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롤로그
20XX년, 서울.
상시 계엄 상태인 이 도시에서 군경들을 의식하지 않고 자유롭게 쏘다니기란 힘든 일이다.
‘특히 종교경찰은 더더욱 그렇지.’
가을철 서울의 서늘한 공기를 뒤로 한 채, 금발 벽안의 한 사내가 군경을 의식하며 골목길을 꼬불꼬불 헤집어 다녔다. 오른손에 큰 기타 가방을 든 채로.
배드비 아모(Badby Amoh). 그는 영국에서 온 27세의 개신교 감리회 선교사다. 그에겐 안타까운 일이지만, 배드비가 입국한지 몇 년 만에 한국을 포함한 전세계 모든 국가는 개신교 신앙이 금지되어 버렸다. 개척교회가 있던 자리는 각종 사무실로 바뀌었고, 대형 교회가 있던 자리는 ‘세계연합종교’의 예배당이 되어버렸다. 5년 전, 1차 ‘세계 단일정부’ 총회 당시 개신교회 측에서 반발을 일으킨 대가는 종교의 자유 박탈이었다.
‘그렇게 개신교는 세계연합종교에 들어가는 대신 지하교회가 되는 것을 선택했다.’
순간, 배드비가 걸음을 멈췄다.
큰길로 이어지는 자신의 등 뒤를 제외한 골목 3방향, 즉 앞과 양 옆에서 걸음소리가 들려왔다.
“종교경찰인가.”
마치 중세 수도사의 복장과도 같은 붉은 로브를 걸친 3인의 종교경찰들은 손에 전기 충격봉을 들고 점점 배드비와 거리를 좁혀왔다.
“여기서 무슨 일이신가. 지하교회 선교사님.”
배드비는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저들은 배드비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 아마 그가 입국할 당시부터 조사에 들어갔을 것이다.
종교경찰 셋이 다시 물었다.
“그 기타가방에 불법 성경이 들어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종교 경전은 오직 세계연합종교 경전만을 허락한다는 것을 알고 있겠지?”
“.....잘 알고 있습니다.”
배드비가 답했다.
“어서 기타가방을 열어 우리에게 보여 주시지.”
“....알겠습니다.”
배드비는 왼손으로 가방을 옮겨잡고 오른손으로 가방의 지퍼를 열기 시작했다.
“오호, 어디 볼까....이것은.....”
순간, 속 내용물을 본 종교경찰 1인의 안색이 일그러졌다.
“이, 이건!”
종교경찰이 말을 마치기도 전, 검광이 번쩍임과 동시에 예리한 날이 배드비 오른편에 섰던 그를 베어버렸다.
“이단자다!”
남은 두 종교경찰이 충격봉을 들고 달려들자, 배드비는 정식으로 자세를 취했다. 그가 든 것은, 지나치게 길지 않은 양 날에 Y자로 붙은 가드와 그립을 한 칼이었다.
이것은 스코틀랜드의 고산족, 하이랜더의 상징인 클레이모어였다.
“누구부터 덤비실 텐가?”
“으...으....이 이단자 노오옴!”
일은 순간에 정리되었다. 앞서 달려든 종교경찰의 명치를 카운터로 찔러버리고, 두 번째 상대의 충격봉을 검으로 막은 뒤 다리를 후려 자빠뜨렸다. 넘어진 종교경찰이 일어나려 했을땐 이미 위에 배드비가 검을 겨누고 있는 상태였다.
“네, 네놈....성경은 어디에 숨긴 거냐!"
“미안하게 되었군.”
배드비는 답없이 마지막 종교경찰의 숨을 끊었다.
“어디 볼까.”
그는 절명한 종교경찰들의 오른팔을 들춰 보았다.
“여지가 없었군....”
역시 그 경찰들에겐 ‘표’가 있었다. 세계 연합종교의 예배에 참석하기 위해선 몸에 받아야 하는 표다. 이것이 없으면 세계 어디서도 매매와 거래를 할 수 없다.
배드비는 클레이모어를 다시 기타가방에 넣었다. 그리고는 자신의 머리를 검지손가락으로 탁탁 두들겼다.
‘저들이 찾는건 이 안에 있으니 큰 걱정은 없지. 적어도 신약까지는.’
그리고선 그는 다시 자신의 행선지로 향했다. ‘주여, 언제까지니이까?’를 묵상하며.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