑받는 나라가 더 중요하다"고 한 이명박 대통령의 발언과 "배려하고 사랑받는 대한민국을 만들겠다"는 국가브랜드위원회의 다짐이었다. 세계의 시선이 북한이 미사일을 쏠지 인공위성을 쏠지에 쏠려 있는 판에 청와대에선 '국제사회에서 사랑받고 싶다'는 소박한 소망이 흘러나오다니.
우리는 왜 국제사회가 우리 경제력에 걸맞은 브랜드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지가 의문이지만, 국제사회는 늘 우리를 북한과 연결해서 본다. 좋든 싫든 그게 현실이다. 국가 이미지 홍보도 냉정한 현실 인식을 바탕으로 할 때 현실적인 전략이 된다.
루마니아가 흡혈귀 '드라큘라'를 앞세워 관광객도 끌어들이고 흥미로운 이미지를 갖게 된 것처럼 차라리 김정일 위원장을 우리 저력을 홍보하는 데 활용한다고 했다면 더 현실적으로 들렸을지 모르겠다. 이렇듯 어려운 상황에서도 꿋꿋하게 살아가는 한국이 정말 대단하다는 걸 보여줄 수 있으니 말이다.
출처: 조선일보 강인선 기획취재부 차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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