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21부(부장판사 이범균)는 11일 공직선거법과 국정원법위반 혐의로 기소된 원세훈(元世勳) 국정원장에게 징역 2년6개월에 집행유예 4년, 자격정지 3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국정원 심리전단의 댓글과 트위터 활동이 국정원법 위반에는 해당하지만 공직선거법 위반으로는 볼 수 없다고 밝혔다. 정치 관여 혐의는 인정되지만, 대선 개입에 대해서는 무죄로 본 것이다. 앞서 검찰은 지난 7월 열린 결심공판에서 검찰은 원 전 원장에게 징역 4년과 자격정지 4년을 구형한 바 있다.

1심 법원이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에 무죄를 선고한 것은 국정원의 인터넷 댓글과 트위터 활동을 ‘선거운동(選擧運動)’으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특정 활동이 선거운동이 되기 위해서는 특정 후보자의 당선·득표 내지는 낙선을 위한 목적이 있어야 하고, 이를 위한 능동적이고 계획적인 행위가 있어야 하지만 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국정원이 특정 후보를 당선 또는 낙선시킬 목적을 가지고 능동적이고 계획적인 행위를 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번 사건은 ①원 전 원장이 과연 선거 개입을 직접 지시(指示)했고, ②국정원이 댓글과 트위터를 통해 조직적(組織的)으로 선거운동(選擧運動)에 나섰느냐가 핵심 쟁점이었다.

검찰은 그 근거로 원 전 원장이 전 부서장회의 등에서 한 ‘지시·강조 말씀’ 중 12개 발언을 핵심 증거로 제시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원 전 원장의 발언 가운데 선거운동 지시라고 볼 만한 내용이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오히려 ‘대선 정국을 맞아 (국정)원이 휩쓸리지 않도록 더욱 철저히 관리(하라)’‘전 직원들이 선거 과정에서 물의를 야기하지 않도록 긴장감을 유지(하라)’라는 발언을 예로 들며 “원 전 원장이 선거에 절대 개입하지 말 것을 여러 차례 명확하게 지시한 사실만 확인된다”고 밝혔다. 또 국정원 심리전단 직원들의 업무와 관련해 가장 직접적 지시로 볼 수 있는 ‘이슈 및 논지’에 대해서도 재판부는 “선거 관련 내용은 전혀 확인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선거운동이 되기 위해서는 특정 후보자의 당선이나 낙선을 목적으로 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후보자가 특정되어야 하는데 검사가 선거운동 시작점으로 특정한 2012년 1월은 18대 대선 후보자 윤곽조차 명확하지 않던 때였다”고 밝혔다. 선거운동을 할 후보자 자체가 없는 상황에서 원 전 원장이 선거운동을 지시하고 국정원 심리전단이 조직적으로 나섰다는 검찰의 공소사실은 성립할 수 없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트위터에 글을 올리고 이를 퍼 나르는 리트윗 건수가 선거일이 다가오면서 감소한 것도 댓글 활동을 선거운동으로 볼 수 없는 근거로 들었다. 재판부는 “선거운동이라면 선거일이 다가올수록 트윗 활동이 활발해지는 것이 일반적인데 검찰의 공소사실을 보면 트윗과 리트윗 건수는 2012년 10월 이후 뚜렷이 감소하는 양상을 보였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원 전 원장에 대해 정치관여(政治關與)를 금지한 국정원법 위반 혐의에 대해서는 유죄로 판결했다. 원 전 원장이 국정원 직원들에게 선거 개입 목적으로 댓글 활동을 지시한 것은 아니지만, 댓글 내용 자체는 정치 개입을 금지한 국정원법 9조를 어긴 것이 인정된다고 본 것이다.

재판부는 구체적으로 국정원이 4대강 사업이나 한·미 FTA(자유무역협정)처럼 정치적으로 여야(與野) 간 입장 차이가 엇갈리는 사안을 홍보한 것은 정치인으로서 대통령과 여당을 지지한 것으로 정치 관여 행위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또 NLL(북방한계선), 천안함, 연평해전 등에 대한 북한의 허위 주장에 대해 반박 차원을 넘어 그에 동조하는 국내 정치인을 원색적 용어로 비방한 것도 국정원 직무를 넘어선 정치 관여 활동으로 봐야 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북한과 종북 세력이 인터넷에서 허위 사실을 유포한다고 하더라도 이를 국민에게 알리거나 수사권을 행사해 대처해야지 일반인으로 가장해 댓글을 달고 찬반 활동을 한 것은 국내 보안 정보 업무로 볼 수 없는 정치 개입 행위”라고 판단했다.

또 “원 전 원장이 각종 회의에서 지시한 사항이 지휘 계통을 통해 그대로 심리전단 직원들에게 전달됐다”며 “원 전 원장이 정치 개입을 직접 실행하지 않았고 구체적 내용에 대해서도 알지 못했더라도 책임을 져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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